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6일 목요일

이미테이션 게임

우리는 예의와 규범을 체득하면서, 그리고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명제에 지나치게 종속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삶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 정답이 존재한다. 공부가 부족해 깨치지 못했을 뿐이거나, 혹은 알아도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침묵할 뿐이다. 기존의 잘못된 통념이 견고할수록 그것을 깨려는 개인의 시도는 더 큰 관계적 비용을 수반한다. 가끔 그것을 깨고 정답을 외치는 사람이 등장해 위대해지지만 필연적으로 외로워진다. 내 생각에 그런 사람은 착한 사람이기보다는 심미성을 추구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즉, 저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는 점이 안타깝고 답답하고 도와주고 싶어 정답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저 생각의 아름답지 못함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불황의 경제학

왜 크루그먼의 책을 이제서야 읽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자책감과, 이제라도 읽기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중에 어느 것이 더 큰지 잘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며 따로 북마크를 하지 않는 경우는 둘 중 하나. 1)북마크를 할 만한 문장이 단 하나도 없어서, 2)책 전체를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을 만큼 내용이 알차서, 인데 크루그먼의 책은 후자에 해당했다. 흔히들 어빙피셔의 실패와 케인즈 파산 경험을 예로 들며 경제학 역량과 투자는 상관관계가 없음을 역설하지만, 글쎄, 크루그먼이 투자를 했더라면 적어도 최근 10년 정도의 성과는 훌륭하지 않았을까.

크루그먼에 따르면 국가경제의 신뢰도 차이에 따라 환율 절하 시의 결과가 엇갈리게 된다. 아시아 금융위기 시절 투자자들은 호주달러의 절하를 건실한 경제를 가진 호주에 투자할 좋은 기회로 여겼다. 그에 대한 결과로 호주달러의 하락은 자기제한적인 모습을 보였고, 실제로 호주는 아시아 위기 중에도 호황을 누렸다. 즉, 호주라는 국가의 경제에 대한 신뢰가 실제적인 이득으로 연결된 셈. 반면 지난 20년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루피화 가치 하락은 Crisis를 떠올리게 했고, 자본유출이 발생해 실제로 Crisis가 나타났다.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국가들의 환율 절하는 호황의 기회가 되었지만, 신뢰도가 낮은 국가들의 환율 절하는 자본유출을 야기했다는 것. 신뢰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국가경제의 신뢰도는 어느 수준일까? 한국은 선진국인가, 아니면 여전히 이머징 마켓인가? 몇 가지 지표와 가격의 움직임들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은 여전히 이머징 마켓에 속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작년에 이머징 국가들의 통화절하율과 CDS상승률을 GDP로 가중평균해 추이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코스피의 움직임과 역행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이머징에서 돈이 빠지고 CDS가 상승하면 코스피도 하락세를 보인다. 또 하나의 자료적 근거는 SK증권 이은택 연구원님의 2015년 전망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주식시장의 PER은 이머징 마켓의 PER에 동행한다.

사실 한국이 이머징에 속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굳이 위와 같은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김태희가 미녀라는 것에 증명이 필요한가?), 여튼 결론은 그렇다. 한국은 여전히 이머징이다. 그리고 이것이 금리인하를 반대하는 진영의 주된 논거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이 곧 금리를 인상할텐데, 한국이 금리인하를 하면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자본이 유출되어 제2의 IMF가 찾아온다는 것. 이머징에 속한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진다면 돈이 몽땅 빠져나간다는 것.

그러나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외금리차가 좁혀진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 유출을 유발할까? 아래는 국제수지 금융계정과 한-미 3년물 금리차를 함께 그려본 차트.

2012년부터 최근까지의 추이만 놓고 보면, 내외금리차의 축소가 자본유출을 유발했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한-미 3년물 금리차가 300bp에서 100bp까지 축소되는 동안, 월간 금융계정 순유출 규모는 월 30억불에서 80억불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시계를 확장해 놓고 보면 내외금리차와 금융계정 순유출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양국의 금리가 역전되기까지 했던 2005~2006년에도 금융계정 순유출 규모는 전혀 확대되지 않았다.

즉, 한국이 이머징급의 신뢰도를 가진 것은 맞다. 따라서 한국에서 위기의 시그널이 포착되면 자본 유출은 대단히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내외금리차가 좁혀지거나 혹은 역전되는 것이 위기의 시그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미국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다는 것을 이유로 한국에서 돈을 빼려는 유인이 클까, 아니면 한국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해서 가계 이자부담이 폭발하고 기업경기가 엉망이되었을 때 한국에서 돈을 빼려는 유인이 클까? 후자가 더 클 것이다.

