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what the market says (4) - 10월 FOMC

지난 글에서, 통화완화의 기대를 중앙은행들이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드라기총재의 완화적인 코멘트로 지난 예상은 틀린 것이 되었다. 완화적인 ECB에 미국, 유럽 주식들은 랠리했고, 중국의 정책금리 인하가 상승 추세를 강화시켰다.

여기까지는 시장의 스토리가 나름 잘 맞아떨어졌는데, 어제 FOMC statement 직후의 시장간 흐름은 조금 특이했다. 예상보다 꽤 hawkish했던 statement가 공개된 후, 유로와 엔화는 약세로 가고 미국 금리는 구간별로 대략 6~7bp정도 하락했다. 그런데 잠깐 하락했던 미국 주식은 다시 상승하여 고가를 재경신하는 수준에서 종가를 형성했다. 최근 미국 주식의 랠리가 각국의 추가적인 통화 완화에 기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hawkish한 FOMC에도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조금 이상한 흐름이다.

아마도 이러한 흐름은 아래 두 논리 중 하나를 배경으로 할 것이다.

1) 미국이 tightening을 시작한다는 것은 미국 경기가 강하다는 의미이므로 주식에는 강세 채권에는 약세 요인이다. 즉, 미국 주식은 연준의 금리 인상을 견뎌낼 수 있다.

2) FOMC가 hawkish해봤자, 어차피 근시일 내 금리를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완화 기조는 당분간 유지된다.


1번의 논리가 더 매끄럽기는 하지만, 미국 금리의 하락폭이 별로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2번의 가능성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오늘 나오는 3분기 GDP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면 당분간의 시장 논리가 어떤 쪽일지 판명 가능할 것. 1번이면 Good news is good news, 2번이면 Bad news is good news.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5) -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전세값 상승으로 주거비 부담이 폭증하지 않나

역시나 정치적 용도로 즐겨 활용되는 문장이다. '금리인하는 전세값 상승으로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킨다' 라고 연결하면 더욱 그럴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많은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

먼저, 주거비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주거비란 무엇인가? 집을 보유 중인 사람의 연간 주거비는 간략하게 '연간 세금지출+{(금리*연초 집값)-연간 집 가치의 상승폭}'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식이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넘어가자. 물론,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했다면 이자비용도 주거비에 포함시켜야 한다. 월세로 사는 사람의 주거비는? 아주 쉽게 월세지출 그 자체가 곧바로 주거비가 된다.

문제는 전세다. 전세의 주거비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예를 들어보자. 전세보증금 1억에 금리가 4%라면 기회비용 관점에서 그 전세의 주거비는 연 400만원이 된다. 만약 전세보증금이 2억이고 금리가 2%라면? 마찬가지로 그 전세의 주거비는 연 400만원이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전세의 주거비는 '전세보증금'을 뜻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이 두 배로 뛰어봤자, 금리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면 주거비용은 조금도 상승하지 않는다. 내가 전세로 살던 집의 전세값이 두 배로 올랐다 하더라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금리로 그 만큼을 대출 받아 보증금을 내면 주거비용은 그대로다. 단순히 전세보증금이 상승했다고 주거비 부담이 폭증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번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된 작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세보증금은 얼마나 상승했고 대출금리는 얼마나 하락했을까? KB전세가격지수는 107.1에서 113.5로 약 6% 상승했고, 신규대출 기준 kofix금리는 2.48%에서 1.54%로 약 38% 하락했다. KB전세가격지수를 믿기 힘들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금리의 하락률이 38%에 달했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이 60%상승했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해도 주거비는 여전히 flat하게 된다.

