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2015년을 준비하며, 그리고 30대를 맞이하며.

고교시절, 메가스터디에서 수십억이 든 돈가방을 가지고 노량진 학원 선생님들 스카웃에 나섰다는 소문들과, 엄청나게 높은 실용음악과 입시 경쟁률을 보면서 음악 교육 비즈니스를 떠올렸다. 치밀한 고민의 결과였다기보다는,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가 음악이었다는 점과 공부에 대한 무관심이 조합된 어설픈 공상에 가까웠다. 외고 입시를 목표로 해둔 지나친 선행학습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점수는 나왔고, 무엇보다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몰라 대학에 관심이 없었다. 방과 후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끼리 모여 국내외 셀러브리티들의 연주와 가창에 대해 토론하고, 녹음하고, 분석했다. 수능 100일 전 즈음에도 나는 김범수 콘서트장에 있었다. '어떻게든 졸업만 하고 시간이 생기면 내 비즈니스를 시작해 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꽤나 한심했다.

그렇게 졸업만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어머니께서 사 오신 주식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기술적 분석 내용을 담은,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한 변호사의 책이었는데, 그 길로 코엑스 서점에 달려가 주식 서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버핏, 로저스, 소로스는 정말 멋졌고, 타짜 냄새가 풀풀 나는 휘황찬란한 차트 서적들도 흥미로웠다. 음악 비즈니스는 이미 머리에서 지워져버렸다.

당장 거래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개방적인 분이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주식을 하겠다는 것을 허락해 주실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재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린 후, 경제 공부라는 핑계로 주식계좌 개설을 부탁드렸다.(만 20세 미만이라 계좌 개설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 뒤 1년치 용돈을 가불받았고, 재수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할 것을 선언했다. 2005년 2월, 20살이 되던 해, 그렇게 내 트레이딩룸이 완성되었다.

투자를 쉽게 접근해야한다는 격언을 지나치게 받아들였던 나는 기초적인 분석도 하지 않은 채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종목이 상승했던 시기였기에, 대충 분석해도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조금씩 수익은 났다. 그리고 그렇게 엉망으로 투자하던 중, 서울음반이라는 주식이 눈에 들어왔고 아무 근거도 없이 상장되어 있는 음반회사라는 것 하나만 보고 서울음반에 올인했다. 무식함에서 비롯된 용감함이 발동한 것이다. 문제는 매수 후 바로 다음날 터졌다. Sk에서 서울음반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지금의 로엔이다). 서울음반은 그 다음날부터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나는 5일 이동평균선 하회를 근거로 주식을 처분했다. 일주일만에 두 배의 수익률을 올렸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비기너스럭을 실력으로 착각한 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일단 서른살까지 100억만 벌어 은퇴해야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당시엔 나름 '너무 빠르게 버는 것은 현실성이 없으니깐, 10년동안 100억이면 적당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 1년 정도의 성공적인 투자 내역을 공개하면, 집에서도 내 계획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목표가 허황된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정확히 5개월이 걸렸다. 코스피가 1000포인트를 돌파해 안착해 나가는 역사적 국면에서 나는 원칙없는 빈번한 매매로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약 일주일 정도 엄청난 좌절감에 파묻혔다.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실패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팔면 오르고 사면 내린다는 인터넷 후기들을 보며 비웃었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글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좌절 후에 도달한 결론은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였고, 이불에서 기어나와 주식을 배우려면 무엇을 전공해야 하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경영/경제 학과를 추천하길래 부랴부랴 수능을 치룬 후 대충 점수가 맞는 학교의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목표와 계기를 바탕으로 하는 대학 생활은 재미있었다. 금융에 관련된 수업들을 모조리 신청해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주식 서가의 책들을 보기 시작하여 1학년 2학기가 끝날 때 쯤 다 읽었다. 캠퍼스 내 동선에 보이는 컴퓨터마다 HTS를 설치해 시세를 가끔 확인하기도 했고, 관련 동아리도 직접 조직해 운영했다. 학과 공부는 흥미롭기도 했고, 투자금을 등록금으로 써 버리는 것도 싫어 꽤 열심히 했다. 덕분에 4년간 총 500만원이 채 안되는 돈만 학교에 내고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시장에 대한 예측력은 향상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가치투자 스타일을 추종했던 동아리 형의 말처럼, 절대적 염가에 거래되는 주식을 찾아 수익이 날 때까지 보유하는 것이 투자의 전부인지 늘 고민했다. 그런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매년 단위로 수익을 기록하는 투자자들을,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을, 그리고 소로스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좀 더 투자라는 행위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전념하고 싶었고, 마침 입대시기도 다가와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인사이트 펀드가 돈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는 한편, 박경철씨, 김학주씨, 김영익씨는 중국의 버블 가능성을 경고하는 흥미진진한 시기였다. 특히 김학주센터장의 '중국은 달리는 자전거다. 멈추면 넘어진다.'는 표현은 매우 인상깊었었다.

당시 내가 한창 파생상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휴학과 동시에 파생상품 이론과 트레이딩 테크닉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선물과 옵션의 기초를 공부하면서 매매전략과 기술적 분석에 대한 책들을 읽고 정리하는 것을 병행했다. 특히 기술적분석은 그 효용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보고자 대중적인 지표들의 계산법과 역사를 거의 다 뜯어보고 노트에 요약했다.

약 6개월 동안 공부한 후에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파생상품은 변동성 게임이다. 전략은 손실을 작게 하고 수익을 크게 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 중 하나만 고르라면 손실을 작게 하는 것을 택해야 한다. 기술적 지표는 분석의 근거가 될 순 없지만 참고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시장에서, 다른 계산법을 통해 가격을 분석했던 수 많은 기술적 분석가들이 가리키는 포인트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그리고 나는 이 결론을 근거로 디테일한 매매전략을 하나 짰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반적인 변동성을 벗어나는 국면을 찾아 짧은 로스컷을 걸고 진입한 뒤 청산은 테크니컬한 지표를 참고하는 전략이었다. 간략한 검증 기간을 거친 뒤 옵션 매수전용 계좌를 통해 직접 거래에 나섰다. 그 때가 2008년 5월이었다.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시기의 높은 변동성과 맞물려 내 전략은 승승장구했다.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누적 수익률은 무려 500%를 초과했고, 월간 기준으로도 8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매월 수익을 냈다. 투입 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학생 신분으로는 아주 적은 액수도 아니었다. 마침내 성배를 찾았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침에 일어나 3시까지 트레이딩 한 뒤, 4시까지 그 날 시장을 정리하고, 책을 보거나 운동 하거나 친구들을 만났다. 책에서만 봐오던 성공한 트레이더의 미니어쳐쯤을 경험했던 셈이다.

그렇게 들뜬 기분과 늘어난 계좌 잔고, 폭락하는 시장을 뒤로 하고 2008년 11월 입대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참을만 했다. 전략은 터득했으니 전역 후에 투자를 재개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훈련소로 간략한 시황을 담은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하긴 했다.

군 생활 중에도 시장 업데이트와 독서는 계속 했고, 내 전략이 여전히 잘 통하는지에 대한 테스트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것은 나에게 매매를 못 한다는 괴로움과 전략이 아직 유효하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일이었다. 입대 후 1년까지만 해도 내 전략은 상당히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애초에 평균적인 변동성이 높아야 작동하는 내 전략은, 전역 일자가 가까워지고 시장이 금융위기의 그늘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록 점점 부정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역한 후에는 완전히 Whipsaw의 재물이 되는 전략이 되었다. 전역 후 2개월 정도 필터링과 변수를 변경해 매매해보았지만 손실만 기록하고 접어 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특정 국면에서 작동하던 전략이 언젠가 쓸모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때는 내 전략에 대한 자기신뢰가 너무 강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생각을 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드디어 내 손으로 찾은 성배가 녹아내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너무 많아져서 시장에 노이즈가 급증한 영향이다' 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기로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영학과 학부 수준의 수학과 통계적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공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가능한한 컨셉이라도 이해해보려 애썼다. HFT는 결국 빠른 주문 속도를 기반으로 시장 룰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틈새를 비집는 것이었고, 모델링을 기반으로 하는 트레이딩은 어떤 모델을 적용할지에 대해 투자자의 최종적인 인사이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만능은 아니었다. 나도 못 만들 이유는 없다는 생각에 평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엑셀에 어설프게 옮긴 뒤, 수학을 전공하는 동생에게 부탁해 binomial model을 통해 구현해 보았다.

결과는? 기대 수익이 아주 정확하게도 0에 수렴했다. 수수료와 슬리피지를 지불하는 속도에 비례해 훌륭하게 죽을 수 있는 모델이었다. 그 때가 복학 후 3학년이 끝나가던 시기였는데, 회의감과 허탈함이 극에 달했다. 시장을 쳐다보기도 싫어 보유 중이던 주식도 전부 처분했다. 30살에 100억은 커녕, 과연 내가 투자를 업으로 삼을 수나 있을지, 삼을 수 없다면 이제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교수님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면, 90%는 대학원 유학을 권하고, 10%는 어느어느 회사가 좋다는 추천을 했다. 모두 다 내가 원하는, 끌리는 답은 아니었다. 학교도 다니기 귀찮아져서 4학년 1학기에 24학점을 이수한 뒤 조기졸업해버렸다.

졸업 후 고민을 이리저리 해 보았지만, 결국은 업무강도 대비 페이가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장기 보유식의 개인 투자로 자산을 불려나가는 것이 내 인생의 최선으로 보였다. 그런 방향에 가장 잘 맞는 곳은 금융권 공사라고 판단해 지원했고, 운 좋게도 모 국책은행의 면접 기회를 얻었다. 1차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나에게, '본인 생각에 대학 등록금이 싸다고 생각하는가?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30자내로 설명해 보라' 고 요구했고, 나는 '학교 공부만 했는데 입행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을 보면 싸게 다닌 것 같다' 고 답했다. 세 면접관 모두가 아주 크게 웃었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1) 1차 면접은 합격 했구나, 2) 이 정도 대답에 크게 웃을 정도로 이곳은 보수적이구나. 둘 다 적중했다.

하지만 정작 그 국책은행의 최종면접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합격하지 못할까봐 가슴을 졸여서가 아니라, 합격 후에 펼쳐질 평범한 샐러리맨 인생이 두려워서. 취업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무려 국책은행을 합격해 놓고 가지 않을 자신은 없으니 분명히 다니게 될텐데, 시장이란 공간과의 인연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인가 싶었다. 아마도 그 날 합격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 합격될까봐 진심으로 두려워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 곳에 간다하여 시장 관련 커리어를 밟을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안정적인 분위기에 매몰되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체육면접이랍시고 단체 줄넘기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좀 화가 났지만, 그래도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증권사, 운용사, 자문사 등에 지원서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고, 결국 또 다시 운이 작용하여 한 금융기관에 입사했다. 그리고 1년씩 각기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다보니 20대가 끝났다. 타 업계 종사자가 이 글을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세대의 투자관련 업종 종사자로서는 아주 전형적인 스토리 중 하나일 것이다.

