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How much time is left for the BOK?

미국이 작년부터 금융위기의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여타 글로벌 지역의 개선세는 여전히 미약하기만 했다. 이에 일본은 2013년 아베노믹스로 가장 먼저 대응을 시작했고 유로존과 한국도 올해 들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타이밍이 다소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뒤늦게나마 부양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이주열 총재의 취임 직후 스탠스로 미루어보건데, 최경환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한은은 끝까지 미온적 태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은은 언제까지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금통위 기자회견 등에서 내외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외금리차는 통화정책 판단에 큰 영향을 줄만큼 좁혀져 있지 않다. 내외금리차가 한은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던 국면은, 2004년 8월과 11월 기준금리를 각각 25bp씩 인하한 뒤 반년 정도가 지난 2005년 3월경부터 2006년말까지다. 당시 Fed의 단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한-미간 정책금리는 역전되었고, 3년물 기준 양국의 시장금리차는 -25bp ~ +100bp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재밌는 점은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가 같아진 2005년 6월부터 시장금리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05년 11월보다 5개월 빠른 시점인데, 결국 한은이 급격히 따라올라오는 미국의 정책금리에 부담을 느끼고 금리를 인상할 것을 시장은 이미 반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양국의 통화정책 디커플링이 시장금리차에 선반영되는 것은 금번 한은의 정책금리 인하 전에도 관찰되었다. 200bp 수준에서 머물던 양국의 시장금리차는 6월부터 빠르게 축소되었고, 한은은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시장금리차는 꾸준히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시장이 양국의 통화정책 디커플링의 추가 진행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의 계획대로 미국의 정책금리가 내년 2~3분기부터 인상 사이클에 진입하고, 그것이 2000년대 중반보다는 덜 공격적인 형태(예를들어 두 FOMC마다 25bp의 인상)로 이루어진다는 느슨한 가정을 해 보면, 미국의 정책금리가 1.5%에 도달하는 시기는 아무리 늦어도 2016년 3분기 근처가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고용 개선세가 유지되고, 첫 금리 인상에서 시장 충격이 예상 이하라면 도달 시기는 더욱 앞당겨 질 수도 있다.

결국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두 차례 정도 더 사용하고, 그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1년 6개월 남짓. 그 이후에는 추격해오는 미국 정책금리에 대한 부담으로 한은도 더 이상 완화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한은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한은이 선택한 '각자도생'의 길

국내 통화정책 및 금리와 관련된 최근 글 중에, 가장 예리하고 깔끔하다고 생각되는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님의 글.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160.html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달러강세와 유가약세

1. 달러 강세
나는 '달러 강세는 미국의 tightening을 암시한다'는 주장 보다는 '유로, 엔, 기타통화의 순서로 전염된 금번 달러강세의 원인은 통화정책의 디커플링이다' 라는 주장이 조금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달러 인덱스가 의미있는 상승을 보였던 것은 90년대 중반인데, 당시 연준과 달리 분데스방크는 마르크화의 절상을 억제하기 위해 낮은 기준금리를 유지했다.
(source : Goldman, zerohedge)

즉, 미 연준의 tightening 자체만으로는 강력한 달러 강세를 유발할 수 없다. 구조적인 강달러는, 타 국가들에 비해 미국의 체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즉, 달러 강세를 충분히 감내하고도 남을만한 강도의 미국 주도형 경기 확장기에서만 나타난다. 만약 미국이 순조롭게 내년부터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달러는 추가적인 강세를 보일 것이고, 그 때는 이머징 마켓의 통화들도 지금보다 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외 '달러 강세는 연준의 조기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한다'는 등의 일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간신히 디플레이션 파이트를 마무리해 가는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박 보다 디플레이션의 부활을 더 두려워 할 것이기 때문. 크루그먼이 거듭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은 맥락이다.
If you’re at the Fed, would you rather wake up and discover that core inflation has risen to 3 percent or that you’ve become Mario Draghi?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4/10/03/wages-and-the-fed/?_php=true&_type=blogs&smid=tw-NytimesKrugman&seid=auto&_r=0)

