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5일 토요일

겨울왕국

퇴근 후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겨울왕국을 봤다. 스토리는 평범하지만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시작 직전 디즈니 캐릭터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3분 남짓한 영상에서 나는 이미 압도되었다. 평면과 3차원을 오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3D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디즈니다움을 잃지 않은 치밀한 영상이었다. 미국의 컨텐츠 제작 수준은 역시 독보적이다.

메인 씬이라 할 수 있는 'Let it go'부분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뮤지컬을 자주 보는 편인데, 이런 영화가 계속 나온다면 앞으로 뮤지컬 관람횟수가 줄지 않을까 싶다. 이미 영화버젼의 '맘마미아'와 '레미제라블'을 보며 했던 생각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같은 느낌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메가박스의 Dolby sound관에서 관람을 했더니 OST에서는 현장감마저 느껴졌다. 뮤지컬 뿐 아닌 그 어떠한 현장 공연에서도 만 삼천원에 이정도 가치를 누릴 수 없다.

모션캡쳐를 통해 제작된 영상 속 캐릭터는 영어로 노래할 때의 특유한 입모양까지 완벽하게 연출해낸다. 그리고 현장 무대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얼음 마법을 마음껏 펼친다. 극강의 녹음스킬 덕분에 노래와 영상이 따로 놀지도 않는다. 영화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뮤지컬은 많은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겨울왕국은 이미 미국에서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브로드웨이 제작력으로 미루어보건데 졸작이 탄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 또한 미국은 문화내수 기반이 탄탄해 평균급의 작품만 나와도 뮤지컬시장은 나름 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20대후반-30대초반 여성이 관람객의 주류를 형성하는 한국은? 한국처럼 지킬박사의 나이가 어린 나라도 없다. 기형적 관람객 기반을 가진 한국 뮤지컬 시장이 장기적으로 겨울왕국을 당해낼 수 있을까?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Coin tossing (1)

투자에 앞서 폭 넓은 공부와 스스로를 완전히 설득시킬 수 있는 깊이의 리서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탁월한 뷰를 얻었다고 하여 반드시 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투자를 하는 순간, 즉 매수/매도 버튼을 클릭하는 극단적 고독의 순간에서는 진입과 청산의 타이밍이 성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뷰가 엉망이더라도 좋은 매매기준이 있다면 최소한 천천히 죽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매매기준, 혹은 철학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무작위 시세에 베팅하여 살아남기'

즉, 동전 던지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동전 게임의 기대값은 0이지만, 자본금을 탕진하지 않고 오랜 시간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 앞으로 'Coin tossing'이라는 제목으로 써나갈 글들은 바로 이 동전게임에서의 생존법에 관한 것이다. 생존법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홈런을 치는 법'이 아닌 '파울을 치는 법'에 대한 생각들을 기술할 예정이다.

'마켓타이밍을 잡는 법', '테크니컬한 비법' 등과는 무관하다. 가능한한 덜 잃고, 시장에 오래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미없는 내용들이 언급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재미없는 철학이 모든 매매의 기본이라고 확신한다.


- Coin tossing (2)에서 계속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방콕 휴가 (130108 ~ 130112)

나름 결의에 차 보이는 첫 글을 썼는데, 두 번째 글은 방콕에서 휴가를 보내며 쓰게 되었다. 올해 어머니께서 환갑이시기도 하고 동생도 대학원에 진학하는지라 지금이 가족여행을 갈 적기라고 생각되어 기획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일 같다. 특히 숙소를 힐튼으로 잡은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인테리어를 갖춘 라운지와 수영장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휴가를 만끽할 수 있다.

내가 방콕 여행에서 가장 즐기는 것은 마트 구경이다. 대형마트에서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곳들은 거의 다 들어가 본다. 타국 관광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함인지 태국 마트의 제품들은 유난히 다양하다. 규모가 큰 곳은 스낵 진열대만 천장 높이로 네 줄에 이를 정도라서, 지난번 여행에서는 마트에서만 4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태국은 유통/식품 재벌들이 재계를 꽉 잡고 있는 나라이기에, 나처럼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영 의미없는 일은 아니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태국경제를 이끄는 이들의 사업장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포브스 아시아에서 발표한 태국의 재계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Dhanin Chearavanont (CP그룹) - 음식료, 유통을 주력으로 부동산, 통신등의 다양한 사업 영위. 태국내 세븐일레븐 소유,

2. Chirathivat 가문 (센트럴 그룹) - 유통업. 창업주 치랏티왓은 3명의 아내와 25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이들이 그룹을 나눠서 경영 중.