저금리가 월세시대를 앞당기고, 전세보증금을 높이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전세보증금 지불을 위해 받은 대출을 원리금균등상환으로 갚아 나가면, 원금을 갚는 금액 만큼 강제로 저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소비가 소폭 줄어들 수는 있겠다. 그러나 높아진 전세보증금이 곧바로 주거비의 폭증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거비'와 '전세보증금'을 혼동하지 말자. 두 개념을 혼동하면 자칫 전세보증금의 상승을 기준금리 인하 저해 요인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결국 통화정책을 이해하거나 예상할 수 없게 된다.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4) - 통화완화 정책은 실물경기 부양 효과 없이 양극화만 초래한다

통화완화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문장이 가진 논리 흐름은 다음과 같다. 1)통화완화 정책은 실물경기에 효과는 없이 자산가격만 상승시키고, 2)따라서 자산을 들고 있는 부유층의 부만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

먼저 통화완화정책이 실물경기에 효과가 없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면, 첫 번째 글인 '왜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하는가'를 다시 읽어 보는 것이 좋다. 통화완화를 하면 가계나 기업은 돈을 빌려 소비나 투자에 나서게 되고, 소비나 투자를 한다는 것은 곧 실물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듯이 금융위기와 같은 극심한 불황 후에는 위의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 때는 통화완화를 해도 경제주체들이 좀처럼 돈을 빌리지 않으며, 풀려나간 돈들은 금융시장 안에 머물며 자산가격을 상승시킨다. 이 부분을 지적하며 '그것봐라 자산가격만 부양시키지 않나?' 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일차원적인 의문에 불과하다. '통화완화를 해도 경제주체들이 돈을 빌리지 않고, 자산가격이 부양되는 경우'의 불황이란 바로 경제주체들의 밸런스시트가 훼손되는 불황을 뜻한다. 밸런스시트 불황은 자산가격이 폭락하여 발생하는 불황을 의미하는데, 이 때는 통화완화를 해서 자산가격을 부양시키는 것 만으로도 불황의 심화가 저지된다. 바꿔말해, 통화완화가 자산가격 붕괴를 저지해주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은 부채비율의 추가 악화를 피할 수 있으며, 밸런스시트를 복구해 나가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통화정책의 효과에 대해 끝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화정책을 예상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러한 의문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통화정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 어떤 나라의 통화정책회의 멤버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의 투자전략회의에서 '열심히 해봤자 베타를 이길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듯이,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내리거나 올려봤자 경기가 바뀔까'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통화완화정책이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양극화가 초래된다'는 문장은 어떨까? 일견 타당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이 역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폭증한다'와 더불어 정치적 목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일 뿐이다.

만약에 중앙은행이 경기침체를 방조하며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다고 해 보자. 경기침체에 따른 기억이익 악화로 임금이 줄어 중산층 이하의 가계소득은 감소하겠지만, 자본소득이 많은 부유층들은 임금 하락에서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 만약 자산가격, 이를테면 주택 시장의 붕괴를 중앙은행이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중산층은 붕괴되고, 전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해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가장 먼저 망하게 되는 전세민들이 주택 가격 폭락을 염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오히려 부유층들만이 염가에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향후 가격이 회복하면 막대한 수익을 누릴 것이다.

애초에 양극화 문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양극화는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통화완화를 하면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정치권의 책임회피적 목소리에 호도되어서는 통화정책을 전망할 수 없다.

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what the market says (3)

어제의 글로벌 주식시장 흐름은 매우 흥미롭다.

일단 상해지수가 기술적으로 의미 있다고 보던 레벨인 3,400pt 안착에 실패하며 무너져 내렸다. 코스피도 따라 내려가고, 한국 채권금리는 하락하고. 그런데 닛케이는 이를 무시하고 상승폭을 확대해 나가더니 장 막판에도 별로 밀리지 않았다. 닥스가 이어 받아 상승 마감했고, 미국 주식은 정체.

글로벌리 중국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꽤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흐름들은 조금 어색한 면이 있는데, 결국 내가 읽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중국 리스크는 아직도 시장에서 인지 중이다. 특히 한국같은 인접국은 피해가 막심할 것.

