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0일 금요일

홍콩

올해가 지나면 시장에 발을 들인지 만 10년이 된다. 그리 밀도있게 보낸 시간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실력은 형편없지만, 10이라는 숫자 자체에서 남다른 감회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금년도 여행지를 홍콩과 뉴욕으로 잡아 둔 것도 그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20대 내내 맴돌던 시장이라는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6월의 홍콩은 매우 습하고 덥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PIMCO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 광고 스크린에 국내 운용사가 올라갈 날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비즈니스는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닐 것이다. 공항철도 티켓을 끊어 홍콩섬에 위치한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 후 침사추이로 건너가 딤섬을 먹었다. 딤섬의 소나 피의 식감이 한국에서 먹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사실 아직까지도 해외에서만 체험 가능한 맛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기준으로 서울에서 현지맛에 가까운 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아야 3곳에 불과하고, 이번에 먹은 퀄리티의 딤섬은 일부 고급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다. 타코벨의 귀환, 강남권 파인다이닝, 경리단길 식당 라인업 등 변화의 시그널은 산재해 있지만, 국내 식당의 다양화는 추가적으로 진행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식사 후엔 쉐라톤 스카이라운지, 빅토리아피크를 돌며 그 유명하다는 홍콩의 야경을 즐겼다. 서울에서만 자란 탓인지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빅토리아 피크에서 버스로 내려오는 길의 풍경이 인상깊었다. 산 자체가 하나의 부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무더운 홍콩에서 가장 시원한 지역일 것으로 생각된다(피크트램의 유래에서 보듯). 국가를 막론하고 진정한 부촌은 1)교통과 주변 편의시설 등 인프라에 구애받지 않고, 2)펀더멘탈한 입지(날씨, 뷰, 안전성 등)가 가장 좋으며, 3)비교적 한적한 곳에 형성되는 듯.

주요 스팟을 첫 날에 다 돌아본 터라 둘째날은 여유를 만끽했다. 스탠리비치에서 피자와 맥주를 시켰는데, 앞 테이블의 남자가 경제신문과 페이퍼를 읽고 정리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에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공부하는 삶의 모습은 만국 공통이구나 싶어 꽤나 반가웠다. 한마디 말을 걸어볼까도 싶었지만, 그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도를 적당히 보며 마음이 가는대로 트램을 타고, 걸어다니며 시내를 구경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요 금융사들이 밀집된 거리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아마 평일이라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라고는 하지만 도시 전체가 모두 감각적인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의 1층과 상부 층들의 느낌은 사뭇 다르고, 트램의 겉과 속도 차이가 크다. 길게 이어지는 스카이워크 안쪽에서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는 홍콩인들과 스카이워크 밖 건물숲이 의외로 조화롭다. '한국도 아열대 기후화가 진행되면 스카이워크가 많이 생기겠네' 라는 얄팍한 생각을 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가깝다는 장점 외에 여행과 휴양을 위한 목적으로 홍콩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독 한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어떤 심리로 홍콩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하다.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인 듯.

2014년 6월 5일 목요일

fait accompli (2)

ECB의 금리인하 결정 보도 직후, 유로 약세 / 미국 채권 약세 / 미국 주식 강세 / 독일 주식 강세가 연출되었다. 약 한시간 뒤, 드라기가 추가 LTRO를 언급하자 유로 추가약세 / 미국 채권 강세전환 / 미국 주식 추가 강세 / 독일 주식 추가 강세. 그리고 미국 시장 개장 후 1시간이 지난 현재 유로는 드라마틱하게 반등하여 ECB 보도 직전 레벨 회복 / 나머지는 전부 보합권.

일단 ECB의 금리 인하 직후의 시장 반응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과도하게 선반영되었던 미국금리는 오르기 시작했고, 주가는 대체로 강세를 보였다. 문제는 드라기의 추가 QE 대응. 예상외로 강력한 카드가 나오자 미국 금리가 상승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경기에 대한 자심감이 떨어진 국면이기에, dovish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주가는 상승하는 모습.

