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11월 26일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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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나는 최경환의 정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말의 기대감을 전부 버렸다. 고용시장을 유연화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고용 형태의 유연화가 아닌 임금의 유연화다. 특히나 뒤늦게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임금의 상승과 고용의 안정화가 필수적인 국면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자산 가격과 경기를 지탱해 놓고, 유보금 과세를 통해 노렸던 것이 임금/배당의 확대가 아닌 투자의 확대였다는 뜻일까? 한국 위험자산에 관심을 두지 않은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아마 앞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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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들의 내년도 전망을 보고 있는데,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드는 문구 넘버 원은 '고령화에 따른 경기 성장률 둔화'가 아닐까. 인구구조는 경제 분석에 중요한 요소이고, 투자 아이디어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때가 있지만 저런 방식은 절대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경기 성장률 둔화' 문구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투자에 적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석유의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장 내일부터 유가 long을 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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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어서 최악의 2015년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유가 하락과 유로존 경기 둔화 우려 완화로 올 연말에서 내년 1분기까지의 국내 지표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 이를 한국은행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라는 착각에 빠져 상반기 내내 동결을 하고, 하반기에는 철저한 미국의 독주가 강화되며 한국은 소외되는 것.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짧은 생각

내년도 전망을 하는 중인데 생각할수록 한국은 암울하기만 하다.

경기는 하방리스크가 더 크고, 물가가 상승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가계부채와 임금정체로 내수 확대 여력은 없고, 미국 경기가 더 개선되더라도 reshoring에 따른 교역량 감소로 한국이 받는 수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소비 관련주로 버티는 주식시장은, 언젠가 중국 소비재 기업들의 점유율 침식이 가시화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위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최경환의 등장에 나를 포함한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기대감을 가졌지만, 추진력과 성과는 아직까지 기대 이하이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추진력이라는 점이다. 올바른 정책의 방향성과 함께 빠른 속도가 필요한 국면인데, 속도가 붙을만한 신호는 포착되지 않는다. 사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좀처럼 희망적인 면을 찾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나는 금융시장에 참가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정말로 암울해 보인다면, 나는 암울함에 베팅하는 포지션으로 돈을 벌면 될 뿐이다.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지, 경기가 엉망이라서가 아니다. 실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지만, 실패에 따른 원망의 전부를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길.

2014년 11월 2일 일요일

수급분석의 허망함. 좋은 스승을 만나는 길.

금융권에서 일을하며 느낀 당황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나름 전문가 직함을 달고 있는 분석가나 투자자들조차 수급분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종목, 업종, 지수, 선물을 막론하고 외국인의 매매동향은 성배로 추앙받는다. 외국인이 사고 팔아서 오르고 내렸다는 식의 주장들이 심심치않게 오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분석은 투자에 조금도 도움이되지 않는다. 특정 주체가 사고팔았던 내역은, 그 주체가 사고팔았다는 사실 자체 외의 그 어떠한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코스피 선물을 8천계약 순매수 했다는 것은,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수 많은 시장참여자들의 매매의 결과를 나타낼 뿐이다. '요즘 외국인이 사서 가격이 올랐어'라는 말은 '요즘 가격이 올라서 가격이 올랐어'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외국인이 아닌 타 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그런 분석을 할 바에는 차라리 기술적 분석을 하는게 낫다.

주체별 분석이 아니라도 수급분석이 의미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 보다 많아서 오른다'는 문장은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바보같은 문장이다. 사려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봤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없으면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박경철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격은 비보유자들의 조바심 때문에 오른다.

투자자들이 수급분석의 환상에 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수급과 가격의 관계가 눈으로 쉽게 확인되고, 2)실제로 수익을 내는 몇몇 투자자들조차 수급분석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의 오류는 보통 게으름에서 발생한다. 사람은 특정 포인트에서 고민을 하다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눈으로 쉽게 확인되는 요인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자는 고민을 멈추고 삶의 긴장을 풀어버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행위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돈을 번 투자자가 수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상은 왜 발생하는가? 조금 더 넓게는, 성공한 사람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학들의 사다리를 치워 본인의 성공을 장기간 공고히 하기 위함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성공한 사람들의 잘못된 조언이 빈번한 이유는 그들의 상당수조차 본인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장중 수급을 보고 매매를 한다는 탁월한 트랙레코드를 지닌 프랍트레이더는, 사실은 직관과 통찰력으로 매매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수급을 본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에게 수급을 어떻게 보는지 알려달라 간청해도 그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진심으로 모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승철이 슈퍼스타K에서 두성을 활용하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에게 레슨을 아무리 받아봤자 노래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이 어떻게 노래를 잘 하는지 남에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깐. 그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노래는 타고나야 한다'는 결론을 지어버린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의 능력을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표현력이 좋아 짧은 글이나 대화만으로도 자극을 줄 수 있고, 탁월함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압도적이라는 것. 다만, 문제는 나의 수준이 일정치 미달이라면 그들이 주는 자극을 자극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나의 수준을 스스로 끌어 올리는 것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유일한 길. 대단히 역설적인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