2) 그러나 추가 금융완화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은, 그에 대한 기대감이 중국 우려를 압도하고 있다. 때문에 유럽과 일본 주식은 비교적 견조.

마침 오늘 ECB를 시작으로 다음주까지 주요국의 통화정책 회의가 밀집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2번의 기대를 중앙은행들이 충족시켜줄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만약 금융완화 기대감이 지워지면 아마도 상해시장의 하락은 글로벌 주식시장으로 재전염될 것.

2015년 10월 20일 화요일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3) -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자본이 유출되지 않는가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자본이 유출된다는 논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먼저 '미국 채권 금리가 2.5%인데 한국 채권 금리가 2.0%면 한국 채권을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문장의 오류부터 짚어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외채권투자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채권투자의 수익률은 '이자수익+자본이득'으로 나눌 수 있다. 2.5%에 거래되는 채권을 매입하게되면 일단 연 2.5%의 이자수익은 확보되는 셈이고, 매입 시점 이후 금리가 하락하게 되면 자본이득도 얻게 된다.

만약 해외채권투자도 위와 같은 단순한 논리만을 따른다면, 세상에 해외채권투자보다 쉬운 투자도 없을 것이다. 무조건 국내 채권 대비 수익률이 높은 타 국가의 채권을 찾은 뒤, 매입해서 들고있기만 하면 된다. 한국의 1년만기 통안채 수익률이 1.5%인데, A라는 국가의 1년만기 정부채 수익률이 2.0%라면, 1년 내에 망하지만 않을 나라라면 그냥 사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외채권투자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환율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A국가의 정부채를 매입했는데 그 국가의 통화가 한국 대비 크게 절하되어버리면, 이자수익을 훌쩍 넘어서는 환손실을 입게 된다. 가끔 증권사에서 판매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신흥국 채권 상품들이 이러한 경우다. 이자수익은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환율 절하 폭이 더 어마어마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환 헷지를 걸면 어떻게 될까? 해외 채권을 매입하며 환 헷지를 걸면 이자수익이 정확히 본인 국가의 채권 수익률로 수렴한다. 다시 위의 A국가의 예에서, A국가의 정부채 수익률이 2.0%로 한국의 1.5%보다 높지만, FX hedge cost가 두 국가의 이자율 차인 0.5%이므로, 결과적으로 A국가의 정부채 수익을 사고 환 헷지를 걸었을때의 이자수익은 1.5%가 된다. 금리가 더 높은 어떤 나라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해외채권투자는 다음 두 가지 형태로 나눠 볼 수 있다.

1) 해외채권을 사고, 환헷지를 걸지 않는 투자. 경우에 따라 국내 채권을 샀을 때보다 높은 이자수익을 누릴 수도 있지만, 해당 국가에 대한 통화 강세 뷰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2) 해외채권을 사고, 환헷지를 거는 투자. 이 경우 국내 채권을 매입하는 것 대비 이자수익의 메리트는 제로다. 즉, 이러한 투자는 해당 국가 금리의 하락으로 자본이득이 기대될 때 행하게 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미국 채권 금리가 2.5%인데 한국 채권 금리가 2.0%면 한국 채권을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논리는 1번의 해외채권투자 형태에만 해당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다. 1번과 같은 성격의 해외 자금은 한국 채권을 팔고 떠나겠지만, 2번의 투자형태와 각국 중앙은행으로부터의 한국 채권 매입은 꾸준히 유지될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 채권 금리가 미국보다 낮으면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몽땅 팔고 나갈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 주식의 배당 수익률이 미국보다 낮으면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몽땅 팔고 나갈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다.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 유입이 단순히 배당수익률로만 결정되지 않듯이, 외국인의 채권 매수세 유입도 단순히 이자수익의 차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채권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매수세를 감안하면, 미국과의 기준금리 혹은 시장금리 역전 시 일정 부분의 자금 유출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몽땅 유출되어 위기가 올 것이라는 논리는 허망하기만 하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채권을 일부 매도하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본유출이 아니다. 진짜 자본유출은 잘못된 통화정책 대응이나 정책의 실패로 해당 국가의 잠재적 경쟁력이 훼손되어 국가의 신뢰도가 낮아질 때 발생한다. 역시나 내 필력의 부족으로 한-미 기준금리와 자본유출간의 관계 이해가 어렵다면, SK증권 이은택 위원님이 8월 6일에 발간하신 '미국 금리인상이 자본유출을 부른다?'를 참조하면 좋다.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2) -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확대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돈을 빌리는 부담이 줄어들어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내 소비나 투자를 하게 된다. 즉,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당연히 가계부채는 확대된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확대된다는 것 자체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애초에 돈을 싸게 빌려서 쓰라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 가계부채가 확대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통화정책이 아주 잘 작동한다는 뜻일 뿐이다. 오히려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인하했는데도 가계나 기업의 신용이 확대되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통한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 때 중앙은행은 QE나 마이너스 금리 등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펼치게 된다.

