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9일 금요일

12월 한국 경제지표 예상. 그리고 한국은행에 대한 생각.

연초부터 시장의 관심이 워낙 중국에 쏠려있는지라 국내지표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는 대단히 낮아져 있다. 월말 국내 지표를 그나마 관심있게 보는 채권시장 내에서조차 12월 지표에 대한 커멘터리는 거의 없는 듯. 중국도 중국이지만 한국은행에 대한 정책기대감이 워낙 바닥인 탓도 크다.

나는 기본적으로 국내 1분기 경제지표 전반과 경기흐름이 부정적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내일 공개될 15'년 12월 지표들의 예상치를 대략 돌려보니 역시나 전망은 어둡다. 광공업생산, 설비투자지수, 소매판매 각각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광공업생산
(출처 : Kosis)

12월 광공업생산은 약 -1.2%YoY, +2%MoM수준일 것으로 예상 (광공업생산 추정 방식은 예전글을 참조). 철강, 디스플레이, 가전, 기계류 등 원래도 안좋았던 섹터들의 수출 부진이 지속되었고, 핸드폰 수출 증가폭도 둔화되기 시작했다. 현기차 부분 파업으로 12월 자동차 생산이 감소한 영향도 꽤 크다. 14'년 12월 수치가 +1.15%YoY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치를 상회할 리스크보다는 하회할 리스크가 더 큰 상황. 작년말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이는 생산감소를 통한 재고조정이 이어질지 관찰하는 것이 포인트. 다만 당장 내일 채권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듯.


2, 설비투자지수
(출처 : Kosis)

설비투자지수 예측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역협회자료에서 내수용 자본재 수입을 보면 매우 정확. 12월 내수용 자본재 수입이 -7.7%YoY였는데, 회귀식상 12월 설비투자지수는 대략 -5.68%YoY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15'년 1분기의 설비투자지수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16'년 1분기 내내 설비투자지수는 YoY기준으로 계속 마이너스 영역에 머물게 될 것.


3. 소매판매
(출처 : Kosis)

개인적으로 추정이 제일 어려운 지표가 소매판매. 나는 자동차산업동향 자료와 월말지표 직전에 산통부에서 발표되는 유통업체동향을 기준으로 추정하는데, 그 정확도가 아주 높지는 않다. 특히 메르스와 블랙프라이데이 여파로 10월, 11월의 추정은 크게 엇나갔다. 12월에는 +2.2%YoY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12월에 백화점(-5.7%YoY), 대형마트(-5.1%YoY), SSM(-5.0%YoY), 편의점(-4.0%. 담뱃값 인상 효과를 제한 수치) 판매 전반이 악화되었다는 점에서 추정치를 하회할 리스크는 존재한다. 지금 소매판매는 개소세 인하와 프로모션으로 인한 자동차판매의 호조가 지표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결국 자동차 판매가 꺾이기 시작하면 소비지표 헤드라인이 크게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12월 지표는 부진한 생산과 투자, 그리고 정부의 억지 소비 진작효과에서 벗어나는 소비라는 암울한 모습을 그리겠지만 한국은행이 3~4개월 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생각한다. 2월 금통위는 너무 빠르고, 3월 금통위는 FOMC 일주일 전이다. 4월 13일 총선을 위한 정치적 인하가 3월에 단행되지 않겠냐는 뷰도 있으나, 지금의 한국은행은 FOMC를 목전에 두고 금리 인하를 외칠만한 용기는 전혀 없다. 4월에는 19일이 금통위인데 20일에 금통위원 4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4월 수정경제전망은 2%대로 하향되겠지만, 금통위원이 대거 교체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인하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조합해보면, 국내지표 및 대외여건의 동반 악화와 한국은행의 방관이라는 상황은 4월 혹은 그 뒤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3년물은 1.60%을 하회하기 어려울 것이고, 10년물은 지저분한 움직임을 보이며 결국 2.0% 아래에 가 있을 것으로 생각. 3년-10년 스프레드는 25bp까지 축소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드시 한국 채권을 매매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굳이 한국 채권을 매매 대상으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을 듯.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what the market says (10) - 중국

지난번 글에서 달러와 엔화에 대한 KRW short을 유지하고 미국채 10년물 long을 본 것은 좋았다. 그 날 미국 10년 종가가 2.12%였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대략 1.98%수준. 다만 랠리하는 동안의 변동성이 워낙 컸었기에 실제 포지션이었다면 중간에 정리해버렸을 가능성이 높았을 듯 싶다. 한편 한국 10년물 금리는 별로 하락하지 않았고, 특히 어제 장 막판 확산된 리스크온 센티먼트에 오히려 꽤 상승해 버렸다. 아무래도 원화가 약세로 가는 것이 국내 채권과 주식에는 혼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연초부터해서 오늘까지 시장이 난리가 난 배경에는 역시 중국이 있다. 중국의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을 공부하다가 거의 일주일을 날렸는데, 정리한 내용과 최근의 중국 상황을 섞어 간단히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해외에 있는지라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주 정도에 따로 써 볼 게획.