현재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유로의 움직임이다. 유로만 놓고보면, 시장은 마치 ECB의 강럭한 대응마저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번달 ECB는 매우 요란했지만, 결국 초점은 미국의 2Q 반등폭으로 모아지고 있는 느낌. 미국 금리 상승 뷰는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판단.

fait accompli

금주 월요일부터 미국 금리 상승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box 하단으로 인식되던 2.60을 화요일에 회복했다. 오늘 미국 장 초반 ADP와 무역수지 부진에 2bp정도 하락했지만, 현재 다시 2.60대로 진입. 

이번에 금리 반등을 기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과거 장기 저금리 후 금리인상 사이클 진입 직전의 시기를 살펴보면, 장기금리가 반드시 상승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하방지지력은 보인다. 특히 현재 연준의 시장소통력을 감안한다면, 2.50 이하에서의 추가 강세는 부담스럽다.

2) 5월 미국 금리 하락의 시작은 부진했던 미국 1Q GDP가 이끌었고, 마지막은 ECB의 추가 QE 가능성이 이끌었다. 1Q GDP의 확정치 발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미 컨센이 대폭 낮춰진 상태라 추가 강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Capex의 회복이 가시적이지 않아 오히려 2Q GDP의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칠 수는 있다.) ECB는 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으나, '유로존 유동성 팽창 - 미국 채권 강세' 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기조의 전환이 아닌 강화일 뿐이고, 풀리는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심지어 region을 넘어 예상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하다.

그 중 가장 최근의 이슈이며, 논리가 취약한 ECB를 포인트로 잡았다. ECB결과 자체를 확인하는 것은 늦고, 화요일 유로존 5월 CPI 예비치 발표 후의 시장 반응을 보기로 했다. 1)유로존 CPI의 둔화에도 미국 금리가 상승하거나 또는 횡보한다면 선반영이 끝난 것으로 보고 금리 상승 판단, 2)아무 요인이 없어도 미국 금리가 2.60을 회복하면 기술적으로 금리 상승 판단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두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ECB가 금리만 인하하는 등의 최소한의 액션을 취하면 미국 금리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동결이라도 한다면 폭등의 소지도 있다. 만약 추가 QE의 강도가 높아 변동성이 확대되더라도, 2.50 위에서는 상승 판단을 유지할 것이다. 가장 큰 고비는 NFP이다. 오늘의 ADP 발표 후 시장 반응이 그것을 증명한다. 시장은 1Q의 부진은 용인했지만, 2Q 반등의 기울기에 매우 민감해져 있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ethics

궁극적 목표 도달과 관련도가 낮은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의 절대적 강도와 무관하게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지금 준비 중인 시험이 그렇다. 학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깊이라 배우는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취득이 투자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돈을 운용하는 직업을 계속 하는 데에 레퓨테이션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런 자격증을 보고 레퓨테이션 증강을 느끼는 수준의 사람의 돈이라면 맡아봐야 피곤해질 것이 뻔하다. 게다가 나는 내 자본만을 가지고 운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 시험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최고로 좋은 계절을 즐기지 못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빼앗을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인다. '크게 쓸모는 없지만, 남들도 다 귀찮아 하는 일을 해냈다는 증명' 이 필요한 나이는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

아마도 경외시되겠지만, 시험 과목 중 실제로 제일 중요한 파트는 윤리라고 생각한다. 신의성실을 지켜 타인의 자산을 맡아야 한다는 문장은 상상 이상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측량과 규제가 불가능하기에, 앞으로도 이 부분은 완전히 관리되기는 힘들 것이다. 타인의 머리를 빌릴 때 발생하는 회피 불가능한 리스크다.

그리고 내가 협회의 담당자라면, 윤리 과목에 아래 내용들을 추가할 것이다.

1. 투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2. 돈을 벌기 위해 투자를 시작했음을 잊지 않는다. 투자 자체에 심취해 더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두 항목 모두 평소에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어기기 쉽다. 특히 2번이 그렇다. 예전에 스노볼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버핏처럼 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