바꿔말해, 한국은 기준금리를 통한 통화정책이 아직까지 매우 잘 작동 중인 나라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가계부채의 확대를 부작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부채를 거의 죄악시하는 한국의 통념이 배경이 되어 이러한 집단적 몰이해를 낳는 것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 생각이 꼬이면 매크로 정책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첫 글에서도 썼지만, 민간 신용의 증대를 유도하는 것이 통화정책이고 정부 신용을 증대시키는 것이 재정정책이다. 인류가 가진 거시정책적 경기 조절 수단은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물론, 현재 한국의 가계신용이 꽤 높은 수준이므로 가계신용의 총 규모를 낮추는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디레버리징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경기가 부진하면 통화정책은 완화적인 쪽을 택하게 된다. 예를들어 지금 약 1,000조를 기록 중인 가계부채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정책적 목표라고 해 보자. 부채를 줄이는 방법은 1)헤어컷을 하거나 2)빚을 갚게 만드는 방법 말고는 없다. 헤어컷이 극단적 부실 상황에서만 고육지책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가계부채를 줄이는 방법은 돈을 벌어 빚을 갚게 만드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정책은 금리를 인하해 가계의 이자부담과 실질부채 부담을 줄여주면서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가계의 무리한 추가 레버리징을 가능한 억제하는 것이 것이 된다. 금리인하로 부진했던 경기가 부양되면 가계는 돈을 벌어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다. 차악의 정책은 기준금리를 동결해 가계의 추가 신용 확대만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가 부진한 국면에서 금리를 동결하면,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둔화시킬 수 있어도 경기 부양 및 명목 소득 증대를 통한 부채 상환은 요원해지게 된다. 최악의 정책은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1,000조원의 가계부채와 경기 부진 조건 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가계의 이자부담과 실질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로 명목 소득 증대는 불가능해지며, 자산가치 하락으로 아예 가계의 밸런스시트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다행히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겠다며 경기 부진 국면에서 금리를 인상했던 중앙은행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비판은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문장일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부채를 증가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기준금리 인하다. 경기 부진 국면에서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역시 기준금리 인하를 필요로 한다. 즉, 한국은 여전히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이다.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1) - 왜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하는가

각국 중앙은행이 명시하는 통화정책 목표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거나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한다. '물가 허용범위 내에서'라는 조건이 붙는 경우도 있으나, 그 허용 범위라는 것이 결국 '성장률을 해치지 않는 물가 허용 범위' 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목표는 '경기 대응을 통한 성장 경로 조절' 하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화정책은 '신용'을 통해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돈을 빌리는 부담이 줄어들어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내서 소비나 투자를 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돈을 빌리는 부담이 커지므로 가계나 기업은 빚 내는 것을 멈추고 소비와 투자도 줄이게 된다. 즉,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대응을 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신용(부채)을 컨트롤한다는 뜻이다.