즉, 나의 20대는 투자와 공부가 키워드였다. 음악과 운동도 있었지만 그것은 머리를 식히는 수단에 불과했다. 사랑도 있었지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새로운 만남을 지향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투자와 공부로 치환했다. 신나게 놀기도 했지만 어떤 놀이도 투자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30대의 키워드는 무엇이어야 할까. 역시 투자와 공부일 것이고, 다만 사람이라는 단어가 하나 추가될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대단히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회사에 다니면서 절감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투자나 리서치 역시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깊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30대의 목표는? 50억을 모아 은퇴해 투자자하며 사는 것. 액수와 은퇴 후의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이처럼 다소 엉성한 그림을 바탕으로 세운 2015년 계획은 대략 이렇다.

1. 블로그는 계속 쓰고, 한 달에 하나는 영어로 포스팅을 한다. 영어에 대한 피드백은 유학다녀온 사내 동료의 도움을 받을 계획. 그리고 포스팅 횟수가 조금 줄더라도, 투자에 대한 글의 비중을 확대하려 한다.

2. 점심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업계 사람일수록 저녁보다는 점심시간의 집중력이 높았다. 최대한 식사를 빠르게 하고 카페로 가는 것이 좋다.

3. 좋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간다. 시간이 맞는다면 소규모 모임을 만든다.

4. 책을 읽을 때 메모와 정리를 적극적으로 한다. 즉, 공부하는 기분으로 한다. 어차피 책을 사서 읽는 편인데, 그 동안 무엇을 위해 북마크만 하며 책을 깨끗하게 읽었을까? 다독만 해서는 나에게 남는 것이 없다.

5. 운동은 지금 하는 헬스와 검도로 족하다. 더 추가하지 말자.

6. 무리 없이 아웃소싱이 가능한 것들은 최대한 아웃소싱하여 내 일에 집중한다. 매크로 분석력과 리서치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본적인 공부에 시간을 더 할애할 것.

7. 평일 수면 시간을 더 줄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주말 수면 시간은 줄일 수 있을 듯 하다.

8. 여행 횟수를 줄인다. 올해 의식적으로 많은 여행을 다녔고, 여행 경험은 이정도면 충분한 듯 하다. 여행은 재충전적인 측면과 소모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둘을 상쇄하면 남는게 크지는 않다.

최선의 방향을 따라 세부 계획들은 다듬어 나가겠지만, 위의 8개 내용들은 크게 수정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목표를 달성하는 30대가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2015년이 되길 바라며.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읽을 책, 읽고 있는 책, 다 읽고 리뷰를 쓰려는 책이 쌓여 있지만 그래도 선물 받은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맞겠다 싶어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를 오늘 다 읽었다. 소설이나 수필을 거의 읽지 않는 나로서는, 선물 받지 않았더라면 접해 볼 일이 없었을 따뜻한 책이다. 그래서 책을 주고 받거나 돌려 보는 것은 즐겁다. 독서의 편식을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

메모와 북마크를 많이 했지만 결국 책을 덮고 떠오르는 것은 세 가지다. 중국화 하는 한국, 글쓰기, 산채현상.


1. 중국화 하는 한국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마오쩌둥 시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막연한 그리움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 정말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마오쩌둥 시대는 비록 생활이 궁핍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보편적인 잔혹함이나 생존경쟁은 없었다.
(중략)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극심한 경쟁과 거대한 압력이 수많은 중국인의 생활과 생존을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는 자연스레 약육강식의 논리와 함께 호화스러운 사치 추구와 온갖 속임수가 유행한다. 따라서 자신의 본분에 만족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도태되고 담이 큰 사람들만 성공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56page)

'차이'라는 단어가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확대되고 공허한 사상에서 실제적 상황으로 변해버린 뒤, 오늘날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의 확장과 사회갈등의 격화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205page)

어떤 사람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오늘날 자녀 하나를 대학에 보내려면 도시 주민의 4.2년치 수입을, 농민의 13.6년치 수입을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대약진식 신입생 모집으로 인해 대학졸업생들의 취업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현재 매년 백만 명 이상의 대학 졸업자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이미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녀들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빚에 허덕이는 가난한 부모들이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은 졸업과 동시의 중국의 방대한 실업자 대열의 일원이 되고 만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229page)



단어 몇 개만 바꾸고 출처를 삭제한다면, 위 문장들은 한국을 묘사하는 글로 보일 것이다.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 시기의 중국을 보고 지금의 한국이 떠오른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부의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존재해왔다. 문제는 그것이 실제적 상황으로 변했을 때 사회 갈등이 격화된다는 것. 지인들끼리 '어떤 부자의 삶'을 심심풀이로 이야기하며 부러워하는 것과, 1억 5천의 전세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는 중에 부모님에게서 받은 4억5천으로 강남권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애초에 이러한 이유로 사랑을 시작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의 스트레스와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술취한 서연을 부축해 방으로 데리고 가는 강남오빠를 바라보는 승민의 심정을 계속 느끼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같은 부의 격차라도 중국보다 한국의 케이스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단순하게, 한국이 중국보다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불균형을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겠으나, 그 정도 사이즈의 국토와 사람을 보유한 나라에서 지역별, 계층별 불균형이 없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무리다. 그것도 고성장과 격변의 시기에서. 위화가 느끼는 중국의 불균형 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모르겠지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양은 한국이 중국을 압도할 것이다.

한국의 불균형은 해소될 수 있을까? 그럴만한 시그널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현 정부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균형의 심화는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일전에 읽었던 책 '이케아 세대'의 주장처럼,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무언의 항거가 시작될까? 일부 공감은 가지만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결혼을 포기한 30대 직장인은 소비를 줄이고 월급을 저축할까? 아니다. 소비의 액수는 결국 결혼하는 사람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클 것이다. 나는 이것을 '포기적 소비'라고 부르곤 한다. 모아봤자 의미 없다는 생각에 다 쓰는 것. 즉, 부의 불균형은 소비침체에 따른 성장률 저하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구성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 놓을 것이다. 30대를 예로 들었으나, 부의 불균형에 따른 교육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세대들도 마찬가지.
(불균형과 성장의 관계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인데, 이 링크를 읽어 보면 좋다. http://mobile.abc.net.au/news/2014-12-02/does-the-gap-between-rich-and-poor-affect-a-countrys-growth/5906486)

결국 한국은 중국화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원래 중국화되어 있었고,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위대한 리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시스템적인 자정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까지도 우리는 중국을 닮았다.




2. 글쓰기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 쓰기와 오늘날 블로그 쓰기가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115page)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137page)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147page)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대자보를 쓰고 있다.




3. 산채현상

산채현상을 사회 강자집단에 대한 약자집단의 혁명행위로 가정한다면 이런 혁명은 44년 전의 중국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309page)



산채란 중국의 모방, 가짜, 삼류문화 등을 아우르는 단어다. 재밌는 점은 위화가 이 산채문화를 '사회 강자집단에 대한 약자집단의 혁명행위'로 가정해 보았다는 것.

이 가정에 동의하고 나면, 결국 매체의 발달과 인터넷 혁신이 반체제적인 응집력을 약화시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고, 지인의 블로그에서도 보았던 문장이 '이 정도 불균형에서도 한국은 왜 조용한가' 였다. 아마도 그것은,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경로가 비교적 다채롭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인터넷을 통해. 내가 쓰고 있는 이 블로그라는 공간도 이 주장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 여성이 축구와 야구 이야기를 오랜 시간 이야기 해 지루했던 경험이 있다(나는 축구랑 야구 관람을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갈 때 쯤 나는 '그런데 축구나 야구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라고 물었다. 내가 여성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 99%는 '응원하는 분위기도 좋고 재밌어서요' 라고 답한다. 그런데 그 여성은 아주 의외의 대답을 해 나를 놀라게 했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이 재밌어서요. 약팀이 어쩌다 강팀을 이길 때의 쾌감이 있어요!'

그 이후로 다시 만나지 않아 얼굴도 기억이 잘 안나지만, 위 문장은 아직도 생생하다.

2014년 12월 3일 수요일

My technical views (1)

1. JPY

단기 moving average 이탈 전까지 엔 약세 view 유지가 가능할 것. 기간은 5~10까지 아무렇게나 설정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논팜 결과가 시장 기대치만 충족해도 추가 랠리가 가능하지 않을지. 일본 신용등급 하락을 보고 엔의 강세 전환에 섣불리 베팅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2. EUR

유로는 주간 차트. 밴드내로 회귀하지 않는 이상 유로 역시 short view 유지. 금주 ECB에서 국채매입 결정이 무산된다면 밴드를 한 번 터치할 가능성이 높다. 느낌상 내년 1~2월까지도 국채매입이 없다면 유로 숏은 일단 접고 보는게 편할 것.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11월 26일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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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나는 최경환의 정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말의 기대감을 전부 버렸다. 고용시장을 유연화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용 형태의 유연화가 아닌 임금의 유연화다. 특히나 뒤늦게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임금의 상승과 고용의 안정화가 필수적인 국면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자산 가격과 경기를 지탱해 놓고, 유보금 과세를 통해 노렸던 것이 임금/배당의 확대가 아닌 투자의 확대였다는 뜻일까? 한국 위험자산에 관심을 두지 않은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아마 앞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 2 -
기관들의 내년도 전망을 보고 있는데,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 문구 넘버 원은 '고령화에 따른 경기 성장률 둔화'가 아닐까. 인구구조는 경제 분석에 중요한 요소이고, 투자 아이디어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때가 있지만 저런 방식은 절대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경기 성장률 둔화' 문구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투자에 적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석유의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장 내일부터 유가 long을 잡기를 바란다.



- 3 -
한국에 있어서 최악의 2015년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유가 하락과 유로존 경기 둔화 우려 완화로 올 연말에서 내년 1분기까지의 국내 지표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 이를 한국은행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라는 착각에 빠져 상반기 내내 동결을 하고, 하반기에는 철저한 미국의 독주가 강화되며 한국은 소외되는 것.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짧은 생각

내년도 전망을 하는 중인데 생각할수록 한국은 암울하기만 하다.

경기는 하방리스크가 더 크고, 물가가 상승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가계부채와 임금정체로 내수 확대 여력은 없고, 미국 경기가 더 개선되더라도 reshoring에 따른 교역량 감소로 한국이 받는 수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소비 관련주로 버티는 주식시장은, 언젠가 중국 소비재 기업들의 점유율 침식이 가시화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위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최경환의 등장에 나를 포함한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기대감을 가졌지만, 추진력과 성과는 아직까지 기대 이하이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추진력이라는 점이다. 올바른 정책의 방향성과 함께 빠른 속도가 필요한 국면인데, 속도가 붙을만한 신호는 포착되지 않는다. 사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좀처럼 희망적인 면을 찾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나는 금융시장에 참가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정말로 암울해 보인다면, 나는 암울함에 베팅하는 포지션으로 돈을 벌면 될 뿐이다.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지, 경기가 엉망이라서가 아니다. 실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지만, 실패에 따른 원망의 전부를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길.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수급분석의 허망함. 좋은 스승을 만나는 길.

