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8일 목요일

불멸의 이론

8월 한 달간 나는 미국 주식에서 너무 느렸고, 유로화에서는 너무 빨랐다. 미국 주식에서 느렸던 것은 돌이켜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장의 맥락과 내 여건을 고려했을 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결과적으로도, long view의 강도가 다소 약했을 뿐 틀린 방향을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로화 short view를 일찍 접은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 1) '이정도면 유로존이 편안해질 만한 레벨이 아닌지' 라는 나이브한 생각과, 2)닥스 반등에 대한 의구심이 겹쳐 1.33중반에서 view를 접었다. 그러나 닥스는 내가 trading range의 중단부로 보는 9500을 회복했고, 유로존 금리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결국 지금 유로는 1.317 부근. short view를 유지했던 폭 만큼의 추가 약세가 view를 철회한 후 진행되었다.

심기가 다소 불편한 상황인데,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 변화된 스타일이 감지되어 재밌는 부분도 있다. 나는 전형적인 trend follower였고, 지금도 그렇다. 과거에 코스피를 거래했을 때, 내 승률은 50%도 되지 않았지만 이길 때의 이익 폭은 졌을 때의 수 배를 넘었었다. 손실은 한정시키고, 이익이 나는 거래를 잡았을 때 최대한의 폭을 취한 결과였다. 즉, 예전의 나였다면 유로 short view를 중간에 철회하는 일은 웬만해선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장인이되어 손과 발에 무거운 추를 묶게 되면서, 나는 예상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대응이 90% 예상이 10%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80% / 20%는 되는 듯.

눈 앞에 무수한 동굴이 있고, 각 동굴에는 랜덤한 양의 금화가 들어 있다. 동굴의 문은 랜덤한 순서로 열리고, 동굴 안에 금화가 뿌려져 있는 형태 역시 랜덤이다(어떤 동굴은 금화가 초입부터 있고, 어떤 동굴은 방 깊숙한 곳에 금화가 몰려 있다). 과거에 나는 문이 열리는 모든 동굴에 들어가서, 들어가자마자 금화가 보이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줍고 나왔고, 동굴 초입에 금화가 없으면 바로 돌아나와 다른 동굴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은 동굴에 드나들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걸렸다. 문이 열리는 동굴을 보아도  저 동굴 안에 금화가 있을지 예상해야하고, 동굴을 열고 들어가서도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면 금화가 더 있을지 예상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체력이 덜 필요해 보이지만, 두려움과 짜릿함이 배가되어 스트레스의 총량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은 확실.

과거의 내 투자 스타일, 현재의 스타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아마도 앞으로의 스타일로까지 관통될 불멸의 문장은 '매 순간의 최선을 추구하되, 틀리면 바꾸는 것'. 최근 읽은 베이지안 관련 서적의 제목이 '불멸의 이론' 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꽤나 철학적인 네이밍이었다.

즉,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그 원칙 중에는 '상황에 따라 원칙을 변경한다' 는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유연한 원칙주의자' 라는 말도 안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투자라는 행위가 어려운 이유.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8월 24일

30대 초반 펀드매니저들의 퇴사가 많다는 기사들을 읽었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81010344045801&outlink=1)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0/2014082002825.html)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인 현상이며, 원인 역시 심플하다. 현재 운용사의 보상 수준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상황이 개선되려면 1)운용 수수료가 인상되고, 2)운용사의 급여 체계가 전면 수정되어야 하는데 둘 다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국내 운용사의 인력 공동화는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인력들은 다 어디로 향할까? 결국은 외사, 부띠끄, 개인투자, 자문사, 타업종을 향할 수 밖에 없다. 수탁고 규모가 뒷받침되는 국내 운용사의 미국주식팀 정도는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은 내가 미국 주식 강세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

잘 풀리면 회사에서 과실을 취하고, 일이 틀어지면 개인이 전부 책임지는 시스템에 조인할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키워줬더니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는 비난은 '의리'라는 측면에서 얼핏 그럴듯 해 보이지만, 수익의 배분이 1:9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착취에 가깝다. '의리'로 포장된 불안함에 매몰되지 말고 빨리 떠나는 것이 맞다.

결국 간접투자 시장의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 일반인이 괜찮은 상품을 만날 확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바보같은 행정과 금융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영진들의 합작.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버려지는 소들

소위 소몰이 창법으로 분류되던 몇몇 가수들의 최근 무대들이 꽤나 흥미롭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힘을 빼고 노래하는데,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점은 1)톤의 감성이 8-90년대에 가깝고, 2)발성적으로 진보했고, 3)대중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 나는 대중 컨텐츠가 당대의 니즈와 수준을 잘 반영한다고 믿는 편. 하지만 문화 소비에는 노이즈가 많아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얻어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박효신은 지난번에 포스팅 한 바 있고, 소몰이를 버린 또 다른 가수의 예로는 김진호.  

