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월요일

1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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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꼭 시장에 대한 생각이 아니더라도 온갖 상념들을 트위터나 에버노트에 난잡하게 기록하다가 가끔 블로그에 공개글로 포스팅 하기도 한다. 시장을 글로 적는 과정에서 나의 뷰를 정돈할 수 있듯이, 상념들을 기록해야 내가 내 라이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자각이 가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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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짧게 쓴 적이 있지만 운용사에 다니는 사람은 1) 일정한 엔트리 베리어 뒤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하려는 부류와, 2) 궁극적으로 훌륭한 투자자 혹은 트레이더가 되길 추구하는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듯. 나는 타인의 돈을 양심적으로 굴리려면 당연히 후자의 기세로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전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딱히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운용사의 보상 구조는 오히려 전자를 지향하는 것이 합리적인 쪽으로 짜여져 있다. 다만 전자를 지향한답시고 넋 놓고 역량을 쌓지 않으면 언젠가는 회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운에 맡겨야만 하고, 커리어를 그렇게 운에 맡기면 라이프 전반이 운에 따라 출렁일 수 밖에 없다. 스스로의 업무적 위치를 지배하지 못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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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김상무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광화문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 주셨다. 한국에 와 계시는 기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시간을 따로 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 커리어 관련 조언을 많이 해 주셨는데 역시 내 입장에서는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따라 가거나 트레이딩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상책. 가급적이면 이자율 뿐 아니라 최소 fx까지는 트레이딩이 가능한 곳으로.

나중에 financial freedom을 얻으면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는데 명확하게 대답을 드리진 못했다.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다.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그만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즉 시장과 같은 속성을 지닌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시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구현해 보고 싶은 막연한 생각은 든다.

같이 공부하며 글을 나눠 읽는 친구들을 모아 저녁을 한 번 하자는 말씀을 주셔서 또 감사했다. 그런 친구들이 몇이나 되냐는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2~3 명 남짓. 이정도면 꽤 많은 숫자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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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또래 주식 매니저 중 탑다운과 바텀업에서 각각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둘과 점심 식사. 내가 몇개월 째 무료한 채권시장에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둘의 대화가 정말 재밌었다. 시장에 접근하는 각도가 꽤 다른 둘이 결국 어떤 접점에서 만난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많은 주제가 오갔지만 다들 업사이드 리스크를 염두에 두며 고민 중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직전 포스팅에 적었던 미국 주식 하락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웠다. '언제 정리해야 할 것인지'가 아닌, '위로 가면 뭘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 라는 이들의 대화가 현재 주식시장의 컨센이라면 리스크 오프가 단시일 내 불거질 가능성은 낮다. 진짜 범인은 수급이라는 김대표님의 마켓 글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 또 하나 배웠다.

2016년 5월 25일 수요일

My technical views (10)

최근의 자산별 흐름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마 유가와 미국 주식의 강세가 아닐까 싶다. 특히 상품 가격에는 개별 요인이 작용 중일 수 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매크로 조건 하에서 미국 주식이 지탱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만간 하락하겠거니 하는 마인드로 가격을 관찰 중인데 방금 꽤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흐름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차트에 소위 말하는 추세선을 그리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지만, 지금처럼 뷰와 반대되는 방향으로의 가격 흐름이 전개될 때 역발상 차원에서 이용하는 것은 가끔 도움이 된다. 위 차트는 얼핏 테크니션들이 좋아하는 '저항 추세선의 돌파'로 보일 수 있는데, 나의 뷰가 숏이라면 이런 돌파는 오히려 좋은 가격에 숏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기술적 분석에서 말하는 trap이 발생한다는 데에 베팅하는 셈. 전략은 전고점인 2,100을 로스컷으로 잡아도 무방할 정도의 포지션 사이즈로 미리 진입하거나, 또는 하향 추세선을 재하회할 때 따라서 진입하거나. 미국 주식도 방향성을 잡을 날이 가까워진 듯.

4월 광공업생산 예상

2월과 마찬가지로 3월 광공업생산 예상은 수치의 폭은 차이가 있었지만 방향성이 맞아 전망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어차피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기준금리 인하가 자꾸 지연되어 한국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극도로 축소되다보니 산생 예상을 트레이딩 찬스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근 3개월간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역캐리가 나지 않는 짧은 구간의 특수채나 매입해 두고 거래는 최대한 자제했던 사람이 승자.