금융권에서 일을하며 느낀 당황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나름 전문가 직함을 달고 있는 분석가나 투자자들조차 수급분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종목, 업종, 지수, 선물을 막론하고 외국인의 매매동향은 성배로 추앙받는다. 외국인이 사고 팔아서 오르고 내렸다는 식의 주장들이 심심치않게 오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분석은 투자에 조금도 도움이되지 않는다. 특정 주체가 사고팔았던 내역은, 그 주체가 사고팔았다는 사실 자체 외의 그 어떠한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코스피 선물을 8천계약 순매수 했다는 것은,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수 많은 시장참여자들의 매매의 결과를 나타낼 뿐이다. '요즘 외국인이 사서 가격이 올랐어'라는 말은 '요즘 가격이 올라서 가격이 올랐어'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국인이 아닌 타 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그런 분석을 할 바에는 차라리 기술적 분석을 하는게 낫다.

주체별 분석이 아니라도 수급분석이 의미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 보다 많아서 오른다'는 문장은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바보같은 문장이다. 사려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봤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없으면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박경철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격은 비보유자들의 조바심 때문에 오른다.

투자자들이 수급분석의 환상에 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수급과 가격의 관계가 눈으로 쉽게 확인되고, 2)실제로 수익을 내는 몇몇 투자자들조차 수급분석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의 오류는 보통 게으름에서 발생한다. 사람은 특정 포인트에서 고민을 하다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눈으로 쉽게 확인되는 요인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자는 고민을 멈추고 삶의 긴장을 풀어버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행위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돈을 번 투자자가 수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상은 왜 발생하는가? 조금 더 넓게는, 성공한 사람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학들의 사다리를 치워 본인의 성공을 장기간 공고히 하기 위함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의 잘못된 조언이 빈번한 이유는 그들의 상당수조차 본인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장중 수급을 보고 매매를 한다는 탁월한 트랙레코드를 지닌 프랍트레이더는, 사실은 직관과 통찰력으로 매매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수급을 본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에게 수급을 어떻게 보는지 알려달라 간청해도 그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진심으로 모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승철이 슈퍼스타K에서 두성을 활용하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에게 레슨을 아무리 받아봤자 노래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이 어떻게 노래를 잘 하는지 남에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깐. 그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노래는 타고나야 한다'는 결론을 지어버린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표현력이 좋아 짧은 글이나 대화만으로도 자극을 줄 수 있고, 탁월함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압도적이라는 것. 다만, 문제는 나의 수준이 일정치 미달이라면 그들이 주는 자극을 자극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나의 수준을 스스로 끌어 올리는 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유일한 길. 대단히 역설적인 진실.

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How much time is left for the BOK?

미국이 작년부터 금융위기의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여타 글로벌 지역의 개선세는 여전히 미약하기만 했다. 이에 일본은 2013년 아베노믹스로 가장 먼저 대응을 시작했고 유로존과 한국도 올해 들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타이밍이 다소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뒤늦게나마 부양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이주열 총재의 취임 직후 스탠스로 미루어보건데, 최경환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한은은 끝까지 미온적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은은 언제까지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금통위 기자회견 등에서 내외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외금리차는 통화정책 판단에 큰 영향을 줄만큼 좁혀져 있지 않다. 내외금리차가 한은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던 국면은, 2004년 8월과 11월 기준금리를 각각 25bp씩 인하한 뒤 반년 정도가 지난 2005년 3월경부터 2006년말까지다. 당시 Fed의 단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정책금리는 역전되었고, 3년물 기준 양국의 시장금리차는 -25bp ~ +100bp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재밌는 점은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가 같아진 2005년 6월부터 시장금리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05년 11월보다 5개월 빠른 시점인데, 결국 한은이 급격히 따라올라오는 미국의 정책금리에 부담을 느끼고 금리를 인상할 것을 시장은 이미 반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양국의 통화정책 디커플링이 시장금리차에 선반영되는 것은 금번 한은의 정책금리 인하 전에도 관찰되었다. 200bp 수준에서 머물던 양국의 시장금리차는 6월부터 빠르게 축소되었고, 한은은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장금리차는 꾸준히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시장이 양국의 통화정책 디커플링의 추가 진행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의 계획대로 미국의 정책금리가 내년 2~3분기부터 인상 사이클에 진입하고, 그것이 2000년대 중반보다는 덜 공격적인 형태(예를들어 두 FOMC마다 25bp의 인상)로 이루어진다는 느슨한 가정을 해 보면, 미국의 정책금리가 1.5%에 도달하는 시기는 아무리 늦어도 2016년 3분기 근처가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고용 개선세가 유지되고, 첫 금리 인상에서 시장 충격이 예상 이하라면 도달 시기는 더욱 앞당겨 질 수도 있다.

결국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두 차례 정도 더 사용하고, 그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1년 6개월 남짓. 그 이후에는 추격해오는 미국 정책금리에 대한 부담으로 한은도 더 이상 완화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한은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한은이 선택한 '각자도생'의 길

국내 통화정책 및 금리와 관련된 최근 글 중에, 가장 예리하고 깔끔하다고 생각되는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님의 글.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160.html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달러강세와 유가약세

1. 달러 강세
나는 '달러 강세는 미국의 tightening을 암시한다'는 주장 보다는 '유로, 엔, 기타통화의 순서로 전염된 금번 달러강세의 원인은 통화정책의 디커플링이다' 라는 주장이 조금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달러 인덱스가 의미있는 상승을 보였던 것은 90년대 중반인데, 당시 연준과 달리 분데스방크는 마르크화의 절상을 억제하기 위해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했다.
(source : Goldman, zerohedge)

즉, 미 연준의 tightening 자체만으로는 강력한 달러 강세를 유발할 수 없다. 구조적인 강달러는, 타 국가들에 비해 미국의 체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즉, 달러 강세를 충분히 감내하고도 남을만한 강도의 미국 주도형 경기 확장기에서만 나타난다. 만약 미국이 순조롭게 내년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달러는 추가적인 강세를 보일 것이고, 그 때는 이머징 마켓의 통화들도 지금보다 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외 '달러 강세는 연준의 조기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한다'는 등의 일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간신히 디플레이션 파이트를 마무리해 가는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박 보다 디플레이션의 부활을 더 두려워 할 것이기 때문. 크루그먼이 거듭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은 맥락이다.
If you’re at the Fed, would you rather wake up and discover that core inflation has risen to 3 percent or that you’ve become Mario Draghi?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4/10/03/wages-and-the-fed/?_php=true&_type=blogs&smid=tw-NytimesKrugman&seid=auto&_r=0)

달러 강세 관련 읽을거리로는 Valentina Bruno와 신현송 교수의 BIS 페이퍼를 첨부.
(http://www.bis.org/publ/work458.pdf)



2. 상품 시장
달러 강세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것은 상품 시장과 상품에 얽혀 있는 통화들. 공급과잉 이슈로 약세 압박을 받던 농산물은 폭락했고, 금 역시 생산원가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 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유가의 약세. 역사적으로 유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경기 획장 국면은 없었기에, 유가의 하락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지난주 WTI가 90불 마저 하회하다보니, 셰일오일의 채산성과 Opec의 breakeven prices 측면에서 유가를 분석해보려는 시도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셰일오일이나 Opec 관련 수급적 요인보다도, 'Fed가 tightening을 시작해도 될만큼 미국의 경기가 강한지'에 대한 의문이 유가를 약세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엔 어땠을까?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3년 유가는 20불대에서 14불 근처까지 하락했다. 당시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요인은 1)공급과잉(영국과 노르웨이 등의 생산 확대)과, 2)수요감소(유럽, 미국, 일본의 경기침체), 3)OPEC 카르텔 기능 상실. 쉽게 말해 원유 수급 측면의 특별한 요인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나치게 지난 금리인상 사이클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춰보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과거 추이상 유가의 하락 자체를 경기침체 시그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듯.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불멸의 광고수업

통상적인 실패는 거의 손해가 없다. 그런 실패는 예상된다. 모든 광고의 초기 활동은 대중의 맥을 짚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보통은 제품의 결함 때문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이다. 제대로 조치를 한다면 손해가 나더라도 미미할 것이다. 결실을 맺지 못한 기대와 아이디어 정도가 손해라면 손해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모한 투기에 의한 재난이다. 거대하고 비싼 배를 암초로 몰고 가는 그런 광고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광고인들은 거의 재기하지 못한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16)

광고계에 새로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어와,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능력에 의존하려 한다. 또 주의를 끌기 위해 기발한 것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고 소비자의 분노만 야기할 뿐이다. 내가 아는 진정한 광고인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잘것 없는 집안 출신이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48)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수많은 성공 사례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건 내가 작은 규모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고 거기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광고의 귀중한 법칙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것을 지켰을 뿐이다. 광고의 태동기에 그 방법은 내게서 엄청난 시간을 빼앗아갔다. 이 원시적인 실험에 나는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 자식을 키우는 노력 이상의 시간과 희생을 바쳤다. 내가 일을 끝낸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시작하도록 돕겠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253)


나에게는 이 책이 광고가 아닌 투자 관련 서적처럼 다가왔다. 분야를 막론하고, 일정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공통된 전략과 원칙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책들의 치명적인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책의 내용들이 식상하게 다가올 것이고, 책의 문장들이 깊게 와닿는 사람일수록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미 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내가 일을 끝낸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시작하도록 돕겠다'는 저자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불멸의 수업이란, 좋은 스승의 피드백을 받으며, 다치고 깨지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9월 휴가. 뉴욕에서의 메모.


1. 내가 좋아하는 것
일주일 휴가를 내고 뉴욕에 다녀왔다. 2014년은 유난히 여행을 많이 다니는 해다. 내가 비행기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는 유명하다는 먹거리를 즐긴 후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더 알게된 점은, 주요 스팟에서 음악을 곁들이면 여행이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 숙소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비긴 어게인의 OST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며 랜덤재생으로 흘러나오던 곡들, 나이아가라 전망대에서 들었던 Journey의 Faithfully 모두 좋았고, 특히 페리에서 야경을 보며 들었던 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음악이 여행의 느낌을 배가시켰다기 보다는, 여행이 음악의 느낌을 업그레이드 해준 듯.

2. 첫인상
뉴욕 JFK 공항에 내렸더니 군대와 똑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공항 바닥 세제가 군대에서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인 영향이 큰 듯 하다. 심지어 입국 수속 대기 중에 줄을 잘 서달라며 외치는 거구의 흑인까지 등장하니 정말 재입대라도 한 기분이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맨하탄 숙소 로비에서는 laundry room 냄새가 진동한다. 배럭 냄새다. 내가 체험한 군대가 제대로 little America 였구나.

3. 간격
거리를 걸어다닐 때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드물다. 그 복잡한 타임스퀘어나 락펠러 센터 전망대 대기 줄에서 타인과 부딪힌 숫자가, 출퇴근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7분 걸어오는 동안 부딪히는 숫자보다 작다. 혹시 부딪히거나, 부딪히기는 커녕 가방이 스치기만 해도 0.5초 안에 'excuse me'가 돌아온다(군대에서는 my bad 였다).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나 맞는 얘기일 듯. 왜 서양이 더 예의바를까? 혹자의 주장처럼 잘못 부딪혔다가는 총을 맞을까봐 두려워서?

4. 표정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평균적인 표정과 어투가 한국보다 훨씬 밝다. 팁을 받는 곳/안받는 곳,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그렇다. 이들의 밝음은 만족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완벽한 체념에서 오는 것일까?