다시 환율로 돌아와서, 그럼 달러/원 환율은 어떻게 될까? 주변국의 완화 기조에 이끌려 마지못해 금리 인하를 단행하게 되면 원화는 절하되겠지만, 이미 환시는 그런 기대감을 반영 중이기에 폭이 급격하지는 않을 것이고,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에서 절하는 멈출 것이다. 내외금리차를 인식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는 엉망이되면서 Crisis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급격한 원화 절하가 진행되고, 한국은 침체에 빠질 것이다. (쓰다보니 원화 숏은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기술적으로도 1,120원 안착 시 추가 약세를 기대해 볼 만한 상황.)

결국 현재 일각의 우려와는 정 반대로 한국의 신뢰도는 오히려 금리 인하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는 격언을, 돈은 국채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국채금리가 높은 나라로 흐른다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돈은 밸류가 낮은 곳에서 밸류 높은 곳으로 흐를 뿐이다. 문제는 한국이 불황의 경제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국가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15/02/15

-1-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 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알고 보지 않아도, 그냥 딱 봐도 괜찮은 사람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 을 만나는 사람은, 알고 보니 상대방이 괜찮다는 것을 느끼기 전에 보통 떠나게 된다. 딱 봐도 괜찮은 사람에게로.

-2-
가계부채가 우려되어 금리인하를 주저하는 한국은행의 모습은 대단히 우습다. 그렇다면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상하면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명은 현재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한 명은 현재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고, 세 명은 관망 중이고, 나머지 한 명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예 모르고 있다. 한국의 중앙은행은 독립성, 신뢰성, 전문성을 버리고 고집, 불신, 매너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아마도 많이 늦은 시점이 되어서야 매크로 상황에 끌려다니는 정책 대응에 나설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선구적인 정책담당자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3-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포스코사거리의 카페를 찾는다. 오피스 타운이기에 주말엔 타 지역에 비해 꽤 한적한 편.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카페를 가든 주말 손님의 최소 20%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카페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나, 또는 60 평형 이상의 복층식 주택에 가족의 방해를 받지 않는 개인 서재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내가 공부를 위해 카페에 지출하는 돈이 한 달에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데, 지금 10만원 더 비싼 월세나 1억 더 비싼 전세로 집을 옮겨도 개인 서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 카페를 찾게 될 것이다.

-4-
Mark Ronson과 Bruno Mars의 Uptown Funk. 펑크가 미국에서 유행했던 것은 70년대인데, 당대의 경제 불황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반항적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Uptown Funk의 성공은 추세적인가? 추세적이라면 펑크 사운드의 귀환은 현재의 어떤 심리를 반영하는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신난다.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유가 하락과 미국의 고용, 투자

유가 폭락으로 미국 에너지 업계의 고용상황이 악화되고, 그에 다른 지표/경기 둔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꽤 있었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논팜이 기대치를 상회하자 그런 우려는 많이 불식되는 분위기.

정말로 유가 폭락으로 미국 고용 지표가 둔화될까? 난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source : bureau of labor statistics, infomax)


역사적으로, 유가 폭락 국면에서 관련업종의 고용이 소폭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약 -30%YoY의 유가 하락 시, 에너지 관련 비농업 고용은 전월비 -1만 명 수준까지 축소되는 양상. 그러나 -1만은 논팜 헤드라인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숫자는 아니다. 애초에 총 고용인구에서 에너지 관련업종 고용의 비율은 고작 1~2% 남짓. 그리고 유가 폭락기는 경기 하강 국면과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유가 하락에 따른 관련업 고용 축소 효과를 따로 발라내어 분석하는 것 자체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유가가 하락해서 관련업 고용이 악화되었던 것이 아니라, 유가 하락기가 보통 불황이었기에 고용시장 자체가 안 좋았던 것.