위와같은 기준금리 변경을 통한 경기 대응은 대부분의 경기 국면에서 아주 잘 작동한다. 그러나 1929년의 대공황,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큰 위기 직후에는 문제가 생긴다. 슈퍼부채사이클, 혹은 밸런스시트 불황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디레버리징 국면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가계나 기업이 돈을 새로 빌리지 않는다. 자산가격 급락으로 망가진 밸런스시트를 복구하느라(빚을 갚느라) 새로 돈을 빌릴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가계와 기업의 '새로 돈을 빌리지 않으려는 태도'는 밸런스시트를 완전히 복구한 뒤에도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대공황 이후 미국의 민간 부문이 돈을 새로 빌리기 시작한 시기는 무려 30년이 지난 1959년이었고, 버블로 망가졌던 일본의 밸런스시트는 2000년대 중반 복구되었지만 일본 민간의 신용 증가는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다.

이처럼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췄는데도 기업과 가계의 신용이 증가하지 않으면, 중앙은행은 QE를 통해 본원통화를 찍어내기 시작한다. 신용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통화 유동성의 감소를 의미하므로, 이를 상쇄하기 위해 돈을 새로 찍어내는 것이다. 만약 QE를 통해 통화량을 유지하지 않으면 시중 유동성은 메말라 버리고, 이는 자산 가격의 하락을 가속화시켜 가계와 기업의 밸런스시트를 더욱 망가뜨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통화량을 유지하면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라는 통화주의적 시각에까지 동의하지 않더라도, QE는 자산 가격 급락을 저지하는 역할 그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QE를 통해 통화량을 유지시키더라도 가계와 기업의 신용이 증가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통화량의 유지는 경기회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통화를 찍어낼 수는 있지만, 찍어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산을 매입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때 정부가 나서게 된다. 기업과 가계가 빚을 지지 않으려 할 때, 정부가 빚을 내서 투자를 하면 유효수요가 창출된다. 알다시피, 이것이 케인지언들의 주장이며 미국에서는 현재 크루그먼이나 래리서머스가 이러한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인물에 속한다. 그들은 '통화완화만 해서는 소용이 없고,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이 불황을 끝낼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위 내용들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한 정말 기초적인 내용들이지만, 내가 받았던 질문들의 상당 부분은 위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파생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위 내용을 차분하게,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 필력의 부족함으로 이해가 어렵다면, 레이 달리오의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4rn0kYeoZLo)을 참조하기 바란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My technical views (8) - 상해지수



상해지수의 테크니컬 포인트는 대략 다음과 같다.

- 지난 7월 약 3번의 지지 경험이 있는 200일 이평

- 최근 하락의 추세를 반영하는 45일 이평 (내 마음대로 설정한 것)

- 연초의 고점, 그리고 7월의 저점인 3,400pt 지지를 무너뜨린 하락 갭 (8/24 발생)


당분간 관전 포인트는 갭이 발생한 3,400pt~3,500pt대를 넘는 반등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라고 생각한다. 갭을 메우면 200일 이평까지의 반등을 기대할 수 있고(①), 메우지 못하면 다시 하락 추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②).

이런 상황에서 만약 상해지수를 거래한다면,

1) 갭 하단인 3,400pt에서 적절한 스탑(갭 상단을 스탑으로 해도 됨)을 걸고 short을 잡는다. 하락하면 포지션 유지, 스탑에 닿으면 로스컷.

2) 갭이 메워질 때 (시세가 3,500pt를 상회할 때) long을 잡는다. 갭 중단 또는 하단을 스탑으로 잡고, 목표치는 200일 이평 근처.

느낌상 상해지수는 갭을 메우지 못하고 다시 하락할 것 같지만, 아직은 지켜봐야할 듯.

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My technical views (7)

지난 번에 기술했던 Andrew's pitchfork와 달러원 환율에 대한 차트를 업데이트.