4월 광공업생산은 내 계산상으로는 -3%YoY, -2%YoY수준이 나오는데 신뢰도가 높지는 않다. 총선 등으로 조업일수가 줄고 자동차 생산이 -13%YoY인 영향이 지대했으며, 3월에 반짝 반등했던 철강(-17%YoY), 반도체(-11%YoY), 휴대폰(+3%YoY) 수출도 다시 하락세. 15년 4월 산생이 -2.33%YoY였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금번 수치가 과연 -3%까지 나올지 회의적이긴한데, 지금 한국 지표는 추세적으로 부진한 국면이기 때문에 기저효과를 근거로 지표의 호조를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재고 조정이 관찰되는지 여부가 역시 관전 포인트.

문제는 4월 산생이 부진해봤자 한국 금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 언제 내리냐의 문제일 뿐 기준금리 인하는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게다가 그 주에는 미국의 주요 지표 발표가 밀집되어 있어 산생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떨어질 듯.






2016년 5월 19일 목요일

잠잠하지 않은 시장

시장이 잠잠하다고 포스팅을 했던 것이 불과 월요일인데 이틀 사이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투표권도 없는 연준위원 두 명의 발언을 재료삼아 미국 금리가 뜨기 시작하더니 어제는 예상보다 hawkish한 FOMC의사록에 금리는 추가로 상승하고 달러도 강세. KRW 숏 수익이 꽤 괜찮은 상황.

최근의 상황들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깊게 진행되었던 달러 약세가 AUD와 KRW등 아시아 통화의 약세를 필두로 되돌려졌다.

2) 연준의 추가 인상에 대한 우려가 제로에 가까웠는데, 연준 위원들의 발언과 FOMC 의사록으로 추가 인상 경계감이 다시 고조되는 중.

사실 연준위원들의 발언이나 FOMC의사록에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달러약세와 금리하락이라는 방향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던 센티멘트가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일련의 가격 흐름들이 유발되고 있다고 본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 중인 것들은,

1) 달러가 다시 강세로 가고 금리가 상승했다. 그러면 과연 미국 주가가 현재 레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환율->금리->주가)

2) 달러의 강세 전환이 CNH이슈를 자극해 연초와 같은 아수라장이 초래될까. CNH는 이미 6.6에 근접 중.

3) 조만간 한국 채권 롱을 담을 찬스가 올 듯.

4) KRW, CNH 약세 뷰 유지.

추가 : 5) 이 분위기가 유지되면 한은은 6월에도 또 금리를 내리지 못할 듯.

2016년 5월 16일 월요일

잠잠한 시장

5월의 반이 지났는데 이번달은 유난히 블로그 포스팅이나 그 외 쓰는 글의 수가 적다. 개인적인 이유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장 전반이 너무 잠잠한 탓도 크다. AUD, EUR, KRW등 몇몇 통화의 약세 외에는 별로 움직인 자산이 없다. 이럴 때 리서치와 공부를 깊게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금요일에는 미국은 소매판매, 국내는 금통위 정도가 이벤트였지만 역시 큰 임팩트는 없었다.  +1.3%MoM, +3%YoY를 기록한 미국의 소매판매는 예상치를 크게 상회했을 뿐 아니라 품목별로도 고른 개선세를 보여 지표를 나쁘게 해석할 여지가 거의 없었음에도 10년 금리의 강세로 커브는 플랫되었고 주식도 하락 반전. 월초 4월 비농업고용이 부진했을 때와 정 반대의 시장 반응인데 당시 형성한 금리와 주가의 저점은 지지선으로, 소매판매 호조에 형성한 금리와 주가의 고점은 저항선으로 하는 박스권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듯.




박스를 탈피한다면 금리와 주가가 하락하는 risk-off쪽이 훨씬 유력해 보이지만, 금리는 이미 연초 중국 리스크가 대두될 때의 레벨에 와 있다는 점에서 하락의 room은 주식이 월등해 보인다. 그러나 마땅한 트리거가 가시적이지는 않아서 당장의 risk-off 베팅에는 개인적으로 유보적인 입장.

금통위는 만장일치 동결 + dovish한 총재의 기자회견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금리를 동결한다면 dovish한 멘트를, 인하한다면 hawkish한 멘트를 예상했던 이유는 그게 총재에게 가장 편안한 선택이기 때문. 구조조정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hawkish한 멘트를 해버리면 '한은이 구조조정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빈축을 사 버리기 쉽다. 반면에 한은이 실제 인하를 단행했다면 총재는 선심쓰듯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내가 금리를 내려준 것이지 경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며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소멸시켰을 것이다. 6월 금통위도 같은 스킴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2월부터 이어지는 단기물 역캐리의 향연은 최소 6월까지 연장된 셈. 대신에 6월에는 한은이 인하에 나설 확률이 아주 높다고 본다. 조만간 포스팅 하겠지만 5월말에 발표될 4월 산업생산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고, 구조조정 논의가 5~6월 내에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면 6월 정도면 한은이 '선제적으로 내렸다'라고 생색 내기에 괜찮은 타이밍이기 때문. 다만, 5월부터는 수출 지표가 기저효과로 인해 마치 긍정적인 것처럼 발표될 개연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

결론적으로는 또 다시 CNH, KRW 약세 뷰만 유지. 상술했던 risk-off가 진행되어도 나쁠게 없는 포지션이고, 재 둔화되는 중국 지표, 유가 반등이 야기할 신흥국 무역수지 흑자폭의 축소, 연준의 금리 인상 지연 덕에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긴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입장 등을 포괄할 수 있는 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배경에 깔린 가장 큰 스토리는 중국의 붕괴.