5. 뮤지컬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과 라이온킹을 봤다. 라이온킹의 경우 한국 배우들로만 구성해서는 공연하기 힘든 뮤지컬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 뮤지컬의 노래와 연기 수준이 브로드웨이에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공연의 질에서 큰 차이를 못 느낀 반면, 관람환경의 차이는 꽤 컸다. 리버브를 최대한 절제한 음향 효과, 과하게 크지 않은 음량, 최소화된 좌석별 시야 편차 등.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무개념 관객에 대한 어셔들의 강력한 제재. 누군가 핸드폰 불빛을 잠깐이라도 밝히면 바로 달려와 해당 관객의 얼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저지했다. 그리고 내 앞 자리의 거구의 남성은, 본인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최대한 자세를 낮춰 앉을텐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면 꼭 말해달라며 의자에 구겨져 들어갔다. 나는 브로드웨이가 아닌 곳에서도 감동적인 공연은 충분히 많이 보았지만, 관람 자체를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6. 도시의 공간
센트럴 파크의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버려진 철길에 조성된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도 매력적이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올해 마지막 구간이 완공되는데, 맨하탄 정도의 유구함을 지닌 도시에서 아직도 추가적인 녹지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꽤 놀라웠다. 도시의 녹지 공간은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게 아닐까. 하이라인 파크 주변으로 새로 올라가는 수 많은 빌딩들을 보고, '서울에 더 개발할 지역이 있겠나?' 라는 안일한 생각은 완전히 삭제했다.

7. Shake Shack
햄버거는 번, 패티, 야채의 밸런스가 제일 중요하다. Shake Shack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8. Peter Luger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식사.

9. 셀카봉
이번 여행에서 셀카봉을 애용했다. 셀카봉을 써 보니 고프로가 사고 싶어진다. 휴대폰 카메라의 dslr과 미러리스 시장 잠식은 제한적이었다. 셀카봉도 고프로를 잠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대기의 사용경험이 고프로 구입으로 연결되지 않을지.

10. 한의학
미군 소속이었던 한인친구를 4년 만에 만났다. 지금 그 친구는 복무를 마치고, 일을하며 중국식 한의학을 공부 중이다. 미국내에서 동양의학의 수요가 많은지 물었더니, '서양인들도 침 맞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한약은 절대로 먹지 않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1. 소로스
일전에 소로스가 쓴 책들을 본 적은 있지만, 정작 내가 소로스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은 영국은행을 이긴 남자라는 것 뿐이었는데, 이번 여행 중 카우프만의 소로스를 읽으며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책을 다 읽었고, 그 덕분에 여행 후유증이나 월요병을 앓지 않았다.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라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

쓰고보니 블로그에 메모식의 트윗을 날려둔 느낌.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추석연휴. 속초에서의 메모.

- 1 -
미국의 경기 개선세는 뚜렷하다. 다만 지금 시장의 논리는 유동성이고, 때문에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 주식은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충격이 흡수된 후엔 단계적 금리 인상과 함께 주식도 다시 강세를 보일 것이다.

내 조각난 생각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단. 문제는 요즘 읽고 듣는 많은 주장들의 맥락이 위 문단과 비슷해서 불편하다는 것. 그러나 '동일 의견이 많기에 과열이다' 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전망이 합치되더라도, 실제 포지션을 오픈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을 것.

의도적으로 약세론과 관련된 글들을 뒤적이고 있는데, 1) '너무 많이 올랐다', 2) '중국 부동산 리스크는 contagious 하다' 외의 세련된 로직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내 기준으로는, 둘 다 미국 주식 view를 short으로 전환할만한 요인은 아니다. trailing stop을 조금 타이트하게 잡고, 기존 long을 유지하는 정도의 대응이 나에게는 맞다.


- 2 -
불후의 명곡에서 손승연이 신승훈의 '그 후로 오랫동안'을 불렀다. 멜로디 라인 자체가 드라마틱한 면이 있어 경연에 적합한 곡이라 생각했는데, 본인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편곡과 보컬 가이드라인이 매우 영리했다. 예상을 깨는 디테일한 구성. 예상을 넘어야 움직이는 것은 가격뿐만이 아니다.
(링크 : http://youtu.be/XKNzB2fLDvo)


- 3 -
히든싱어에는 박현빈이 나왔다. 박현빈의 노래를 집중해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모든 stage에서 누가 박현빈인지 다 맞췄다. 표면적으로 들리는 느낌과는 달리 의외로 박현빈은 절제할 줄 아는 가수다. 참고로 히든싱어에서의 내 적중률은 95%. 주현미 편에서만 틀려봤다.


- 4 -
만석닭강정이 청초호 근처에 분점을 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중앙시장 입구에도 따로 건물을 세워두었다. 분점의 위치들이 아주 절묘하다. 이제 만석을 사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어졌고, 이는 근처의 타 닭강정 업체들에게 엄청난 위기가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즐기던 옆집 닭강정을 맛 보았는데, 이미 맛에서도 부정적인 변화가 감지되었다. 속초라는 상권 내에서 만석의 점유율은 더욱 높아지고, 매출도 증가할 것. 그러나 만약에 만석이 서울권에 직접 분점을 낸다면 그건 좋지 않은 신호. 만약 만석이 상장되어 거래되고  있다면 나는 그 때쯤 주식을 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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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쉬는 동안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셀카봉을 사용하는 사람들. 특히 설악산에서는 시야에 들어오는 그룹 중 한 그룹은 꼭 가지고 있었던 듯. 셀카봉 하면 떠오르는 고프로는 원래 스노우보드, 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등 '남이 찍어주기 힘든 상황'에서 촬영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현재의 셀카봉 인기는 그것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지 않나 싶다. 사람들은 모르는 행인에게 말을 거느니 2만원 주고 작대기를 사는 것을 선호한다.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더라도.

이제 헬스장에서 운동기구를 다 사용했는지 묻거나, 길거리에서 종교단체/신제품 홍보를 하거나, 헌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일이 없어졌다. 즉, 헬스장에는 아직 자연스러운 헌팅의 기회가 남아 있다.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불멸의 이론

8월 한 달간 나는 미국 주식에서 너무 느렸고, 유로화에서는 너무 빨랐다. 미국 주식에서 느렸던 것은 돌이켜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장의 맥락과 내 여건을 고려했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도, long view의 강도가 다소 약했을 뿐 틀린 방향을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로화 short view를 일찍 접은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 1) '이정도면 유로존이 편안해질 만한 레벨이 아닌지' 라는 나이브한 생각과, 2)닥스 반등에 대한 의구심이 겹쳐 1.33중반에서 view를 접었다. 그러나 닥스는 내가 trading range의 중단부로 보는 9500을 회복했고, 유로존 금리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지금 유로는 1.317 부근. short view를 유지했던 폭 만큼의 추가 약세가 view를 철회한 후 진행되었다.

심기가 다소 불편한 상황인데,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 변화된 스타일이 감지되어 재밌는 부분도 있다. 나는 전형적인 trend follower였고, 지금도 그렇다. 과거에 코스피를 거래했을 때, 내 승률은 50%도 되지 않았지만 이길 때의 이익 폭은 졌을 때의 수 배를 넘었었다. 손실은 한정시키고, 이익이 나는 거래를 잡았을 때 최대한의 폭을 취한 결과였다. 즉, 예전의 나였다면 유로 short view를 중간에 철회하는 일은 웬만해선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인이되어 손과 발에 무거운 추를 묶게 되면서, 나는 예상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대응이 90% 예상이 10%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80% / 20%는 되는 듯.

눈 앞에 무수한 동굴이 있고, 각 동굴에는 랜덤한 양의 금화가 들어 있다. 동굴의 문은 랜덤한 순서로 열리고, 동굴 안에 금화가 뿌려져 있는 형태 역시 랜덤이다(어떤 동굴은 금화가 초입부터 있고, 어떤 동굴은 방 깊숙한 곳에 금화가 몰려 있다). 과거에 나는 문이 열리는 모든 동굴에 들어가서, 들어가자마자 금화가 보이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줍고 나왔고, 동굴 초입에 금화가 없으면 바로 돌아나와 다른 동굴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은 동굴에 드나들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걸렸다. 문이 열리는 동굴을 보아도  저 동굴 안에 금화가 있을지 예상해야하고, 동굴을 열고 들어가서도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금화가 더 있을지 예상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체력이 덜 필요해 보이지만, 두려움과 짜릿함이 배가되어 스트레스의 총량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은 확실.

과거의 내 투자 스타일, 현재의 스타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아마도 앞으로의 스타일로까지 관통될 불멸의 문장은 '매 순간의 최선을 추구하되, 틀리면 바꾸는 것'. 최근 읽은 베이지안 관련 서적의 제목이 '불멸의 이론' 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꽤나 철학적인 네이밍이었다.

즉,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그 원칙 중에는 '상황에 따라 원칙을 변경한다' 는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유연한 원칙주의자' 라는 말도 안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투자라는 행위가 어려운 이유.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8월 24일

30대 초반 펀드매니저들의 퇴사가 많다는 기사들을 읽었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81010344045801&outlink=1)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0/2014082002825.html)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인 현상이며, 원인 역시 심플하다. 현재 운용사의 보상 수준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상황이 개선되려면 1)운용 수수료가 인상되고, 2)운용사의 급여 체계가 전면 수정되어야 하는데 둘 다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국내 운용사의 인력 공동화는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인력들은 다 어디로 향할까? 결국은 외사, 부띠끄, 개인투자, 자문사, 타업종을 향할 수 밖에 없다. 수탁고 규모가 뒷받침되는 국내 운용사의 미국주식팀 정도는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내가 미국 주식 강세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

잘 풀리면 회사에서 과실을 취하고, 일이 틀어지면 개인이 전부 책임지는 시스템에 조인할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키워줬더니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는 비난은 '의리'라는 측면에서 얼핏 그럴듯 해 보이지만, 수익의 배분이 1:9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착취에 가깝다. '의리'로 포장된 불안함에 매몰되지 말고 빨리 떠나는 것이 맞다.

결국 간접투자 시장의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 일반인이 괜찮은 상품을 만날 확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바보같은 행정과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영진들의 합작.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버려지는 소들

소위 소몰이 창법으로 분류되던 몇몇 가수들의 최근 무대들이 꽤나 흥미롭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힘을 빼고 노래하는데,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점은 1)톤의 감성이 8-90년대에 가깝고, 2)발성적으로 진보했고, 3)대중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 나는 대중 컨텐츠가 당대의 니즈와 수준을 잘 반영한다고 믿는 편. 하지만 문화 소비에는 노이즈가 많아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얻어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박효신은 지난번에 포스팅 한 바 있고, 소몰이를 버린 또 다른 가수의 예로는 김진호.  

음색에서 이문세가 언뜻 느껴지고, 소리의 타점이 꽤나 균일하다. 안면 근육은 전보다 적극적이며, 서 있는 자세도 SG워너비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다. 저렇게 반주 개입이 적은 도입부를 가진 곡에서 어색하지 않은 소리를 유지하려면 상상 이상의 스테미나가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 압구정 길거리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어수룩한 이미지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그 땐 고민이 많은 실용음악과 학생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남자의 자격에 박칼린과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 최재림 같다. 자심감이 충만하다. 물론 원래 좀 닮기도 했다. 