HTS에 기존에 설정되어 있던 지표들이 있어서 복잡해 보이지만, 초록색 선만 보면 된다. 아주 강력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pitchfork의 상단 (또는 하향하는 pitchfork의 하단)을 시세가 뚫고 나가버리는 일은 잘 없다. 특히나 pitchfork의 기울기가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더 그렇다. 8월 위안화 절하로 촉발된 원화 약세 기조가 pitchfork의 상단을 돌파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위안화가 비교적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이자 결국 저항을 맞고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middle line마저 훼손되었고, 보통 기술적 분석가들은 이럴 때 pitchfork 하단, 또는 전고점까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코멘트한다. 

이런 상황에서 long view를 가지고 있다면, technical한 매매 포인트는 1)시세가 다시 middle line을 상회 했을 때, 2)시세가 충분히 하락하여 bottom line에 닿았을 때가 된다. 1)의 경우 middle line을 재 하회시 손절하며, 2)의 경우 bottom line을 하회하면 손절한다. 꼭 Andrew's pitchfork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어찌됐건 진입은 이익 potential은 상당하고 손절은 가까운 지점에서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1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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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들.

갑 위치의 어떤 사람이 동석한 을 위치의 타사 직원에게 은근슬쩍 취업 청탁을 한다. 그 직원은 '추천'이라는 제도가 회사에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어서 그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출신 대학을 한 명씩 물어보더니, 한 여직원에게 'ㅇㅇ여대 출신이 아직 시집을 잘가' 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내 경험상 이렇게 시작되는 말들은 거의 안하는게 나은 말들) 오래간만에 20대 여성분들과 술을 먹으니 참 좋네' 라고 첨언하니, 옆 사람이 신나서 '제가 아까 형님 앉으시라고 그 자리(여직원 옆자리)를 비워 놨었어요' 라고 외친다.

나는 그 술자리에서 신조어인 '개저씨'가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목격했다. 아니, '개저씨' 뿐 아닌 한국의 미개한 단면들을 집약해서 경험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최소 10년 안에는 이딴 불편한 술자리를 언제든 박차고 나올 수 있을만큼 자유로워져야 할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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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제2롯데월드 몰에서 쇼핑을 했다. 안전 우려만 해결되면 코엑스보다야 롯데몰 쪽이 좀 더 잘 될 수도 있을 듯.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표방하며 입점해 있는 음식점 곳곳에서 10%정도 할인을 해 주고 있었는데, 소비를 어떻게든 밀어보려는 정책 당국의 부질없는 노력이 느껴져 한숨만 나왔다. 한국은 가계와 기업이 경기 부진의 고통을 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라다. 참 대단하기도 하지만, 대단하다는 점을 온 몸을 불사르며 증명해 내고 있다는 점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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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중국과 관련된 레폿들을 다 정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글들을 읽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많이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자랑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연말까지의 스케쥴 흐름상 이번주는 좋아하는 글 보다는 필요한 글을 공부했어야 했다. 가장 하기 싫은 일부터 손을 대야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아직도 잘 행하지는 못한다.

2015년 10월 9일 금요일

what the market says (2) - 휴장을 끝낸 상해지수

지난 한 주 동안은 글로벌 주식시장의 스몰 랠리가 관찰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의 경우 기술적으로 전저점 부근이었고, 논팜이 미묘하게 주식에 좋게 해석되었다. 한국과 일본 주식이 꽤 오르고, 원화의 강세가 진행된 것을 보면 상해지수 휴장에 따른 안도랠리의 성격도 강했던 듯하다.

문제는 오늘 상해지수 개장에 따른 시장의 반응들. 코스피는 비교적 강했지만, 그에 비해 국고채 금리의 상승은 상당히 제한되었고, 특히 한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글로벌 주식시장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달러원 환율도 1,155원 부근에서는 추가 하락에 아직까지 탄력이 붙지는 못하는 중. 1,155원은 지난 8월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하기 전의 레벨이다.

