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일 목요일

9월 휴가. 뉴욕에서의 메모.


1. 내가 좋아하는 것
일주일 휴가를 내고 뉴욕에 다녀왔다. 2014년은 유난히 여행을 많이 다니는 해다. 내가 비행기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는 유명하다는 먹거리를 즐긴 후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올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더 알게된 점은, 주요 스팟에서 음악을 곁들이면 여행이 한층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 숙소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비긴 어게인의 OST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며 랜덤재생으로 흘러나오던 곡들, 나이아가라 전망대에서 들었던 Journey의 Faithfully 모두 좋았고, 특히 페리에서 야경을 보며 들었던 Billy Joel의 New York State of Mind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음악이 여행의 느낌을 배가시켰다기 보다는, 여행이 음악의 느낌을 업그레이드 해준 듯.

2. 첫인상
뉴욕 JFK 공항에 내렸더니 군대와 똑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공항 바닥 세제가 군대에서 쓰던 것과 같은 제품인 영향이 큰 듯 하다. 심지어 입국 수속 대기 중에 줄을 잘 서달라며 외치는 거구의 흑인까지 등장하니 정말 재입대라도 한 기분이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맨하탄 숙소 로비에서는 laundry room 냄새가 진동한다. 배럭 냄새다. 내가 체험한 군대가 제대로 little America 였구나.

3. 간격
거리를 걸어다닐 때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드물다. 그 복잡한 타임스퀘어나 락펠러 센터 전망대 대기 줄에서 타인과 부딪힌 숫자가, 출퇴근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7분 걸어오는 동안 부딪히는 숫자보다 작다. 혹시 부딪히거나, 부딪히기는 커녕 가방이 스치기만 해도 0.5초 안에 'excuse me'가 돌아온다(군대에서는 my bad 였다).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나 맞는 얘기일 듯. 왜 서양이 더 예의바를까? 혹자의 주장처럼 잘못 부딪혔다가는 총을 맞을까봐 두려워서?

4. 표정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평균적인 표정과 어투가 한국보다 훨씬 밝다. 팁을 받는 곳/안받는 곳,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그렇다. 이들의 밝음은 만족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완벽한 체념에서 오는 것일까?

5. 뮤지컬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과 라이온킹을 봤다. 라이온킹의 경우 한국 배우들로만 구성해서는 공연하기 힘든 뮤지컬이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 뮤지컬의 노래와 연기 수준이 브로드웨이에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공연의 질에서 큰 차이를 못 느낀 반면, 관람환경의 차이는 꽤 컸다. 리버브를 최대한 절제한 음향 효과, 과하게 크지 않은 음량, 최소화된 좌석별 시야 편차 등.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무개념 관객에 대한 어셔들의 강력한 제재. 누군가 핸드폰 불빛을 잠깐이라도 밝히면 바로 달려와 해당 관객의 얼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저지했다. 그리고 내 앞 자리의 거구의 남성은, 본인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최대한 자세를 낮춰 앉을텐데,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면 꼭 말해달라며 의자에 구겨져 들어갔다. 나는 브로드웨이가 아닌 곳에서도 감동적인 공연은 충분히 많이 보았지만, 관람 자체를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6. 도시의 공간
센트럴 파크의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버려진 철길에 조성된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도 매력적이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올해 마지막 구간이 완공되는데, 맨하탄 정도의 유구함을 지닌 도시에서 아직도 추가적인 녹지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꽤 놀라웠다. 도시의 녹지 공간은 여전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게 아닐까. 하이라인 파크 주변으로 새로 올라가는 수 많은 빌딩들을 보고, '서울에 더 개발할 지역이 있겠나?' 라는 안일한 생각은 완전히 삭제했다.

7. Shake Shack
햄버거는 번, 패티, 야채의 밸런스가 제일 중요하다. Shake Shack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8. Peter Luger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식사.

9. 셀카봉
이번 여행에서 셀카봉을 애용했다. 셀카봉을 써 보니 고프로가 사고 싶어진다. 휴대폰 카메라의 dslr과 미러리스 시장 잠식은 제한적이었다. 셀카봉도 고프로를 잠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대기의 사용경험이 고프로 구입으로 연결되지 않을지.

10. 한의학
미군 소속이었던 한인친구를 4년 만에 만났다. 지금 그 친구는 복무를 마치고, 일을하며 중국식 한의학을 공부 중이다. 미국내에서 동양의학의 수요가 많은지 물었더니, '서양인들도 침 맞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한약은 절대로 먹지 않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1. 소로스
일전에 소로스가 쓴 책들을 본 적은 있지만, 정작 내가 소로스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은 영국은행을 이긴 남자라는 것 뿐이었는데, 이번 여행 중 카우프만의 소로스를 읽으며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책을 다 읽었고, 그 덕분에 여행 후유증이나 월요병을 앓지 않았다.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라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

쓰고보니 블로그에 메모식의 트윗을 날려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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