이 외에도 휘성, 환희, 하동균 등의 가수들 역시 많이 바뀐 편에 속한다. 사실 관심이 다시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 근 1-2년이라 그렇지, 이들이 소를 버리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다. 조금 넓게 보면, 소 뿐만이 아니라 '감정 과잉'이라는 카테고리가 점점 버려지고 있는 듯.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곡들의 경박단소화는 아직 진행중이며, 가끔있는 서정적 곡들도 대개 가볍게 표현된다. 나는 문화가 사이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이클 전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각기 다른 사이클을 경험한 사람들 간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태양의 눈코입을 듣던 학생이 히든싱어에서 김경호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같은 노래를 접하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실력있는 가수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것 뿐인 듯 하다. 앞서 언급했던 가수들은 모두 펀더멘털한 보컬 능력이 갖춰진 가수들이었다. 본인의 기존 색깔을 버린다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지금의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력은 했을 것이지만, 아예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배우는 만큼의 난이도는 아니었을 것이란 뜻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과거와 현재의 소리의 뿌리는 거의 비슷하다. 본인들의 실력을 바탕으로 변화에 적응한 셈.

이곳에 따로 적지는 않겠지만, 소를 버렸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수들도 있다. 구강 내의 얕은 컨트롤을 통한 표면적 허스키를 구사하던 몇몇 가수들은 여전히 재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재기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None were started by one person

시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투자를 '돈을 버는 행위'라고 정의했었다. 그 후에는 '통찰적 뷰를 갖는 것', '손실을 방어하는 것', '넓고 깊은 리서치를 기반으로,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호기심을 풀어 나가는 것' 등의 다양한 표현들로 투자를 정의해보려 했다. 돌이켜보니 다 맞는 말이고, 특히 처음 내렸던 정의가 제일 중요한 듯 싶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 부분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 짜증이 난다. 그것도 시장을 잘못 읽어서가 아닌, 시스템적인 이유들로 인해. 보상이 낮은 현 구조에서, 바보같은 행정이 지속된다면 결국 이 업계에는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특별한 지표 발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꽤 큰 변동성을 보였다. 미국 10년물은 2.40대 마저 위협받았고, S&P와 나스닥의 조정폭도 예상보다 깊었다. 미국채는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한, 먹을 수 있는 데까지 전부 먹어보겠다는 심리가 여전한 듯 하다. 미국채 숏 뷰를 접지 않았으면 꽤나 괴로웠을 뻔 했다. 미국 주식은 아직 밸류에이션, 테크니컬 분석 양 측면 모두에서 견조한 것으로 판단 중이다.

목요일 금 가격의 장중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와 이라크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시장 전반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그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나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 결정 덕분에, 미-러 충돌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이 한층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금요일 미국 시장의 반응만 보면 시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지켜 볼 일.

오히려 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DAX의 가파른 하락세이다. 금요일에 이어 다음 주에도 반등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현재의 하락 폭은 독일(을 포함한 EU전반) 경기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조업, 생산 관련 독일 지표들은 둔화되고 있지만, 중국의 독일향 수출은 아직 견조한 편. 어느 요소가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무엇이 핵심인지 파악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이럴 때 포지션을 무겁게 해 볼만 할 텐데. '경기 조정 사이클에 러시아 불안감이 겹친 것에 따른 결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만, 편안하게 분석하면 계좌가 불편해진다.

정책 기대감에 따른 코스피의 반응은 강렬했으나, 길고 좁은 박스를 단번에 깨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가격의 박스는 길고 좁을수록 그것을 인지하는 참여자들의 수가 증가한다. 코스피는 1800~2050의 박스를 약 3년간 형성했고, 박스 상단으로만 최소의 3번의 try가 있었다. 복원력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많은 투자자들이 수-목 양일간 2050 포인트의 지지를 노렸겠지만, 그래서 코스피는 박스권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테크니컬한 뷰일 뿐. 중장기적으로 코스피를 좋게 보는 것은 변함없다.


두서 없는 블로깅의 마무리로는 이번 주말 봤던 TED 강의를 첨부.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7월 26일의 생각

미국 증시 강세가 90년대식 실물 장세라는 주장과, 유동성 버블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충돌이 요즘들어 부쩍 잦아진 듯 하다. 생각해보면 내 고민들의 포인트도 두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만간 읽을 계획이 있는 책 역시 두 주장과 관련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논리를 따져보는 것을 떠나서, 중장기적인 미국 주식 상승 뷰를 가진 나에겐 주장들이 충돌하는 상황 자체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버블 논란을 수반하지 않는 자산 가격의 multiple upgrade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버블이 터지는 것이 두려워 관망하는 것 보다는, 발이라도 담가 놓고 고민하는 것이 나은 국면이다.

다만 나는 아직 유동성 버블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어, 포지션을 무겁게 구축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 중이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유동성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실물로 온기가 도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경우 연준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주가에는 일시적 부담 요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실물 전이 없이 유동성만으로 금번 강세가 마무리된다면, 그 때는 빠져나오기 어려울 정도의 가파른 조정이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 주식 long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그리고 의외의 조정에도 다치지 않을 size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앞 문장은 모든 포지션 구축에 적용되겠지만, 지금은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에는 펀더멘탈한 분석이나 거시경제 지표보다도, 단순한 기술적 접근이 큰 도움이 된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오히려 전략 수립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주 발표된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들은, 실효성을 차차 확인해야겠지만 방향성 자체는 주가에 긍정적이다. 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QE처럼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완화적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 미국의 경우 2013년 S&P 기업들이 자사주매입과 배당에 쏟은 금액이 동기간 QE 규모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source : factset)


하지만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도 적잖다. 유보금 과세로 임금이 상승할 것 같지는 않고, 배당이 확대된다 한들 가계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가격 상승만 촉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 심지어 그 자산이 주식이 아니라 부동산일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도 코스피의 길고 좁은 박스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언젠가 따로 글을 쓸 일이 있겠지만, 상식과는 달리 가격은 range가 좁고 길수록 첫 break out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 이번에 박스 상단을 돌파하더라도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 트렌드가 상방이 맞다면, 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 19일 토요일

7월 18일

미국 10년물이 다시 2.50%를 하회했다. Philly Fed 제조업지수 발표 직후 시장 반응으로 미루어 보건데,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이 없었다면 2.50대 초반에서 종가가 형성되었을 듯 싶다. 여객기 이슈로 인한 하락분을 제외하더라도, 미국채 숏 뷰를 가졌던 나에게 그리 편안한 상황은 아니다.

현재 아시아 금융시장의 반응과 미국 주식,채권 선물 움직임상 여객기 격추 이슈는 어느 정도 중화되는 분위기이다. 과거에 비해 미국의 국제 정세 개입 유인이 낮아졌고, 특히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슈에 대한 대응책들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미국은 최근의 달러 패권 도전 움직임에 신경을 쏟고 있을 듯.

어제의 이벤트는 일회성일 수 있겠으나, 오늘 2.50 회복의 탄력도가 충분치 않으면 당분간 미국채 숏 뷰는 철회하기로. 막상 상승이 시작되면 가파른 기울기를 보여 진입이 어렵겠지만, 지난 금리 저점을 하단으로 잡는 range play를 하기엔 글로벌 유동성 팽창과 월말로 예정된 2분기 GDP속보치 발표가 다소 부담스럽다. 평균회귀 전략은 추세추종 전략의 진행 중에 구사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2014년 7월 4일 금요일

6월 Non-farm payrolls

미국 6월 비농업 고용이 288K를 기록하며 예상치인 214K를 대폭 상회했다. 전일 ADP의 호조로 실제 기대는 예상치보다 높았을 것임에도, 개선된 숫자가 확인되자 주식, 금리 모두 꽤나 뚜렷한 반응을 보이는 중.

ADP 호조에 약 전일 5bp 상승 마감한 미국 10년물은 NFP 발표 직후 추가로 5bp의 상승폭을 보였다가, 현물시장 개장 한 시간이 지난 현재 약 2.5bp 상승해 거래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기록한 2.68 부근에서 지지를 받은 모습. 2.50을 회복한 이후로 미국 금리는 지표 호조에 상승하는 비교적 정상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보다도 주가의 반응이 흥미로운데, nasdaq과 S&P 모두 일시적 하락을 보인 후 곧바로 반등해 소폭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일 ADP 호조에 보합 마감한 주가를 보고, 지표호조에 따른 금리 상승이 주가 하락요인으로 작용하는 국면인 것으로 추측했는데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결국 '고용지표 호조 -> 주식 강세, 채권 약세' 라는 흐름이 연출 중인 것인데, 올해 초 이후 거의 처음있는 일치된 시장 반응이 아닌가 싶다. 2Q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본격적으로 고조되는 시그널로 보이는데, 최소 2Q GDP 속보치가 발표되는 7월 말까지는 이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2Q GDP 속보치가 시장 기대에 부합한다면 추가 랠리의 가능성도 높은 상황.

내일 아침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추가로 나올 지표나 이슈가 없어 현재의 방향성을 유지한 채 장이 마감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bad news는 미국 5월 무역적자 폭 축소가 석유무역적자 폭 감소에 기인한 왜곡된 수치라는 것 정도.
(관련기사 링크: http://www.businessinsider.com/bad-news-for-q2-gdp-2014-7)

2014년 7월 1일 화요일

매트릭 스튜디오

휴가기간 중 읽을 책으로 문병로의 매트릭 스튜디오를 골랐다. 휴가 중에 꼭 그런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겠지만, 나는 투자나 트레이딩 관련 서적을 읽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그 편안함의 근거는 공감에 있는 듯 하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묘한 안도감과 함께 글에 대한 집중력이 상승한다. 그리고 그 뒤로 읽히는 글들은 어떤 무협지나 만화책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1)기술적 지표의 조합을 이용하는 트레이딩, 2)수리적 추정 모형을 활용 하는 트레이딩(사실 1, 2번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음), 3)펀더멘탈 factor를 활용하는 트레이딩, 4)HFT & market making 정도로 분류하여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대략 1~3번을 적절히 혼용하는 투자자인 듯 하다. 스타일의 폭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포지션 사이징 전략도 겸비한 노련한 시스테머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라는 분야와, 저자의 직업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학부시절 증권 수업 과제로 코스피의 10년 수익률을 기하평균 관점에서 분석해 제출하자, 담당 교수님이 '수치가 잘못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체크해 보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기하평균은 투자자들의 인식과 다른 값을 산출해 낸다. 가격은 률(%)의 논리로 움직이기에 기하평균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고 체계가 단순평균에 익숙해 있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차트 분석의 핵심도 결국은 기하평균의 관점에서 출발하는데, 관련 도서로 가볍게 '주식수학'을 읽어 보면 좋다.