결국 저유가가 미국에 미치는 악영향은 에너지 업체들의 투자 감소 정도만 남는데,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4분기 oil producer들의 투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정리해보면 Rig counts는 감소하는데 oil related capex와 미국의 총 생산량은 증가 중인 상황. 아직 찾아보지는 않았으나, oil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주요 장비나 부품을 판매하는 미국 기업이 있다면 주가가 긍정적일 가능성이 꽤 높을 듯.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15/02/10

-1-
과거에 훌륭한 성과를 냈던 투자가 가끔 머릿속에 떠오를 수는 있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에 감정을 올인하고, 오로지 그 순간들만을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이후 그 사람의 투자가 형편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당시의 뷰가 기가막히게 예리했고, 수익률이 좋았어서 추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로 돈을 벌지 못해 추억하는 것이다. 지금 좋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거에 매몰될리 없다.


-2-
투자를 하다 보면 가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손실과 상처를 입는 순간이 있다. 이때 정신을 잘 차리면 그것을 다 메꾸고도 남을만한 포지션을 곧바로 잡을 수 있지만, 감정에 지배 당하면 점점 더 망가지게 된다. 나를 패닉에서 꺼내 줄 수 있는 기회는 대개 패닉 직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만 그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3-
작년 말 모임서 뵙게된 한 존경하는 트레이더님은, 시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냐는 질문에 결국 수익을 내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는다는 답변을 하셨다. 이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사내에도 정확히 같은 말을 했던 분이 계셨다고 한다.


-4-
위 세 문단 역시 투자에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닐 것이다.


-5-
가능한 내색하지는 않았었지만 나의 연말연시는 최악이었다. 많은 일들이 뜻하지 않게,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쏟아졌고 내 의지와 뜻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 8년 전 겨울이 지금과 비슷했는데, 생각해 보면 내 20대 시절의 도약은 대부분 그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길.

-6-
유세윤 최고.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My technical views (2)

지난 12월 2일 My technical views (1)을 포스팅한 이후로, 엔과 유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1. USD/JPY

12월 중순 단기 moving average가 훼손된 이후로 변동성은 컸지만 뚜렷한 방향성은 없었다. moving average의 이탈을 청산 타이밍으로 봤지만, 다시 상회하는 것이 진입 타이밍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지금 엔화에 대한 포지션 진입을 노리는 테크니션들의 상당 수는 작년 12월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에 소위 말하는 '삼각 수렴형' 추세선을 그려 놓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리지 않았다. 엔은 추가적인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테크니컬 포인트는 보이지 않는다.




2. EUR/USD

밴드 내로 회귀하기 전까지 short view를 유지하는 전략은 유효했다. 12월 ECB에서 국채매입이 없을 시 밴드를 한번 터치할 것이라는 전망도 좋았고, 1~2월에는 국채매입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마땅한 유로 숏 관련 포지션은 잡지 못했다. 실컷 블로깅은 해 놓고 스스로를 설득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3. now
테크니컬한 관점에서 해볼만 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닛케이 long, 원화 short, S&P long, 닥스 long, 천연가스 short 정도.

2015년 2월 1일 일요일

15/01/31

-1-
회사가 조직원들에게 로열티를 갖도록 하는 방법은, 1)업계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해 주거나, 2)여기서 일하다보면 가장 좋은 대우를 해 주는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뿐이다, 라는 내가 팔로우 중인 트위터리안의 멘트에 100% 동의한다. 그 외 회사가 조직원들에게 결속력과 로열티를 충전시키려 하는 모든 노력은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한 정도가 아니라 강한 역효과를 준다. 결국 그런 회사에는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만 남게된다.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지는 않지만, 영문도 모른채 저물어가게 된다.


-2-
어릴적 같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유학간 친구를 12년만에 만났다. 그 친구는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은 건축 디자인/그래픽 관련 석박과정을 밟고 있다. 내 주변의 미국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에게서는 사회에 본인의 가치를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는데 이 친구 역시 그랬다. 그토록 긍정적인 entrepreneurship이 어디서,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미국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졸업 후 스타트업을 생각 중이라길래 응원해 줬다. 12년만에 만난, 나와는 다른 업종을 택한 친구가 대화가 통한다는 것 자체로 즐거움이 컸다. 물론 이러한 일 얘기는 4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 여자 얘기. 그래도 남자 둘이 만나 이 정도면 일 얘기를 대단히 많이 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3-
지금 내 주위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Tiger원유ETF를 매수한 사람, 매수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듯. 나는 후자. 난 어제까지 100만원이었던 코트가 오늘 50만원이라는 사실 자체로 구매의욕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괜찮은 물건을 나쁘지 않은 수준의 가격으로 사는 것을 좋아한다.


-4-
늘 당당하고 화려한 박정현의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