2016년 5월 14일 토요일

5월 금통위 예상

오늘은 드디어 신임 금통위원님들이 참여하는 첫 금통위. 시장의 예상은 85%정도는 동결인데, 이번 금통위는 인하 소수 의견의 존재 여부, 한국판 QE에 대한 총재의 코멘트 등 동결/인하 여부 자체 외에도 변수가 꽤 많은 편. 내 생각으로는 인하 가능성은 40%정도 되는 듯 하고, 인하를 단행하면 기자회견은 hawkish, 동결한다면 기자회견은 dovish할 것으로 예상.

코스피는 금리가 동결되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인하가 단행되면 소폭의 강세 압력은 받겠지만 기본적인 껌딱지 장세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는 3년이 어제 기준으로 1.42%에 마감되었는데, 인하가 단행되면 최대 5~7bp정도 강세를 보이다가 결국 1.40%근처에서 마감될 듯 싶고 동결되더라도 금리가 의미있게 상승하진 못할 듯. 때문에 채권 포지션을 미리 구축해 둘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굳이 금통위를 재료로 거래 한다면 달러원이 괜찮아 보이는데, 금리가 동결되더라도 원화 강세 폭은 제한적일 듯 하고 인하된다면 1,175원 위를 트라이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 그러나 인하 기대감이 달러원에 얼마나 녹아 있는지 단서가 충분하지는 않아서 아주 편안한 전략은 아니다.

금통위와 무관하게 4월 말부터 보고 있는 KRW와 CNH 약세 뷰는 아직 유지 중. 마땅히 강세로 반전될 요소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2016년 5월 7일 토요일

4월 금통위 의사록

한은이 4월까지 금리를 동결하면 2분기 내에 인하는 없다는 것이 나의 베이스 시나리오였는데, 최근 한국판 QE 논쟁에서의 이주열 총재 발언들을 종합해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구조조정에 적극 지원하겠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와 같은 발언은 사실상 '내 판단으로 움직이기는 싫으니 자금을 지원하고 금리를 내리라고 나에게 명령을 해달라. 시키면 하겠다' 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의 한은은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내린다. 그리고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도래하고 있다. 인하 기대감만 만연한지 3개월째인데 5~6월 내 인하는 이제 정말 단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래는 연휴 직전에 공개되었던 4월 금통위 의사록. 위원 네 분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다음 금통위를 가늠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매칭은 역시 임의로.



위원1 - 함준호 or 장병화
설비투자 위축이 단기적 내수 부진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 앞으로 내수를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가 이어지겠지만 회복세는 다소 약화된 것 같고, 물가도 1%초반의 낮은 수준을 상당기간 지속할 듯.

그러나 성장경로 하향조정은 1분기 성장세가 중국 등의 대외여건 불확실성 증대로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한 탓. 최근에는 회복조짐이 있고, 2분기부터는 개선세를 이어갈 것 같으니 지켜보자. 지금 금리는 여전히 완화적이다. 동결.


위원2 - 정순원 (임기만료)
성장과 물가 흐름이 예상보다 약화되면서 경로가 소폭 하방 이동. 생산 부문의 유휴생산력도 유의하게 개선되지 못하는 중.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추가적인 금리조정의 필요성이 생성되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으므로 2분기의 성장과 물가를 확인하면서 금리 조정의 유연성을 견지하자. 동결.


위원3 - 문우식 (임기만료)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조정은 연초의 저조한 실적에 비추어 이미 예상되었던 것. 근원인플레는 2%가까이 유지될 것이며 소비자물가도 하반기로 갈수록 상승폭이 확대될 것. 전세가격 급등으로 인한 주거비 부담 증가에 유념하자 (3개월째 전세가와 주거비를 혼동 중이신 바보위원님)

저물가 저성장이 고착화 되고 있다. 중앙은행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범위 내에서 경제상황에 적합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개발하자. 동결.


위원4 - 함준호 or 장병화
성장전망치 하향조정은 1분기 부진을 반영한 결과. 2분기 이후의 경로는 당초의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물가는 하반기로 갈수록 올라올 것.