-1-
중국은 경기 부양도 하고 싶고, 위안화 가치도 유지시키거나 최소 아주 천천히 절하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역외 CNH시장에 개입해 hibor 금리를 60%까지 급등시키기도 하고, 다시 유동성을 풀어 진정시키는 과정을 반복 중이다. 즉, 위안화 절하가 싫어서 위안화 유동성을 빨아들였다가, 금리가 너무 올라 부담이 되자 다시 위안화를 푸는 패턴을 반복 중인 셈. 이것은 거울을 뒤에 놓고 고개를 빠르게 뒤로 돌려 본인의 뒤통수를 보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바보짓이다.


-2-
지인의 뷰에 따르면, hibor금리 급등이 홍콩 은행들의 solvency risk를 건드릴 가능성은 낮다. 홍콩 브랜치들의 자금 조달은 대부분 CNH가 아닌 USD나 HKD로 이루어지기 때문. 다만 역내에서 이런짓을 했다가는 재앙이 될 것.


-3-
중국에 대해 앞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1) 위안화를 한 번에 크게 절하한다
김이사님과 크루그먼이 제시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 추가적인 위안화 절하에 대한 기대를 불식시켜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고 통화정책의 유연성도 확보된다. 작년말 연간전망을 쓸 때만 해도 나는 점진적인 절하가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 경우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주장에 완전히 설득되었다. 중국 외채의 절대 규모는 1조달러에 육박하지만 GDP 대비 외채 규모는 10년 넘게 10%수준에서 관리되어 왔기에, 위안화가 단번에 크게 절하되더라도 외화표시부채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낮다. 일부 기업의 디폴트는 있겠지만 은행시스템이 감내 가능한 수준일 것.


(2) 위안화를 점진적으로 절하시킨다
이 시나리오에는 최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위안화 약세를 억지로 저지하려는 중국당국의 노력 때문에 산발적인 단기금리 급등이 야기된다. 이것은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를 확대시키고 기업들의 이자 부담도 가중시킨다. 중국 은행 대출의 75%는 기업대출이다. 변동금리이거나 단기고정금리 롤오버 형식이기 때문에 단기금리 급등의 영향에서 기업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시중 유동성 고갈과 단기금리 급등은 자산버블 붕괴의 위험도 높인다.

둘째, 추가적인 위안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이 유지되어 꾸준히 자본이 유출된다. 이 역시 자산버블 붕괴의 위험을 높인다. 찾아보니 수출업체들이 받은 USD를 바로 CNY로 바꾸도록 당국이 관리하는 식의 통제가 많은데, 완전한 자본통제를 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규제를 지속하면 아르헨티나처럼 달러 블랙마켓이 형성되어 버릴 것이다.

즉, 중국이 이 길을 택하면 은행 시스템 리스크도 확대되고, 자산 버블 붕괴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기업들도 힘들다(경기 부양 효과가 없다).


(3) 위안화 가치를 유지시키고, 기준금리 인하도 하지 않으며 방관한다.
단기적으로 시장이 가장 안심하게 될 시나리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기업부채만 GDP의 150%를 넘고, 실질금리도 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시장이 단기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중국 기업들의 연속적인 디폴트로 연결될 것. 그 시점이 대략 언제일지, 그리고 중국 기업들의 디폴트가 은행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리서치 중.


-4-
문제는 중국이 위 시나리오 중에서 (2)와 (3)의 중간 정도를 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자산버블 붕괴와 기업의 디폴트가 겹치며 은행 시스템까지 무너지는 최악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원래는 마켓에 대한 뷰나 포지션이 떠오르면 쓰는게 'what the market says' 였지만, 오늘은 휴가 전에 생각을 정리해두기 위해 포스팅. 기존의 USD/KRW, JPY/KRW long과 미국채 10년 long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특히 중국에 대한 위의 어떤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KRW short은 참 매력적이다. 다만 오늘 wclee님의 제안대로 다음주 FOMC가 dovish할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다음주 월~화 중에는 포지션을 한 번 접고 가는 것을 고려해봐야 할 듯.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My technical views (9)

많은 테크니션들이 저항선 돌파 시 매수 진입 전략, 혹은 지지선 붕괴 시 매도 진입 전략의 유효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항선, 지지선 돌파 시도의 80%이상은 실패하고 가격은 기존의 레인지로 회귀해 버린다. 열번 따라가면 두번 정도만 맞게 되는 것인데, 그나마 맞는 두 번에서도 그것을 수익으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돌파 과정에서의 스윙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세는 레인지 내에 머물고 싶어 한다.  

