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31일 월요일

15/08/30

-1-
소로스가 정교한 재귀이론으로 주식시장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한 후 주가는 오히려 폭등했다. 반대주장을 편 사람이 소로스에게 그때의 논쟁을 기억하느냐 물었다. '당연하지. 도중에 생각을 바꿔 큰돈을 벌었으니'

from 이영두 전 회장 트윗.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91페이지.



-2-
주말에 접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북한의 대남접촉시도 배경에 중국 경기의 부진이 있다'는 뷰. 북한의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호주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충분히 가능한 주장.



-3-
나는 의미 없는 과음과 폭음은 질색이지만 재밌는 술을 즐기는 것은 좋아한다. 이것을 꽤 오랜 시간 잊고 살았는데, 한국에 잠깐 나온 유학생 친구가 훌륭한 동네 바를 소개시켜줘서 다시 발동이 걸릴 뻔 했다. 라프로익 하이볼이 그렇게 좋을 줄이야.

의식주와 관련된 디테일을 추구하는 것은 즐겁다. 미식을 하고, 멋진 옷을 입는 것에서 사람은 어느정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셋 중에 압도적인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은 주거 공간. 이유는 주거가 가장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주 기자님의 신간 '생각의 모험' 인터뷰에서 건축가 황두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건축에 관심을 가지려면 다른 것들이 꽤 충족된 상태여야 합니다. 음식이나 옷이나 자동차 정도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도 선택할 수 있어요'



-4-
한국 경기에 대한 몇몇 긍정적인 전망에서 제시하는 문구는 단 하나 뿐이다. 중국 경기가 다시 부스팅을 받아 고성장을 유지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 그만큼 긍정적 시나리오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5-
몇년 전 동아리 후배 기수인 동갑내기 친구가 내 종목 레포트를 읽고는 '너는 리서치 쪽인가 보네. 난 매매 쪽이야.' 라고 해서 몹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주위에서 비슷한 말을 네 번정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여전히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참 재밌다. 사실 나의 리서치는 아직도 허접한 편이고, 학생때만 해도 스페셜티는 오히려 기술적 분석과 매매였는데. 나는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시세 흐름이 불편하면 매매하지 않고, 심지어 차트에서 먼저 영감을 얻어 리서치를 하는 경우도 꽤 많다.

2015년 8월 28일 금요일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미국 시장의 월요일 변동성은 정말 대단했다. 금융위기 시절 코스피를 매매하며 나름 별별 케이스를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월요일 나스닥과 S&P선물의 움직임은 그 때의 기억을 뛰어넘었다. 특히 나스닥 선물의 경우 개장 전 여러차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어 거래가 불가능했을 정도. 화요일과 수요일도 만만치 않았다. 급등 후 급락, 급락 후 급등의 양상을 보이며 시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엔과 유로의 큰 변동성, 금의 하락, 미국채 10년물 금리의 상승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역시나 금번 조정이 붕괴의 서곡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그림일 뿐 당장 미국주식 long을 가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평균적인 변동성이 높아져 있는 시기에는 중장기적인 뷰와 무관한 가격 흐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그러한 가격 흐름에 일일히 의미를 부여하다가는 다치게 된다는 것. 가격 등락의 함의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가끔은 아무 의미 없는 가격의 흐름이 관찰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한 움직임에 일일히 의미를 부여했다가는 피곤해질 뿐만 아니라 잘못된 분석 결과를 내놓기 쉽다. 즉,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해력이 저하될 수가 있는 것. 이것은 비단 마켓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상대방에게 있다 하더라도, '가끔은 이해 불가능한 점이 있다' 라는 부분까지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상대를 오독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대부분의 오해와 실패는 모든 것을 이해해 보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015년 8월 24일 월요일

미국에 대한 생각 - 침체와 번영의 경계에서

지난주 목,금 양일간 미국 주식 시장은 크게 하락했다. 올해 내내 좁은 박스에서 응축되던 시세가 결국 아래로 먼저 뚫렸다. 연준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미국 주식이 가격 조정을 보이면 long view를 가지는 것이 기존 계획이지만, 하락의 기울기가 이 정도로 급격하면 사실 두려움이 앞선다. 단순 가격 조정이 아닌 대폭락의 시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장 7년간의 금융완화를 끝내고 정상 궤도에 본격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대침체로 회귀할 것인지. 미국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큰 그림을 체크해 보아야 할 시점.