오늘의 가격들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시장은 휴장을 끝낸 상해지수가 최소 5%정도는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다. 3% 상승은 불충분하다.

2) 9월부터 최근까지 중국발 쇼크가 많이 진정된 것은 맞다. 그런데 중국이 쇼크가 아닌 연착륙만 하더라도 한국 경기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쇼크는 아니라는 안도감에 코스피가 탄력적 반응을 보였으나, 국채금리는 좀 더 솔직하게 경기 부진을 반영 중인 것.

3) 미국 10년물은 논팜 발표 전 레벨로 돌아왔다. 논팜이 미국 주식에 미묘하게 좋게 해석되는(지난번에 포스팅한) 짧은 국면은 이제 다 지나갔다.


종합하면 '논팜+중국우려의 일시적 해소' 라는 미국 주식의 강세요인이 지워진 셈. 주식시장의 초 단기 랠리는 슬슬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S&P보다 나스닥의 탄력이 떨어지는 것도 꽤 거슬린다. 지금부터 미국 주식이 더 오르려면 실적랠리에 기대는 수 밖에 없는데 그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

2015년 10월 6일 화요일

고수의 생각법

휴가 중 읽은 책인데 나는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는 내가 미숙하게나마 투자 혹은 트레이딩을 해왔었기 때문에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과연 이 책이 보통의 자기계발서 이상으로 다가왔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뭔가 대단해서 나만 이 책을 재밌게 읽었을 것이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저 투자와 바둑의 속성이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문장들이 나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아무래도 휴가였다 보니 정신없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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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벽에 부닥쳤을 때 포기하지 말고 생각속으로 들어가면 좋은 생각이 반드시 답을 찾고, 그런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라고 말한다. 결국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며,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없고 좋은 수도 나올 수 없다. 바둑을 어떤 식으로 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투자자도 마찬가지. 어떤 식으로 투자하고 매매한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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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는 '가르칠 수는 있되 전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투자를 하며 접한 다양한 사람과 글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내 투자는 그들의 투자와는 같지 않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더라도 난 그렇게 될 수 없다. 역시나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 최대한 배우고 동화되려다 보면 또 다른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프로바둑기사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승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승의 삶 전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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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와 장고 중에 무엇이 옳으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프로 기사라면 두 가지 다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바둑은 감각과 실력 모두를 요한다. 가치투자나 모멘텀 투자 중에 뭐가 옳으냐는 질문도 의미가 없다. 어차피 투자로 먹고 살려면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가치가 있는 것에 장기로 투자하면서, 모멘텀 플레이도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가끔 데이트레이딩도 해야 한다, 추세와 비추세에서 살아남는 법을 둘 다 익혀야 하고, 거래하는 대상도 다양한 것이 좋다.
(p144)


-4-
프로 바둑 기사에게 이기고 지는 건 그냥 밥 먹는 것과 같다. 승부 결과에 초연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이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졌을 때 심기일전이 필요하고, 이겼을 때 너무 좋아한다. 밥 먹는 것 같은 레벨엔 도달하지 못했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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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집중해서 생각 또 생각해야 한다. 전에 같은 회사에 계시던 스승님이 정확히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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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인지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다.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좋은 손절, 즉, 뭔가 배울 수 있었던 손절에 관한 이야기다. 언젠가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손절.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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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읽기는 직관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더 발전하는 길은 오로지 공부 뿐이다. 100% 공감한다. 직관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무식한 찍기, 경험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허송세월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p160)


-8-
인간의 두뇌는 무제한의 시간을 준다고 해서 더 위대하게 발휘되지 않는다. 맞다. 오히려 바쁠수록 좋은 리서치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시간이 많으면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뇌가 인지해 버려서 머리를 천천히 굴리게 된다.
(p166)