기하평균 외 세부 내용 중 눈길이 간 부분은 볼린져밴드의 검증이었다. '밴드의 돌파보다 밴드 상단 근접이 더 의미있는 시그널이다'는 문장은 나도 예전에 고민해 보던 것이었는데, 나는 밴드의 시그마 값을 조정해 밴드 돌파로 시그널을 통일시킨 반면, 저자는 근접 자체를 시그널로 남겨두었다. 로직을 다루는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당시 나는 '밴드의 근접'을 규정할 수 없어 로직을 단순화 했었다. 결과적인 시그널 생성 시점은 대동소이하겠지만, 로직의 정밀도 측면에서는 필자의 방식이 압도적이다. 필자는 나보다 몇 단계는 더 고차원적인 개념들을 트레이딩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하평균, 볼린져밴드 등의 컨텐츠보다도 나를크게 사로잡은 것은 저자의 검증력 그 자체다. 저자는 데이터 기반, 컴퓨터 능력, 연구실의 학생들을 통해 궁금한 로직을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검증해 낼 수 있다. 내가 '과거 20년간 이머징국가들의 경상수지 증가율과 3y-10y 스프레드', '볼린져밴드 확장 초기 국면에서의 rsi의 유용성' 등을 살펴보려면 데이터를 구해 정리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검증해 볼 수 있는 능력. 알고리즘 혹은 시스템의 강점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모델링을 통한 자동매매를 구현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은 직관력을 강화시켜주는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역시 영어 다음으로 배워야 할 언어는 컴퓨터 언어가 맞는 듯.

90년대 후반 코스닥 열풍과, 무료로 제공되는 화려한 기능의 HTS는 엄청난 숫자의 마바라 차티스트들을 잉태시켰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한국에서는 기술적 분석이 경시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현재 시스템 트레이딩이 주류로 취급받지 못하는 풍조 역시 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기술적 지표를 조합한 신호매매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 그러나 나는 장기적으로 시스테밍 역량의 상향 펑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기본적 엑셀 능력이 필요하듯 향후에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기본 소양이 되지 않을지. 투자 스타일을 막론하고.

2014년 6월 20일 금요일

홍콩

올해가 지나면 시장에 발을 들인지 만 10년이 된다. 그리 밀도있게 보낸 시간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실력은 형편없지만, 10이라는 숫자 자체에서 남다른 감회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금년도 여행지를 홍콩과 뉴욕으로 잡아 둔 것도 그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20대 내내 맴돌던 시장이라는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6월의 홍콩은 매우 습하고 덥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PIMCO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 광고 스크린에 국내 운용사가 올라갈 날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비즈니스는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닐 것이다. 공항철도 티켓을 끊어 홍콩섬에 위치한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 후 침사추이로 건너가 딤섬을 먹었다. 딤섬의 소나 피의 식감이 한국에서 먹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사실 아직까지도 해외에서만 체험 가능한 맛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기준으로 서울에서 현지맛에 가까운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아야 3곳에 불과하고, 이번에 먹은 퀄리티의 딤섬은 일부 고급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다. 타코벨의 귀환, 강남권 파인다이닝, 경리단길 식당 라인업 등 변화의 시그널은 산재해 있지만, 국내 식당의 다양화는 추가적으로 진행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식사 후엔 쉐라톤 스카이라운지, 빅토리아피크를 돌며 그 유명하다는 홍콩의 야경을 즐겼다. 서울에서만 자란 탓인지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빅토리아 피크에서 버스로 내려오는 길의 풍경이 인상깊었다. 산 자체가 하나의 부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무더운 홍콩에서 가장 시원한 지역일 것으로 생각된다(피크트램의 유래에서 보듯). 국가를 막론하고 진정한 부촌은 1)교통과 주변 편의시설 등 인프라에 구애받지 않고, 2)펀더멘탈한 입지(날씨, 뷰, 안전성 등)가 가장 좋으며, 3)비교적 한적한 곳에 형성되는 듯.

주요 스팟을 첫 날에 다 돌아본 터라 둘째날은 여유를 만끽했다. 스탠리비치에서 피자와 맥주를 시켰는데, 앞 테이블의 남자가 경제신문과 페이퍼를 읽고 정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에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공부하는 삶의 모습은 만국 공통이구나 싶어 꽤나 반가웠다. 한마디 말을 걸어볼까도 싶었지만,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도를 적당히 보며 마음이 가는대로 트램을 타고, 걸어다니며 시내를 구경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요 금융사들이 밀집된 거리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아마 평일이라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라고는 하지만 도시 전체가 모두 감각적인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의 1층과 상부 층들의 느낌은 사뭇 다르고, 트램의 겉과 속도 차이가 크다. 길게 이어지는 스카이워크 안쪽에서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는 홍콩인들과 스카이워크 밖 건물숲이 의외로 조화롭다. '한국도 아열대 기후화가 진행되면 스카이워크가 많이 생기겠네' 라는 얄팍한 생각을 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가깝다는 장점 외에 여행과 휴양을 위한 목적으로 홍콩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독 한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어떤 심리로 홍콩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하다.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인 듯.

2014년 6월 5일 목요일

fait accompli (2)

ECB의 금리인하 결정 보도 직후, 유로 약세 / 미국 채권 약세 / 미국 주식 강세 / 독일 주식 강세가 연출되었다. 약 한시간 뒤, 드라기가 추가 LTRO를 언급하자 유로 추가약세 / 미국 채권 강세전환 / 미국 주식 추가 강세 / 독일 주식 추가 강세. 그리고 미국 시장 개장 후 1시간이 지난 현재 유로는 드라마틱하게 반등하여 ECB 보도 직전 레벨 회복 / 나머지는 전부 보합권.

일단 ECB의 금리 인하 직후의 시장 반응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과도하게 선반영되었던 미국금리는 오르기 시작했고, 주가는 대체로 강세를 보였다. 문제는 드라기의 추가 QE 대응. 예상외로 강력한 카드가 나오자 미국 금리가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경기에 대한 자심감이 떨어진 국면이기에, dovish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주가는 상승하는 모습.

현재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로의 움직임이다. 유로만 놓고보면, 시장은 마치 ECB의 강럭한 대응마저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번달 ECB는 매우 요란했지만, 결국 초점은 미국의 2Q 반등폭으로 모아지고 있는 느낌. 미국 금리 상승 뷰는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판단.

fait accompli

금주 월요일부터 미국 금리 상승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box 하단으로 인식되던 2.60을 화요일에 회복했다. 오늘 미국 장 초반 ADP와 무역수지 부진에 2bp정도 하락했지만, 현재 다시 2.60대로 진입. 

이번에 금리 반등을 기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과거 장기 저금리 후 금리인상 사이클 진입 직전의 시기를 살펴보면, 장기금리가 반드시 상승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하방지지력은 보인다. 특히 현재 연준의 시장소통력을 감안한다면, 2.50 이하에서의 추가 강세는 부담스럽다.

2) 5월 미국 금리 하락의 시작은 부진했던 미국 1Q GDP가 이끌었고, 마지막은 ECB의 추가 QE 가능성이 이끌었다. 1Q GDP의 확정치 발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미 컨센이 대폭 낮춰진 상태라 추가 강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Capex의 회복이 가시적이지 않아 오히려 2Q GDP의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다.) ECB는 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으나, '유로존 유동성 팽창 - 미국 채권 강세' 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기조의 전환이 아닌 강화일 뿐이고, 풀리는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심지어 region을 넘어 예상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하다.

그 중 가장 최근의 이슈이며, 논리가 취약한 ECB를 포인트로 잡았다. ECB결과 자체를 확인하는 것은 늦고, 화요일 유로존 5월 CPI 예비치 발표 후의 시장 반응을 보기로 했다. 1)유로존 CPI의 둔화에도 미국 금리가 상승하거나 또는 횡보한다면 선반영이 끝난 것으로 보고 금리 상승 판단, 2)아무 요인이 없어도 미국 금리가 2.60을 회복하면 기술적으로 금리 상승 판단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두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ECB가 금리만 인하하는 등의 최소한의 액션을 취하면 미국 금리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동결이라도 한다면 폭등의 소지도 있다. 만약 추가 QE의 강도가 높아 변동성이 확대되더라도, 2.50 위에서는 상승 판단을 유지할 것이다. 가장 큰 고비는 NFP이다. 오늘의 ADP 발표 후 시장 반응이 그것을 증명한다. 시장은 1Q의 부진은 용인했지만, 2Q 반등의 기울기에 매우 민감해져 있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ethics

궁극적 목표 도달과 관련도가 낮은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의 절대적 강도와 무관하게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지금 준비 중인 시험이 그렇다. 학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깊이라 배우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취득이 투자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돈을 운용하는 직업을 계속 하는 데에 레퓨테이션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런 자격증을 보고 레퓨테이션 증강을 느끼는 수준의 사람의 돈이라면 맡아봐야 피곤해질 것이 뻔하다. 게다가 나는 내 자본만을 가지고 운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 시험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최고로 좋은 계절을 즐기지 못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빼앗을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인다. '크게 쓸모는 없지만, 남들도 다 귀찮아 하는 일을 해냈다는 증명' 이 필요한 나이는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

아마도 경외시되겠지만, 시험 과목 중 실제로 제일 중요한 파트는 윤리라고 생각한다. 신의성실을 지켜 타인의 자산을 맡아야 한다는 문장은 상상 이상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측량과 규제가 불가능하기에, 앞으로도 이 부분은 완전히 관리되기는 힘들 것이다. 타인의 머리를 빌릴 때 발생하는 회피 불가능한 리스크다.

그리고 내가 협회의 담당자라면, 윤리 과목에 아래 내용들을 추가할 것이다.

1. 투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2.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시작했음을 잊지 않는다. 투자 자체에 심취해 더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두 항목 모두 평소에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어기기 쉽다. 특히 2번이 그렇다. 예전에 스노볼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버핏처럼 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좋은 보고서

새 부서로 옮긴 뒤  보고서 읽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의 질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내 생각엔 잘 쓰여진 보고서들은 절대 외사에 뒤쳐지지 않는다. 좋은 보고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읽는 방향이 잘못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나는 보고서의 결론 자체는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결론이 불분명한 보고서는 잘 읽지 않는다. 판단이 틀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판단이 맞고 틀리고를 평가하는 기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포지션 없이 주장만 해야하는 애널리스트라는 업의 특성상 언제나 맞출 수는 없다. 실제 투자를 하는 입장에선 진입 후 아니다 싶을 때 빼면 그만이다. 지난 판단이 틀리지 않았냐며 비아냥대는 것은 비겁하고, '잘 맞춘다'며 추종하는 부류의 미래 계좌 잔고는 안봐도 뻔하다.

하지만 논점없이 막연한 주장만 하는 보고서들의 비율도 작지는 않다. 이러한 보고서들은 대개 특정지표, 원자재 가격, 거시경제 상황을 근거로 삼는데 '~가 오르고(개선되고) 있으니 ~를 사자'는 식이다. 예를들어 BDI 추이 그래프에 우상향 화살표를 그린 후, BDI가 상승 중이니 해운주를 사자고 한다. '상승 중'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모르는 탓에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상승 중'이라는 개념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면 그냥 상승 중인 주식을 사면 된다.