달러 강세 관련 읽을거리로는 Valentina Bruno와 신현송 교수의 BIS 페이퍼를 첨부.
(http://www.bis.org/publ/work458.pdf)



2. 상품 시장
달러 강세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것은 상품 시장과 상품에 얽혀 있는 통화들. 공급과잉 이슈로 약세 압박을 받던 농산물은 폭락했고, 금 역시 생산원가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 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유가의 약세. 역사적으로 유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경기 획장 국면은 없었기에, 유가의 하락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지난주 WTI가 90불 마저 하회하다보니, 셰일오일의 채산성과 Opec의 breakeven prices 측면에서 유가를 분석해보려는 시도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셰일오일이나 Opec 관련 수급적 요인보다도, 'Fed가 tightening을 시작해도 될만큼 미국의 경기가 강한지'에 대한 의문이 유가를 약세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엔 어땠을까?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3년 유가는 20불대에서 14불 근처까지 하락했다. 당시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요인은 1)공급과잉(영국과 노르웨이 등의 생산 확대)과, 2)수요감소(유럽, 미국, 일본의 경기침체), 3)OPEC 카르텔 기능 상실. 쉽게 말해 원유 수급 측면의 특별한 요인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나치게 지난 금리인상 사이클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춰보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과거 추이상 유가의 하락 자체를 경기침체 시그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듯.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불멸의 광고수업

통상적인 실패는 거의 손해가 없다. 그런 실패는 예상된다. 모든 광고의 초기 활동은 대중의 맥을 짚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보통은 제품의 결함 때문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이다. 제대로 조치를 한다면 손해가 나더라도 미미할 것이다. 결실을 맺지 못한 기대와 아이디어 정도가 손해라면 손해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모한 투기에 의한 재난이다. 거대하고 비싼 배를 암초로 몰고 가는 그런 광고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광고인들은 거의 재기하지 못한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16)

광고계에 새로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언어와,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능력에 의존하려 한다. 또 주의를 끌기 위해 기발한 것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고 소비자의 분노만 야기할 뿐이다. 내가 아는 진정한 광고인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잘것 없는 집안 출신이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48)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수많은 성공 사례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건 내가 작은 규모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고 거기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는 광고의 귀중한 법칙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것을 지켰을 뿐이다. 광고의 태동기에 그 방법은 내게서 엄청난 시간을 빼앗아갔다. 이 원시적인 실험에 나는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 자식을 키우는 노력 이상의 시간과 희생을 바쳤다. 내가 일을 끝낸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시작하도록 돕겠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불멸의 광고수업, 클로드 홉킨스, page 253)


나에게는 이 책이 광고가 아닌 투자 관련 서적처럼 다가왔다. 분야를 막론하고, 일정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공통된 전략과 원칙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책들의 치명적인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책의 내용들이 식상하게 다가올 것이고, 책의 문장들이 깊게 와닿는 사람일수록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경지에 이미 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내가 일을 끝낸 지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시작하도록 돕겠다'는 저자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불멸의 수업이란, 좋은 스승의 피드백을 받으며, 다치고 깨지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9월 휴가. 뉴욕에서의 메모.


1. 내가 좋아하는 것
일주일 휴가를 내고 뉴욕에 다녀왔다. 2014년은 유난히 여행을 많이 다니는 해다. 내가 비행기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는 유명하다는 먹거리를 즐긴 후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더 알게된 점은, 주요 스팟에서 음악을 곁들이면 여행이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 숙소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비긴 어게인의 OST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며 랜덤재생으로 흘러나오던 곡들, 나이아가라 전망대에서 들었던 Journey의 Faithfully 모두 좋았고, 특히 페리에서 야경을 보며 들었던 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음악이 여행의 느낌을 배가시켰다기 보다는, 여행이 음악의 느낌을 업그레이드 해준 듯.