2분기부터 회복될테니 상하방 리스크를 좀 더 지켜보자. 금융안정성 확보도 필요히며,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는 이미 완화적인 수준. 추가적 거시 완화가 요구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통화정책에 우선하거나 이와 병행하여 재정정책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동결.


위원5 - 하성근 (임기만료) -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대내외 여건이 다 좋지 않고, 외인 자금유출 리스크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EU, 대만, 싱가폴 등 다수 국가 중앙은행이 추가 금융완화를 단행했고 연준도 점진적인 인상을 예고 중. 이러한 대외 금융완화 확대는 국내 금리를 다른 나라 금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만들고 통화도 강세로 만든다. 수출 감소세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금년중 성장률과 물가는 당초 전망을 상당폭 하향조정해야 할 것.

금년 하반기 연준이 추가 인상에 나서면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통화정책의 효과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효과가 한정적이라고 관망하면 저성장 저물가 탈피는 더 힘들어질 것. 인하.


위원6 - 정해방 (임기만료)
과거에 비해 비교적 읽을만한 거시경제상황 설명.

이후에는 역시 금융발전이나 상업은행 신용창출 역량 평가와 제고방안 강구 등 의미없는 대안들의 나열. 동결.

2016년 5월

지난 일요일에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토요일 저녁 외삼촌이 계신 중환자실에 들러 외숙모, 사촌형들과 인사를 하고, 늦은 밤에 동생을 데리고 나가 동네 단골 바 두 곳을 소개해주고 귀가했는데 거의 침대에 눕자마자 연락이 왔다. 빈소가 차려지는 동안 눈만 잠깐 붙인 후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5남매 중 막내셔서 외삼촌 연세가 꽤 많으신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웠다.외삼촌은 몇 주 전에 몸이 불편하시다며 그냥 걸어서 병원을 찾으셨다가 바로 간암 판정을 받고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종합검진을 불과 1년 전에 받으셨는데 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소견만 받고 별다른 추가 검사가 진행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그 때 의사가 조직검사를 강력히 권유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토요일 저녁 중환자실에 들렀을 때 면회 인원 제한으로 나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때가 외삼촌을 뵐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줄은 몰랐다.

어머니를 포함해 외가 분들 대부분은 교직이나 공직 생활을 하셨었다. 외숙모들도 전부 선생님이시고 사촌형들 중에 공무원이 없는 점을 어렸을 때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대신에 공무원 형수님들이 많다. 돌아가신 둘째 외삼촌께서는 공직에 계시지 않아 어찌보면 집안에서 나름 희귀한 케이스셨지만 오히려 가장 엄격하고 완고한 공직자스러운 성품을 지니셨었다. 중학생 시절 외삼촌이 집에 오셨을 때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어른이 집에 왔는데 컴퓨터를 한다' 며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촌형은 귀가하기로 한 시간이 지나자 외삼촌이 집 문을 열어주시지 않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사촌형의 나이가 무려 서른넷일 때다. 그렇게 완고하셨지만 마음이 차가운 분은 아니셨다. 명절 연휴엔 가끔 나를 따로 부르셔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셨고, 내가 운용사에 입사했을 때에는 취업난 때문에 원치 않는 작은 회사에서 할 수 없이 일을 시작한 줄로 오해하시고는 모 중견기업 대표로 계시는 친척분께 내 얘길 해 놓으셨다며 걱정말라고 하셔서 마음은 참 감사하지만 난감했던 경험도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내가 아주 어릴적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실상 친인척과의 이별은 나에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에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을 느끼는 타인의 모습에서 또 다른 슬픔을 느낀다. 가족의 죽음은 두 슬픔의 무게가 모두 크다. 부재를 일상에서 계속 감당해야하고, 슬픔을 느끼는 타인이 또 다른 가족이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에 모친상을 당했던 한 친구는 화장장에서 외할머니께서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며 '아이고'라고 하실 때 장례식 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었다. 납골당 안치 직전 셋째 외삼촌께서 항아리를 어루만지며 외마디 울음소리를 내자 고요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어머니께서 인사를 드리는 순간에는 끝까지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눈을 돌렸다. 거칠게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유난히 생기 있는 납골당 정원 꽃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는데 그곳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는 것만 같았다.

어제 기분전환겸 가족들과 남산 주변을 산책하고 한남동에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산책하고 저녁을 먹는 내내 어머니 표정이 밝았다. 오전에 셋째 외삼촌과 동두천에 가족묘 자리를 보고 오셨는데 자리가 전망과 볕이 아주 훌륭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하신다. '나도 나중에 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 라고 하시는데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한 아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기 까르보나라가 맛있어' 라는 대답을 내가 드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