먼저 미국을 자금순환표 관점에서 조망해보자.


이 자금순환표는 리처드 쿠가 즐겨 활용하는데, 어느 주체가 0% 위에 있으면 순저축자임을, 반대로 아래에 있으면 순투자자임을 의미한다. 해외가 0보다 높다는 것은 미국이 돈을 해외에서 빌리고 있다는 것. '15년 1분기 기준이며, data를 미세 가공하지 않아서 조금 어지럽지만 큰 추이를 보기엔 문제가 없다.

리처드 쿠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경제는 가계가 맨 위에 순저축자로 위치하고, 기업이 맨 아래 순투자자로 위치하며, 정부와 해외는 0 근처에 위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만약 대공황, 대침체와 같은 자산가격 폭락 위기가 발발하면 기업과 가계의 대차대조표가 크게 손상되고, 이들이 동시에 순저축에 나서게 된다. 위 그래프로 보자면  기업과 가계가 동시에 0% 위에 위치하는 2009년에 해당.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QE를 해봤자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금융완화는 아무 의미가 없고, 정부가 나서서 수요를 창출해줘야 한다는 것이 쿠의 주장이다. 물론 파란색 선을 보면 미국은 재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나는 대차대조표 불황 하에서의 금융완화는 기업과 가계의 레버리징을 도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자산 가격 폭락 시 금융완화는 자산 가격의 추가 폭락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차대조표가 더 망가지지는 않게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다. 즉, 나는 2008년과 같은 위기에서는 재정과 통화정책을 둘 다 적극적으로 쏟아 부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나의 오리지널한 생각이라기 보다는 크루그먼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해두면 적절할 듯.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체크해야 할 것은 두 가지. 1)대차대조표는 다 회복되었는가, 2)자금순환표 상 지금 주체들의 위치는 어떠한가. 일단 일본이 15년이 걸렸던 것에 비해 미국은 5년이 지난 2013년~2014년경 대차대조표를 회복했다(자료는 추후 첨부). 그리고 현재 자금순환표에서 주체들의 위치는 비교적 이상적인 편.

여기서 가계 부문을 한번 들여다 보자. 그래프에서 보면 가계 부문은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말까지 줄곧 하락한다. 대출을 확대해 소비하고 있었다는 의미. 90년대 말 IT버블이 터지지만 이 추세는 이어져서 급기야 2000년대 중반에는 마이너스권에 이른다. 이것은 지속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금융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계는 다시 저축을 하며 망가진 대차대조표를 회복 시킨 것.

이쯤에서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중반식의 주식시장 강세에 익숙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제 다시 보라색 그래프가 하락해야, 즉, 가계가 왕창 쓰기 시작해야 강세장이 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렇다면 가계가 여전히 자본잉여 기조에 있고, 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cover하던 60년대  초반에는 주가가 안좋았을까? 그렇지 않다.


중간마다 부침은 있었지만 60년대에는 S&P 500이 60에서 100포인트까지 65%상승하는 약 10년간의 강세장이 연출되었다. 90년대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강세장은 강세장이다.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기준금리도 normalization 중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상황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가계의 re-leveraging이 관찰되지 않더라도 강세 뷰를 가지는 게 가능한 것이다. 물론 기업과 정부의 순투자가 전제되기에 이 부분은 계속 관찰해야 한다.

아래 조지프 엘리스의 차트를 보더라도, 65년~80년까지 가계의 잉여세가 반드시 부진한 PCE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실질임금의 증가인데, 차트의 우측 끝을 보면 현재 실질임금은 견조한 편.