즉, 막연한 보고서의 대부분은 '펀더멘탈 지표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한다. 펀더멘탈리스트를 표방하는 분석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말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는 가격분석과 매매를 위한 기술적 분석의 유용성을 지지하지만, PMI나 GDP성장률 차트에 같은 논리를 적용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래도 좋은 보고서는 여전히 많다. 선호도를 나열하자면 1)시장을 보는 관점에 대한 영감을 주는 보고서, 2)주요 factor와 역사적 추이를 깔끔히 정리해 주는 보고서, 3)간과하기 쉽지만 중요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리마인드시켜주는 보고서 정도인 듯 하다. 문제는 나도 아직 좋은 보고서를 쓰지 못한다는 것. 눈만 높고 실력이 안되는 것만큼 피곤할 일도 없다.

2014년 4월 5일 토요일

박효신




데뷔초 박효신은 루더 밴드로스를 숨소리까지 카피하며 틀을 잡았다. 그리고 루더를 놓으면서 급성장을 시작했고, 복잡한 개인사를 승화시켜 이제는 달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10년전 김범수 콘서트의 게스트로 접했던 그의 라이브와, 작년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들었던 토드의 넘버들은 차원이 다르다.

'모방 후 내면화'는 보컬 능력 개발의 전형적인 경로이다. 보컬트레이닝계의 거물 세스릭스의 제자 로저러브 역시 그의 저서 'Singing like the stars'에서 10명의 싱어 카피를 권하고 있다.

이는 반드시 보컬능력에만 적용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1)좋은 대상을 찾아 2)철저히 모방한다면 어떤 분야든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문제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3월 마무리

1월부터 지금까지 9개의 공개글과 4개의 비공개글을 업로드했다. 회사원이라는 제약 때문에 몇몇 글들은 비공개로 설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 1건이라는 목표량은 달성한 셈이다. 3개월에 불과한 기간이었지만 확실히 긍정적 변화를 느꼈다. 쓸 거리를 찾다보니 생각의 방향이 보였고, 쓰다보니 생각의 형태가 잡혔다.

문제는 6개월이라는 목표 기간. 회사생활이 근래 갑자기 바빠졌고, 6월에는 시험이 하나 있다. 반만 채우는 기분이라 내키지는 않지만 6월 첫 주 까지는 1주에 한 개라는 목표량을 잠시 중지하고, 시간이 될 때만 업로딩을 하고자 한다. 이미 쓰기에 재미를 붙였기에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다.

말로 하는 대화는 비언어적 교류와 효율적 정보교환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고, 글로 하는 대화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심층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말이 어눌한 guru는 있어도, 글이 형편없는 guru는 없다.  글쓰기를 올해의 목표로 잡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인 듯 싶다.

2014년 3월 10일 월요일

Trading

일부 차익거래를 제외한 모든 매매는 방향성 베팅이다. 변동성 매매는 변동성의 방향성에, 스프레드 매매도 스프레드의 방향성에 베팅을 하는 것이며, 본인만의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결국은 그 모델이 산출해 내는 proxy의 방향성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시장을 관찰하는 창이 각각 다를 뿐 거래의 본질은 모두 같다.

때문에 트레이딩은 결국 평균회귀와 추세추종으로 귀결된다. 1)펀더멘탈 대비 저평가 된 주식에 투자 하기, 2)과도하게 확대된 스프레드의 축소를 노린 베팅, 3)기술적 밴드지표 하단에서 Long 진입하기는 모두 평균회귀에 해당한다. 반면 1)성장주 투자, 2)스프레드의 추가 확대에 베팅, 3)기술적 밴드지표 돌파 방향에 진입하기는 모두 추세추종에 속한다. 전자는 승률이 높아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단숨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고, 후자는 드라마틱한 수익 증가폭에 흥분을 느낄 수 있지만 승률이 낮아 그 수익을 누리기 전에 죽을 수 있다.

양론의 지지자들은 늘 첨예하게 대립하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다. 리처드 데니스의 터틀들은 추세추종으로 한 때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터틀의 수는 많지 않다. 예상했던 추세가 아닐 때 바로 포지션을 정리해도, 그 손절이 쌓여서 손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듯 보이는 가치주 매니아들의 상당수는 Index를 언더퍼폼 한다. 시세의 80%가 20%의 기간에 형성되므로 염가에 사서 홀딩하기를 주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그 80%의 시세의 초입에서 포지션을 정리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류는 상당히 작위적이다. 시장을 바라보는 Time Frame, 뷰의 성격, 시장 특색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고, 하나의 트레이딩에 두 개념을 모두 내포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 기준으로 현재 한국 주식과 채권은 intraday를 제외한 모든 기간에서 평균회귀, 미국 주식은 장기 추세추종/중단기 평균회귀, 독일 주식은 중장기 추세추종/단기 평균회귀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나는 투자자라면 궁극적으로 두 전략을 모두 섭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만 택하면 해당 전략의 소외기간을 절대 견딜 수 없다. 본인 돈이라면 소외기간이 끝나기 전에 그 돈을 인출해야 할 일이 생기고, 남의 돈이라면 소외기간이 끝나기 전에 운용권을 빼앗긴다. 즉, 평균회귀 시장에서는 Box play로 벌다가 추세가 형성되면 과감하게 베팅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최소 본인이 자신있는 컨셉에 들어맞는 다른 시장을 찾아 매매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투자로 벌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한 가지 스타일만 확실하게 고수해도 본인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증하는 글로벌 시장간의 상관성과 ETF의 발달이 그 영역을 침범해 나갈 것이다. 체크해야 하는 데이터의 범위와 깊이가 폭증하고, 여자인 동시에 남자로 존재해야 할 정도의 철학적 다양성이 요구된다. 시간이 늘 부족할 수 밖에 없다.

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엔화에 대한 생각

아베노믹스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던 중 쿼츠의 도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부동산을 제외한 가계 금융 구조를 나타낸 듯 한데, 도표에 따르면 일본 가계 금융 중 주식투자 비율은 8.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출처 : 쿼츠)


일본 가계는 엔약세로 야기된 작년의 닛케이 폭등을 누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주식 외 기타 부문은 아베노믹스의 수혜를 받기 힘든 자산군이다. 결국 소득 증가를 통해 막대그래프 자체를 확장시키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재까지 보도된 일본 기업들의 임금인상률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때문에 나는 3월 BOJ서 추가 QE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금 추가 QE를 해 봐야 아베 입장에서는 실익이 없고, 공연히 지지기반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추가QE라는 소중한 카드를 이제 좀 더 신중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연내 추가 QE는 중국 둔화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국성장이 둔화되면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엔저를 용인할 필요가 없어진다. 미국은 위협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빠른 속도로 중국이 성장하기를 원한다. 여러모로 중국이 글로벌 시장의 Key를 쥐고 있는 느낌.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운동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했던 나는 원래 운동을 즐기지 않았었다. 어릴적 쇼트트랙을 했었지만 아이스링크에 자주 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볼 감각이 없다보니 농구나 축구와도 거리가 멀었다. 늘 마른 편이었기 때문에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을 시도했던 적 조차 없다.

그랬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곳이 바로 군대다. 체력이 지나치게 좋은 흑인 중대장 때문에 매일 아침 엄청난 강도로 운동을 해야만 했다. 특히 달리기를 좋아했던 그 중대장은, 보다 멀리 그리고 오래 달리기 위해 새벽 집합 시간을 1시간 앞당긴 적이 있을 정도로 비상식적이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그 때만큼은 흑인들의 무한체력을 진심으로 증오했다.

그 생활을 1년 가까이 하다보니 몸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40개 남짓 하던 푸시업을 70개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고, 1시간을 달리고 나도 피로감이 크지 않았다. 키워 놓은 체력이 아깝다는 생각에 전역 후 헬스를 시작했는데, 매주 최소 3번 이상 운동을 한 지 벌써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은 체력이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체력증진 외에도 운동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다양하다. 몸에 근육이 잡히면 걸음걸이가 바뀌고 태도가 당당해진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바뀌는 경우도 있다. 깨어 있는 시간동안 보다 밀도 높은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경우 운동(헬스)을 하며 그 날 있었던 복잡한 문제나 앞으로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운동 직후 포지션을 잡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었다.

헬스 하나만 4년을 하며 깨달은 점도 많은데, 여러 측면에서 투자나 삶 전반과 맞닿아있다.

1) 타고난 재능이나 운은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체격이 좋은 사람들은 나보다 경력이 짧아도 월등히 무거운 중량을 드는데, 그것을 보고 조바심을 가지면 반드시 다친다.

2) 전력을 다해도 될까말까이다. TV나 잡지에 등장하는 근육질의 체형은 이를 악물고 죽을 각오를 해야 얻을 수 있다. 근육이 너무 커지면 태가 안날까봐 운동을 안한다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

3) 초반의 강제성은 필수적이다. 그 중대장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까지도 운동과 담을 쌓고 있었을 것이다. 흥미를 느끼기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 시간의 최대를 1년 정도로 본다.

4) 이뤄온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꾸준함을 유지시켜 준다. 다만 이 부분만큼은 투자에서 독이되는 경우도 많다.

5) 일상 생활 자체에 녹아들어야 한다. 체력관리는 운동, 식습관, 휴식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챙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즉, 운동을 하는 순간 외에도 깨어있는 모든 시간, 그리고 심지어 잠들 때까지 늘 신경써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앞으로도 최소 일주일에 3시간은 운동을 할 생각인데, 그토록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히 어림잡아도 return이 100%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법정 경험

작년 가을 어느날, 회사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산책하던 중 길 건너편 두 남자의 몸싸움을 목격한 적이 있다. 말려보려는 생각 보다는 호기심이 앞서 구경을 하려는 찰나, 몸싸움 중이던 남자 중 한 명이 상대를 가드레일 넘어 차도로 밀어내려 하길래 이건 아니다 싶어 동료들과 만류에 나섰다.

다가가 보니 한 명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 가해 중인 남자는 한 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차저차 하여 경찰에 신고해 상황을 종료시켰고, 경찰은 최초신고자 정보가 필요하다며 나와 동료들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런데 6개월 뒤인 지난주 법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 중이니 증인으로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해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맞고 있던 남자로부터 감사하다는 전화 한 통 없어 괘씸해하던 터라 출석요구에 응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형사재판 증인 불출석시에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나도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나름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태료 문구를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결국 약간 이른 시간에 퇴근하여 법원으로 향했다. 법정에 처음 가보며 놀란게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생각보다 증인 보호가 철저하지 않다는 점. 법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당시 가해자를 맞딱뜨렸을 뿐만 아니라(다행히도 그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했다), 증인은 가해자가 있는 앞에서 실명을 외치며 선서까지 해야한다.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폭행 사건이었고, 가해자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시스템 하에서 증인이 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놀란 점은 법조인들의 언어 구사력.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법정의 무게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판검사, 변호사들의 언어는 힘이 있으면서도 깔끔하여 금융계 달변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법정에 있는 시간 내내 그들의 언어 스킬을 배워보려 애썼다.

나는 당시 상황을 짧게 증언한 뒤 약 20분동안 질의응답을 받았다. 나름 심각한 분위기에서 질의응답을 받다 보니, 며칠전 Yellen신임 의장의 증언이 자꾸 떠올랐다. 물론 나는 Tapering이 아닌 가격 신체 부위를 질문 받았고, Yellen처럼 또렷하고 온화하게 답하지도 않았다.