3. Charoen Sirivadhanabhakdi (ThaiBev) - 태국의 맥주 Chang 소유주.

4. Yoovidhya 가문 - 에너지드링크 레드불을 공동 소유.

5. Krit Ratanarak - 태국의 방송 Channel 7의 대주주. 은행, 시멘트, 부동산 회사에도 지분 투자.

6. Chamnong Bhirombhakdi (Boon Rawd Brewery) - 싱하맥주

7. Vanich Chaiyawan (Thai Life) - 태국 생보사 회장.

8. Vichai Maleenont (Bec World) - 방송채널.

대략적으로 보아도 유통/식품과 관련된 재벌들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들은 타 재벌들의 순위가 변동할 때에도 늘 본인들의 랭킹을 사수하는 데에 성공했다.

태국은 일찍이 외국인투자를 개방하여 HDD와 자동차생산량이 많은 나라인데, 상위 랭킹에 IT제조나 차부품 관련 재벌이 없는 점은 흥미롭다. CP그룹 하에 차량관련 사업부가 있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다.

공부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FDI를 통해 기술력은 자국화시키지 못하고, 생산공장 노릇만 해 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이라면, 최근의 HDD수요 감소와 제조업의 선진국 회귀 트렌드는 향후 태국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풀바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다 보니 두서가 없다. 휴가 중이라도 블로깅은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영향도 크다. 2년 뒤엔 필력이 향상되어 수영을 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글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귀국하여 더 찾아보고 싶은 자료들
- 바트환율과 태국 부동산가격
- 스쿰빗 일대(한국으로 치면 강남) 부동산 상승률
- CP그룹의 성장 스토리
- 50대 부호 내 IT/자동차 재벌 존재 여부
- 태국 내 IT/자동차 생산 공장 위치

2014년 1월 1일 수요일

open

통찰력은 읽고, 말하고, 쓰는 세 가지 행위를 통해 길러진다. 이 셋은 반드시 밸런스가 잡혀 있어야 한다. 읽지 않으면 말하거나 쓸 수 없고, 쓰지 않으면 읽고 말하는 것들이 깊어지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면 본인이 읽고 쓴 내용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기 어렵기 때문이다.

읽기는 비교적 꾸준히 노력을 해 오던 부분이다. 그리고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훌륭한 분들과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이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뷰나 노하우의 노출을 꺼리는 투자의 세계에서, 통찰적 사고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줄 의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와 말하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는데 쓰기가 문제였다. 오래전 블로깅을 했었지만 멈춘지 3년이 되었고, 처음부터 바이사이드로 진입하다보니 따로 의식하지 않으면 쓰기를 할 일이 앞으로도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에버노트에 적긴 하지만 메모를 넘어선 글이 되지는 못한다. 트위터는 필력과 내공이 극에 달해야 '의미있는 쓰기'를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때문에 다시 블로깅을 시작하게 되었다. 글의 길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니 나 같은 초보에게 제격이고, 어느정도 개방된 공간이다보니 적절한 강제성도 부여된다.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여전히 다른 곳을 이용하겠지만 가능한한 이 곳을 활용할 생각이다. 주제는 투자, 책,  일상, 음악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일단 6월까지 매주 최소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업로드 하는 것이 목표다. 쓰는 행위를 습관화 시키기 위한 기간이다. 6개월 정도 신경을 쓰면 그 뒤로는 관성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본다. 매주 1건이라는 부담감에 정말 허접한 한 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의무적인 다작의 순기능을 지지하는 편이다. 가수 윤종신씨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월간 윤종신'이라는 타이틀로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중인데, 그 과정에서 그의 작곡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이 상당수 탄생했다.

블로깅이 힘들 때 오늘의 포스팅에 적힌 1월 1일을 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타이틀에는 평소 좋아하는 문구인 'Ancora Imparo'를 넣었다. 의미는 'I am still learning'.

201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