이와같은 가격의 평균회귀적 속성을 활용한 대표적인 기술적 지표 중 하나가 볼린저밴드다. 이 지표는 가격이 평균(이평)에서 특정 표준편차 이상으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한다. 투자자들은 대개 밴드 상단에 가격이 근접하면 매도 시그널로, 밴드 하단에 가격이 근접하면 매수 시그널로 받아들인다. 전형적인 레인지 접근법이다. 볼린저밴드의 창시자며 Bollinger on Bollinger bands의 저자인 John Bollinger나, Understanding Bollinger bands의 저자인 Edward Dobson도 주로 평균회귀적 관점에서 이 지표를 설명한다.

그러나 막상 '평균'을 뒤흔드는 큰 흐름은 밴드 바깥에서 형성된다. 모든 밴드 돌파가 큰 추세를 시그널링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추세의 대부분은 밴드 돌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돌파라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기술적 지표가 그러한 부분까지 시그널링 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래 첨부한 달러/원 환율 차트에서 현재 관찰되는 볼린저밴드 상단 돌파는 과연 큰 추세의 시작일 수 있을까? 기술적 지표만으로 '그렇다'는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다만, 추가 상승을 기대하며 long을 가 볼만한 자리인 것은 맞다. 밴드 내로의 회귀를 stop loss로 두고서.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what the market says (9) - 위안화 절하, 12월 비농업고용

지난번 글에서 USD/KRW, JPY/KRW long을 본 것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연초부터 위안화 절하와 중국 증시 폭락이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강화시키면서 JPY/KRW는 거의 USD/KRW의 레버리지 자산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섹터 long을 본 것은 완전히 틀렸다. 엔에 대해 원화가 절하되면 한국 자동차 섹터에 유리한 FX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전망이었는데, 엔에 대해 원화가 절하된 이유가 중국 리스크 확대였고, 그 리스크가 KRW 절하라는 긍정적 요인을 압도해 버렸다. 작년 7월 15일에 KRW 절하의 추이를 보며 '원화가 절하되었다며 수출 관련주를 낙관하는 것은 넌센스. 지금 관찰되는 원의 절하는 수출을 회복시킬 요인이 아닌 수출 부진의 결과물일 뿐' 이라고 썼었는데, 잘 써놓고도 같은 부분에서 틀려버린 셈.

지난 금요일에는 미국의 12월 비농업 고용이 발표되었다. 결과는 예상치인 203K를 뛰어넘는 292K였고, 시간당 임금은 예상치인 +2.7%YoY에는 못 미친 +2.5%YoY였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은 수준. 발표 직후 주식은 상승하는 척 했지만 하락 반전해 버렸고, 미국채 금리도 상승하는 척 했다가 바로 하락해버렸다. 장 중의 가격 흐름으로 보건데, 고용지표 뿐 아니라 유가의 하락도 위와 같은 흐름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준 듯.

최근의 위안화 절하, 그리고 12월 비농업 고용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은,


1. 고용이 잘 나왔는데 미국채 10년 금리가 왜 하락했을까. 1) 시간당 임금이 기대치를 하회해서, 또는 2) 고용 호조로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면 경기에 부담이 되어서, 일텐데 후자의 가능성에 무게. 그렇다면 금번 고용이 부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미국채 금리는 하락했을 것.

2. 경기부진+통화의 평가절하 압력을 자본통제로 방어했던 사례가 있는가? 있다.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에 따르면, 90년대 말 홍콩에서는 홍콩 주식을 공매도하고 그 대금을 달러화로 바꾸는 헤지펀드들의 거래가 유행했다. 홍콩주식, 홍콩달러를 둘 다 short 하는 것인데, 통화가 절하되면 홍콩달러 포지션에서 돈을 벌고, 홍콩당국이 금리를 올려 통화를 방어하면 주가가 망가질테니 홍콩주식 포지션에서 돈을 버는 구조. 그러나 홍콩통화청은 통화를 방어하고도 남을만한 달러를 가지고 있었고, 홍콩당국은 그 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해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p161)

그럼 중국도 홍콩처럼 위안화 절하를 방어해 낼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1) 지금의 상해증시 폭락과 위안화 절하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주된 요인이 아니고, 2) 중국은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는데 연준은 계속 올리려는 중이며, 3) 핫머니 통제에 성공해도 이미 위안화 절하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어 버렸기에 무역업체들의 환전 래깅만으로도 절하 압력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USD/KRW, JPY/KRW long은 유지하는게 맞을 듯. 그리고 유가의 급반등 리스크 정도에 유의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10년물 채권 long도 유효.