2. 첫인상
뉴욕 JFK 공항에 내렸더니 군대와 똑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공항 바닥 세제가 군대에서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인 영향이 큰 듯 하다. 심지어 입국 수속 대기 중에 줄을 잘 서달라며 외치는 거구의 흑인까지 등장하니 정말 재입대라도 한 기분이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맨하탄 숙소 로비에서는 laundry room 냄새가 진동한다. 배럭 냄새다. 내가 체험한 군대가 제대로 little America 였구나.

3. 간격
거리를 걸어다닐 때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드물다. 그 복잡한 타임스퀘어나 락펠러 센터 전망대 대기 줄에서 타인과 부딪힌 숫자가, 출퇴근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7분 걸어오는 동안 부딪히는 숫자보다 작다. 혹시 부딪히거나, 부딪히기는 커녕 가방이 스치기만 해도 0.5초 안에 'excuse me'가 돌아온다(군대에서는 my bad 였다).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나 맞는 얘기일 듯. 왜 서양이 더 예의바를까? 혹자의 주장처럼 잘못 부딪혔다가는 총을 맞을까봐 두려워서?

4. 표정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평균적인 표정과 어투가 한국보다 훨씬 밝다. 팁을 받는 곳/안받는 곳,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그렇다. 이들의 밝음은 만족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완벽한 체념에서 오는 것일까?

5. 뮤지컬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과 라이온킹을 봤다. 라이온킹의 경우 한국 배우들로만 구성해서는 공연하기 힘든 뮤지컬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 뮤지컬의 노래와 연기 수준이 브로드웨이에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공연의 질에서 큰 차이를 못 느낀 반면, 관람환경의 차이는 꽤 컸다. 리버브를 최대한 절제한 음향 효과, 과하게 크지 않은 음량, 최소화된 좌석별 시야 편차 등.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무개념 관객에 대한 어셔들의 강력한 제재. 누군가 핸드폰 불빛을 잠깐이라도 밝히면 바로 달려와 해당 관객의 얼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저지했다. 그리고 내 앞 자리의 거구의 남성은, 본인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최대한 자세를 낮춰 앉을텐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면 꼭 말해달라며 의자에 구겨져 들어갔다. 나는 브로드웨이가 아닌 곳에서도 감동적인 공연은 충분히 많이 보았지만, 관람 자체를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6. 도시의 공간
센트럴 파크의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버려진 철길에 조성된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도 매력적이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올해 마지막 구간이 완공되는데, 맨하탄 정도의 유구함을 지닌 도시에서 아직도 추가적인 녹지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꽤 놀라웠다. 도시의 녹지 공간은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게 아닐까. 하이라인 파크 주변으로 새로 올라가는 수 많은 빌딩들을 보고, '서울에 더 개발할 지역이 있겠나?' 라는 안일한 생각은 완전히 삭제했다.

7. Shake Shack
햄버거는 번, 패티, 야채의 밸런스가 제일 중요하다. Shake Shack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8. Peter Luger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식사.

9. 셀카봉
이번 여행에서 셀카봉을 애용했다. 셀카봉을 써 보니 고프로가 사고 싶어진다. 휴대폰 카메라의 dslr과 미러리스 시장 잠식은 제한적이었다. 셀카봉도 고프로를 잠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대기의 사용경험이 고프로 구입으로 연결되지 않을지.

10. 한의학
미군 소속이었던 한인친구를 4년 만에 만났다. 지금 그 친구는 복무를 마치고, 일을하며 중국식 한의학을 공부 중이다. 미국내에서 동양의학의 수요가 많은지 물었더니, '서양인들도 침 맞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한약은 절대로 먹지 않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1. 소로스
일전에 소로스가 쓴 책들을 본 적은 있지만, 정작 내가 소로스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은 영국은행을 이긴 남자라는 것 뿐이었는데, 이번 여행 중 카우프만의 소로스를 읽으며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책을 다 읽었고, 그 덕분에 여행 후유증이나 월요병을 앓지 않았다.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라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

쓰고보니 블로그에 메모식의 트윗을 날려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