음색에서 이문세가 언뜻 느껴지고, 소리의 타점이 꽤나 균일하다. 안면 근육은 전보다 적극적이며, 서 있는 자세도 SG워너비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다. 저렇게 반주 개입이 적은 도입부를 가진 곡에서 어색하지 않은 소리를 유지하려면 상상 이상의 스테미나가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 압구정 길거리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어수룩한 이미지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그 땐 고민이 많은 실용음악과 학생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남자의 자격에 박칼린과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 최재림 같다. 자심감이 충만하다. 물론 원래 좀 닮기도 했다. 

이 외에도 휘성, 환희, 하동균 등의 가수들 역시 많이 바뀐 편에 속한다. 사실 관심이 다시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 근 1-2년이라 그렇지, 이들이 소를 버리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다. 조금 넓게 보면, 소 뿐만이 아니라 '감정 과잉'이라는 카테고리가 점점 버려지고 있는 듯.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곡들의 경박단소화는 아직 진행중이며, 가끔있는 서정적 곡들도 대개 가볍게 표현된다. 나는 문화가 사이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이클 전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각기 다른 사이클을 경험한 사람들 간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태양의 눈코입을 듣던 학생이 히든싱어에서 김경호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 같은 노래를 접하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실력있는 가수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것 뿐인 듯 하다. 앞서 언급했던 가수들은 모두 펀더멘털한 보컬 능력이 갖춰진 가수들이었다. 본인의 기존 색깔을 버린다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지금의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력은 했을 것이지만, 아예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배우는 만큼의 난이도는 아니었을 것이란 뜻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과거와 현재의 소리의 뿌리는 거의 비슷하다. 본인들의 실력을 바탕으로 변화에 적응한 셈.

이곳에 따로 적지는 않겠지만, 소를 버렸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수들도 있다. 구강 내의 얕은 컨트롤을 통한 표면적 허스키를 구사하던 몇몇 가수들은 여전히 재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재기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None were started by one person

시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투자를 '돈을 버는 행위'라고 정의했었다. 그 후에는 '통찰적 뷰를 갖는 것', '손실을 방어하는 것', '넓고 깊은 리서치를 기반으로,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호기심을 풀어 나가는 것' 등의 다양한 표현들로 투자를 정의해보려 했다. 돌이켜보니 다 맞는 말이고, 특히 처음 내렸던 정의가 제일 중요한 듯 싶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 부분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 짜증이 난다. 그것도 시장을 잘못 읽어서가 아닌, 시스템적인 이유들로 인해. 보상이 낮은 현 구조에서, 바보같은 행정이 지속된다면 결국 이 업계에는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특별한 지표 발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꽤 큰 변동성을 보였다. 미국 10년물은 2.40대 마저 위협받았고, S&P와 나스닥의 조정폭도 예상보다 깊었다. 미국채는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한, 먹을 수 있는 데까지 전부 먹어보겠다는 심리가 여전한 듯 하다. 미국채 숏 뷰를 접지 않았으면 꽤나 괴로웠을 뻔 했다. 미국 주식은 아직 밸류에이션, 테크니컬 분석 양 측면 모두에서 견조한 것으로 판단 중이다.

목요일 금 가격의 장중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와 이라크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시장 전반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그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나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 결정 덕분에, 미-러 충돌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이 한층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금요일 미국 시장의 반응만 보면 시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은 지켜 볼 일.

오히려 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DAX의 가파른 하락세이다. 금요일에 이어 다음 주에도 반등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현재의 하락 폭은 독일(을 포함한 EU전반) 경기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조업, 생산 관련 독일 지표들은 둔화되고 있지만, 중국의 독일향 수출은 아직 견조한 편. 어느 요소가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무엇이 핵심인지 파악하고 있는 투자자라면 이럴 때 포지션을 무겁게 해 볼만 할 텐데. '경기 조정 사이클에 러시아 불안감이 겹친 것에 따른 결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만, 편안하게 분석하면 계좌가 불편해진다.

정책 기대감에 따른 코스피의 반응은 강렬했으나, 길고 좁은 박스를 단번에 깨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가격의 박스는 길고 좁을수록 그것을 인지하는 참여자들의 수가 증가한다. 코스피는 1800~2050의 박스를 약 3년간 형성했고, 박스 상단으로만 최소의 3번의 try가 있었다. 복원력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많은 투자자들이 수-목 양일간 2050 포인트의 지지를 노렸겠지만, 그래서 코스피는 박스권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테크니컬한 뷰일 뿐. 중장기적으로 코스피를 좋게 보는 것은 변함없다.


두서 없는 블로깅의 마무리로는 이번 주말 봤던 TED 강의를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