-9-
실수는 우연이 아니고 나의 어설픔과 미숙함이다. 실수에 패턴이 있고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과거에 비해 복기를 성실히 하지 않는 편인데 다시 시작해야겠다.
(p175)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what the market says (1) - US nonfarm payrolls for september

투자자는 시장을 예상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활용하지만, 시장 그 자체가 시장 예상을 위한 훌륭한 정보가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어떤 사건이 가격에 주는 임팩트가 클수록, 사건 발생 후의 가격 흐름이 향후 시장의 논리를 보다 뚜렷하게 시그널링하게 된다. 앞으로 시장 흐름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아주 짤막하게나마 이곳에 기록해 둘 계획.

지난 금요일밤 9월 비농업 고용이 시장 예상치인 200K수준을 하회한 142K로 발표되었다. 8월 수치도 173K에서 136K로 하향. 미국 금리는 상당폭 하락 후 반절 정도 되돌렸고, FX는 변동이 컸지만 제자리, 그리고 미국 주식은 오히려 꽤 크게 반등해버렸다. 결국 9월 비농업 고용에 대해 시장이 생각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

1) 실업률이 5%에 붙어있기 때문에 비농업고용이 200K 이하가 나올 수도 있다. 즉, 9월 비농업 고용의 예상치 하회가 경기 둔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농업 고용의 부진은 연준의 금리 인상 시점을 이연시킬 수 있다. 제로금리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마디로 '경기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통화완화는 좀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금리 하락, FX 보합, 주식 상승 이라는 시장 반응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이 스킴이 맞다면 아마도 미국 10년물은 조금씩 재상승하고, 미국 주식은 하루이틀 정도의 추가 단기 랠리가 가능할 것.

2015년 10월 3일 토요일

추석 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추석연휴 직전에 휴가를 썼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의가 타의보다 컸다. 미국이나 일본 주식 long view를 강하게 가져가기 위해 근 6개월 이상 칼을 갈며 기다리던 시점이 9월이었는데, 경제정황과 가격이 뜻 밖의 길로 엇나가 버렸다. 지난 7월 23일 포스팅에서 '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금리 인상을 내년 초 정도로 재연기하면서 경기판단을 애매하게 만드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썼는데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스스로 염두에 두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재미는 못봤어도 다치지는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이 새고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드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와 같은 문장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년에 홍콩과 뉴욕 등을 둘러본 것도 그 도시들의 분위기가 궁금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지 견문을 넓히기 위함은 아니었다. 여행자 신분으로 접하는 여행지의 모습들은 너무도 단편적이어서 견문을 넓혀줄 수가 없다. 여행은 그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며 즐기면 된다. 그래서 이번 휴가의 여행지인 일본에서는 그런 것들에 충실했다. 먹고, 걷고, 생각하고, 읽었다. 하나 추가하자면 사슴들이랑 놀았다.

일본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것을 익히 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식당들에서 충격을 받았다. 음식 가격이 한국보다 10%~20%정도 비싸긴 하지만 퀄리티는 3배 정도 높다. 초밥, 튀김음식, 유제품 쪽이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도톤보리 근처에서 대충 찾아간 바의 바텐더는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 하이볼을 첫 잔으로 마시는 나를 보더니, 두 번째로 주문한 러스티 네일을 탈리스커로 만들어 주었다.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나에겐 일본이 최적화된 여행지 중 하나일 듯.

글은 내가 즐겨 구독하는 블로그들의 글들과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을 읽었다. 바둑은 많은 부분에서 투자와 맞닿아 있다. 바둑과 투자 모두 인간으로 하여금 상반된 속성을 한꺼번에 가지길 강요한다. 침착해야 하지만 때론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해야 한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 거취에 대한 생각, 시장에 대한 생각도 대략 정리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생각을  더 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도 어느 정도 충전되었다. 아마도 4분기에는 9월에 가졌던 수준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