답변을 마치면 증인은 먼저 법정을 나와 귀가하도록 되어있다. 여비로 약 5만원을 받았다. 지하철로 귀가하며 내 증언이 어땠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긴장을 조금 했지만, 법정이라는 장소의 분위기 덕에 차분히 할 말은 다 했다. 만약 다음에 또 증언할 기회가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Yellen도 첫 증언 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음주 있을 그녀의 두 번째 증언과 첫 증언을 반드시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다.   

2014년 2월 9일 일요일

정보매체의 변화

2010년 처음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트위터를 시작했었다. 당시 블로거들이 대거 트위터로 이동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멘션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유저들을 하나씩 follow해나갔다.

지금 내가 팔로잉하는 유저의 수는 172명. 타임라인의 모든 멘션을 읽으려 최대한 팔로잉 수를 자제했다. 재밌는 점은 트위터를 하면서 국내 뉴스어플은 일절 사용치 않게 되었다는 것.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미 FT, BI, 블룸버그, WSJ등이 포함되어 있고, 볼만한 국내기사가 나오면 리트윗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저들의 개인 멘션까지 더하면 그것만으로도 업데이트가 벅차다.

트위터는 140자의 제한이 있지만 많은 멘션에 장문의, 그것도 양질의 글이 링크되어 있으며, 필력이 좋은 사람들은 140자 안에 엄청난 통찰력을 담아낸다. 따라서 트위터를 단순히 `140자의 잡담공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오류다. 팔로잉하는 사람의 선별력에 따라 트위터는 최강의 정보매체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 결제시스템이 편하고, 액수가 합리적이라면 나는 트위터를 유료로 사용할 용의도 있다.

트위터 외에 작년부터 관심을 가지는 매체는 쿼츠(qz.com). 직관적인 인포그래픽과 기사를 제공하는 정보매체다. 직장생활을 하며 시간의 효율성이 중요해졌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기에는 표나 그래프가 최고다. 현재 쿼츠, BI, WSJ Infographics를 돌려보는데 앞으로 비슷한 소스를 더 확장해 나갈 예정.

증권사 등에서 제공하는 데일리 자료도 큰 도움이 되지만, 원자료를 타임시리즈로 확인 가능한 Infographic을 이기기는 어렵다. 작년 '생각해볼 만한 차트' 시리즈가 흥행한 것도 같은 맥락. 시장에 대한 뷰보다 의미있는 그래프 한장에서 영감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빅데이터라는 화두도 결국은 데이터의 분석/출력 플랫폼이 메인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국내 종이신문의 경영자라면 FT를 따라 웹을 유료화하기 보다는 차별화된 infographic 역량 업그레이드에 주력할 것이다. 지금 국내 신문들이 인포그래픽이라며 내놓는 것들은 글씨를 사진으로 붙여넣은 것에 불과하다.

아직도 한글로 찾을 수 있는 고급정보는 제한적이며, 업데이트할 데이터는 점점 많아진다. 팀 워크로 데이터 업데이트를 분담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팀워크의 진가는 '정보는 각자 업데이트된 상황에서의 의견 개진'에서 발휘된다. 즉, 업데이트는 각자 하는 것이 맞고, 제한된 시간에 시장 업데이트를 하려면 매크로 변수를 그래프로 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겨울왕국

퇴근 후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겨울왕국을 봤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시작 직전 디즈니 캐릭터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3분 남짓한 영상에서 나는 이미 압도되었다. 평면과 3차원을 오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3D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디즈니다움을 잃지 않은 치밀한 영상이었다. 미국의 컨텐츠 제작 수준은 역시 독보적이다.

메인 씬이라 할 수 있는 'Let it go'부분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뮤지컬을 자주 보는 편인데, 이런 영화가 계속 나온다면 앞으로 뮤지컬 관람횟수가 줄지 않을까 싶다. 이미 영화버젼의 '맘마미아'와 '레미제라블'을 보며 했던 생각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같은 느낌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메가박스의 Dolby sound관에서 관람을 했더니 OST에서는 현장감마저 느껴졌다. 뮤지컬 뿐 아닌 그 어떠한 현장 공연에서도 만 삼천원에 이정도 가치를 누릴 수 없다.

모션캡쳐를 통해 제작된 영상 속 캐릭터는 영어로 노래할 때의 특유한 입모양까지 완벽하게 연출해낸다. 그리고 현장 무대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얼음 마법을 마음껏 펼친다. 극강의 녹음스킬 덕분에 노래와 영상이 따로 놀지도 않는다. 영화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뮤지컬은 많은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겨울왕국은 이미 미국에서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브로드웨이 제작력으로 미루어보건데 졸작이 탄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 또한 미국은 문화내수 기반이 탄탄해 평균급의 작품만 나와도 뮤지컬시장은 나름 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20대후반-30대초반 여성이 관람객의 주류를 형성하는 한국은? 한국처럼 지킬박사의 나이가 어린 나라도 없다. 기형적 관람객 기반을 가진 한국 뮤지컬 시장이 장기적으로 겨울왕국을 당해낼 수 있을까?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Coin tossing (1)

투자에 앞서 폭 넓은 공부와 스스로를 완전히 설득시킬 수 있는 깊이의 리서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탁월한 뷰를 얻었다고 하여 반드시 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투자를 하는 순간, 즉 매수/매도 버튼을 클릭하는 극단적 고독의 순간에서는 진입과 청산의 타이밍이 성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뷰가 엉망이더라도 좋은 매매기준이 있다면 최소한 천천히 죽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매매기준, 혹은 철학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무작위 시세에 베팅하여 살아남기'

즉, 동전 던지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전 게임의 기대값은 0이지만, 자본금을 탕진하지 않고 오랜 시간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앞으로 'Coin tossing'이라는 제목으로 써나갈 글들은 바로 이 동전게임에서의 생존법에 관한 것이다. 생존법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홈런을 치는 법'이 아닌 '파울을 치는 법'에 대한 생각들을 기술할 예정이다.

'마켓타이밍을 잡는 법', '테크니컬한 비법' 등과는 무관하다. 가능한한 덜 잃고, 시장에 오래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미없는 내용들이 언급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재미없는 철학이 모든 매매의 기본이라고 확신한다.


- Coin tossing (2)에서 계속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방콕 휴가 (130108 ~ 130112)

나름 결의에 차 보이는 첫 글을 썼는데, 두 번째 글은 방콕에서 휴가를 보내며 쓰게 되었다. 올해 어머니께서 환갑이시기도 하고 동생도 대학원에 진학하는지라 지금이 가족여행을 갈 적기라고 생각되어 기획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다. 특히 숙소를 힐튼으로 잡은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인테리어를 갖춘 라운지와 수영장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휴가를 만끽할 수 있다.

내가 방콕 여행에서 가장 즐기는 것은 마트 구경이다. 대형마트에서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곳들은 거의 다 들어가 본다. 타국 관광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함인지 태국 마트의 제품들은 유난히 다양하다. 규모가 큰 곳은 스낵 진열대만 천장 높이로 네 줄에 이를 정도라서, 지난번 여행에서는 마트에서만 4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태국은 유통/식품 재벌들이 재계를 꽉 잡고 있는 나라이기에, 나처럼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영 의미없는 일은 아니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태국경제를 이끄는 이들의 사업장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포브스 아시아에서 발표한 태국의 재계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Dhanin Chearavanont (CP그룹) - 음식료, 유통을 주력으로 부동산, 통신등의 다양한 사업 영위. 태국내 세븐일레븐 소유,

2. Chirathivat 가문 (센트럴 그룹) - 유통업. 창업주 치랏티왓은 3명의 아내와 25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이들이 그룹을 나눠서 경영 중.

3. Charoen Sirivadhanabhakdi (ThaiBev) - 태국의 맥주 Chang 소유주.

4. Yoovidhya 가문 - 에너지드링크 레드불을 공동 소유.

5. Krit Ratanarak - 태국의 방송 Channel 7의 대주주. 은행, 시멘트, 부동산 회사에도 지분 투자.

6. Chamnong Bhirombhakdi (Boon Rawd Brewery) - 싱하맥주

7. Vanich Chaiyawan (Thai Life) - 태국 생보사 회장.

8. Vichai Maleenont (Bec World) - 방송채널.

대략적으로 보아도 유통/식품과 관련된 재벌들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들은 타 재벌들의 순위가 변동할 때에도 늘 본인들의 랭킹을 사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태국은 일찍이 외국인투자를 개방하여 HDD와 자동차생산량이 많은 나라인데, 상위 랭킹에 IT제조나 차부품 관련 재벌이 없는 점은 흥미롭다. CP그룹 하에 차량관련 사업부가 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공부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FDI를 통해 기술력은 자국화시키지 못하고, 생산공장 노릇만 해 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이라면, 최근의 HDD수요 감소와 제조업의 선진국 회귀 트렌드는 향후 태국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풀바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다 보니 두서가 없다. 휴가 중이라도 블로깅은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영향도 크다. 2년 뒤엔 필력이 향상되어 수영을 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글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귀국하여 더 찾아보고 싶은 자료들
- 바트환율과 태국 부동산가격
- 스쿰빗 일대(한국으로 치면 강남) 부동산 상승률
- CP그룹의 성장 스토리
- 50대 부호 내 IT/자동차 재벌 존재 여부
- 태국 내 IT/자동차 생산 공장 위치

2014년 1월 1일 수요일

open

통찰력은 읽고, 말하고, 쓰는 세 가지 행위를 통해 길러진다. 이 셋은 반드시 밸런스가 잡혀 있어야 한다. 읽지 않으면 말하거나 쓸 수 없고, 쓰지 않으면 읽고 말하는 것들이 깊어지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면 본인이 읽고 쓴 내용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기 어렵기 때문이다.

읽기는 비교적 꾸준히 노력을 해 오던 부분이다. 그리고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훌륭한 분들과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이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뷰나 노하우의 노출을 꺼리는 투자의 세계에서, 통찰적 사고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줄 의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와 말하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는데 쓰기가 문제였다. 오래전 블로깅을 했었지만 멈춘지 3년이 되었고, 처음부터 바이사이드로 진입하다보니 따로 의식하지 않으면 쓰기를 할 일이 앞으로도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에버노트에 적긴 하지만 메모를 넘어선 글이 되지는 못한다. 트위터는 필력과 내공이 극에 달해야 '의미있는 쓰기'를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때문에 다시 블로깅을 시작하게 되었다. 글의 길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니 나 같은 초보에게 제격이고, 어느정도 개방된 공간이다보니 적절한 강제성도 부여된다.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여전히 다른 곳을 이용하겠지만 가능한한 이 곳을 활용할 생각이다. 주제는 투자, 책,  일상, 음악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일단 6월까지 매주 최소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업로드 하는 것이 목표다. 쓰는 행위를 습관화 시키기 위한 기간이다. 6개월 정도 신경을 쓰면 그 뒤로는 관성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본다. 매주 1건이라는 부담감에 정말 허접한 한 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의무적인 다작의 순기능을 지지하는 편이다. 가수 윤종신씨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월간 윤종신'이라는 타이틀로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중인데, 그 과정에서 그의 작곡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이 상당수 탄생했다.

블로깅이 힘들 때 오늘의 포스팅에 적힌 1월 1일을 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타이틀에는 평소 좋아하는 문구인 'Ancora Imparo'를 넣었다. 의미는 'I am still learning'.

201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