결국 민간 대차대조표 회복과 자금순환표의 정상화, 실질임금과 실질소비자 지출의 추이를 종합해 봤을 때 최근의 미국 주식 폭락은 대침체로의 귀환 보다는 일시적 가격조정에 가까워 보인다. 그것은 결국 조정의 끝을 예상하긴 어렵지만 이번 조정이 매수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뷰를 유지.

아래는 살짝 손을 본 기술적 지표로 S&P500을 긴 관점에서 바라본 것.


기술적으로는 1,940 포인트 부근 지지가 어렵다면 1,800포인트까지의 조정도 가능해 보인다. 그리는 김에 여러 지수들을 간만에 살펴봤는데, 첨부하진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가늠한 코스피의 '16년 타겟은 1,450포인트. 틀리길 바랄 뿐.

2015년 8월 15일 토요일

천재들의 실패

세상의 모든 매매는 방향성 매매이다. 일물일가를 전제하는 차익거래조차 사실은 일물이 일가로 귀결될 것이라는 방향성에 베팅하는 매매일 뿐이다. 일전에도 포스팅했듯, 방향성 매매는 결국 평균회귀와 추세추종의 두 가지로 나뉜다. '이제 시장이 제 자리로 돌아갈거야' 또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평균회귀를 '평균으로 회귀할 것에 베팅하는 방향성 매매'로 이해하지 않고, '위험이 거의 없는 차익거래'로 이해하면 망하게 된다. LTCM 처럼.

이 책에서 나를 가장 흥미진진하게 만든 부분은 LTCM의 화려했던 시기도, LTCM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도 아니었다. 간간이 히어로처럼 등장하는 버핏과 소로스가 의자에 구겨져 책을 읽던 나를 고쳐앉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아이언맨과 배트맨이 따로 없다. 다만 이들은 곤두박질 치는 천재들을 돕진 않는다. 책에서 둘의 존재감을 엿볼 수 있는 내용 일부를 첨부.



1)
"나는 다르게 봅니다" 소로스는 그렇게 말했다. 이 투기꾼은 시장을 유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시장이 진행 중인 사건들과 상호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시장은 불모의 추상적인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정상분포 곡선이란 틀린 개념이라고 봅니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해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소로스의 펀드가 가까스로 20억 달러를 잃은 러시아는 교수들의 곡선에서 벗어나 있는 그러한 '예외적 현상'의 사례였다.

메리웨더는 조용하지만 설득력 있게 LTCM의 시장들이 원상 회복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본이 풍부할수록 기회는 커진다. 소로스는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드러큰밀러가 메리웨더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소로스가 러시아에서 잃은 손실을 빠른 시일 안에 만회할 기회임을 직감했다. 대담하게도 소로스는 LTCM이 추가로 5억 달러를 끌어들여 그들의 자본을 만회할 수 있다면, 1주일 후인 8월 말에 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제의했다.

(천재들의 실패 p231)



2)
10시 25분, 반백의 머리에 눈썹이 짙게 올라간 64세의 거친 시카고 출신 맥도나우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회의를 1시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아직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덧붙였지만,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CEO들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코진과 태인이 맥도나우를 한켠으로 불러 갑자기 새로운 사태 발전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버핏이 입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난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줄 알았소!" 솔로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러나 맥도나우는 이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연방준비은행이 개입하지 않는 해결책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지금 몬테나의 대목장에 있는 버핏에게 전화를 걸었다. 버핏은 확인을 해주고, 지금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중략)

골드만삭스의 투자 담당인 크로스가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에 버핏은 메리웨더에게 전화를 했다. "존". 그는 특유의 콧소리로 불렀다. "내 이름으로 포트폴리오에 입찰한 것을 보게 될 거요. 그게 나라는 걸 알고 있기 바라오." 메리웨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재들의 실패 p311~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