2016년 1월 4일 월요일

히말라야, 플레이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대에 못 미쳤다. 영화 같은 실화를 영화화 하는 것은 흥행 측면에서 꽤나 안전한 선택이다. 사람들은 영화 자체 보다는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감동한다. 거기에 연기파 배우까지 섭외하면 한국 시장 내에서의 성공 확률은 아주 높아진다. 아마도 1)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2) 한국이 아닌 외국 영화였다면 국내 시장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그코드에 공감하지 못하고, 감동 포인트에서도 무덤덤하게 팝콘을 집어 먹는 등 난 이 영화에 전혀 몰입을 하지 못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중 몰입도가 제일 높았던 영화는 작년에 봤던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 같은 실화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과 번민이 잘 묘사된 영화였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인간을 그리기 보다는 스토리를 그렸다. 스토리는 이미 실화가 그려 놓은 것이었고, 인간 그리기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어떻게든 떼워 보려는 듯 했다. 몰입하지 못했으니 재미있었을리가 없다.

히말라야 관람의 아쉬움은 신기주 기자님의 신간인 '플레이' 가 달래 주었다. '책을 펴자마자 술술 읽히는 문장에 단숨에 완독해 버렸다' 는 류의 후기들을 많이 접했었는데 나도 그랬다. 책이 정말 재밌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스토리라서 그렇다. 한국의 많은 기업서들은 어설픈 분석을 기반으로 제멋대로식 성공요인 뽑아내기에 급급한다. 그러다보니 혁신, 창조, 감성 등의 듣기 좋은 단어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작 기업에 대한 이야기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플레이'를 포함한 신기주 기자님의 기업서, 혹은 기업 관련 칼럼들은 그렇지 않다. 취재라는 행위의 힘에 대해 놀라게 될 정도로 내용이 디테일하고, 각각의 디테일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맥락을 형성한다. '플레이' 의 디테일들이 형성한 맥락은 재미와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았더니 넥슨이 되었다. 넥슨의 성공 요인을 몇몇 단어로 추려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매 국면마다 난제를 타개하는 방정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할 때도 있었고, 적절한 분배 시스템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개발과 비개발 간 힘의 안분에서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 덕택에 게임업계의 대략적인 역사와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이라는 키워드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며 새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디즈니를 지향한다는 김정주 대표의 책 말미 인터뷰에서는 묘한 울림까지도 받았다. 내게는 히말라야 보다 플레이가 오백배는 감동적이다.

2016년 1월 2일 토요일

2015년을 되돌아보며, 그리고 짧은 2016년 계획

2015년에 회사에 제공한 전망들은 나쁘지 않았다. 금리는 3월 기준금리 인하를 맞히진 못했지만 2월 말부터 단기물 금리 하락을 주장했고, 6월에는 기준금리 인하 전망을 했지만 듀레이션 확대 콜은 넣지 않았다. 7월말에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금리 인하와 미국의 경기 개선을 배경으로 하반기의 커브 스팁 전개 가능성을 전망해서 틀렸지만, 8월에 바로 뷰를 철회했다. 8월 수출이 공개된 9월의 첫날 다시 시장금리 하락 전망을 했고, 10월 인하를 전망했다가, 인하 전망은 9월 금통위 이후 철회 했다. 방향성을 가장 크게 틀렸던 달은 11월이다. 3년물 1.70%부근에서의 매수 접근을 주장했지만 금리는 1.80%까지 올랐다. 가장 좋은 전망을 했던 달은 12월이다. 미국의 11월 비농업고용이 공개된 후 첫 거래일인 12월 7일, 이제 연준의 12월 인상은 기정사실화 되었고 국내 지표는 깨질 일만 남았으므로, 1월 금통위 즈음엔 3년물이 1.70%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전망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나라는 미국이다. 8월까지만 해도 나는 유가하락에 따른 소비 증대로 하반기부터 미국이 본격적인 선순환 사이클에 진입한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산업지표가 망가지고는 있었지만, 소비만 올라온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소비심리지표의 개선과 폭발적인 자동차 판매는 마치 미국의 하반기 소비 증대를 시그널링 하는 듯 했다. 그러나 9월을 기점으로 뷰를 바꿨다. 소비는 밋밋하고 인플레는 바닥인데 제조업 경기 둔화와 중국의 침체는 목전에 닥쳤기 때문이었다.

모든 전망을 통틀어 가장 timely하게 큰 변화를 예상해 짜릿함을 맛본 것은 8월의 위안화 절하였다. 위안화 절하 쇼크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 IMF의 위안화 SDR편입 보류 보도를 보고 회사와 지인들에게 위안화 절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제 중국이 억지로 통화강세를 유지할 유인을 잃었으니, '아몰랑 절하' 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요지였다. 가장 삽질했던 전망은 4월의 유가 전망. 6월을 기점으로 유가가 상승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바보같은 커멘터리를 했다.

시장 외에 내 머릿속에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었던 것은 지금 속한 회사의 방향성과 수준이었다. 황현산 명예교수의 '말이 안되는 소리를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도 드물다. 무식하고 편협한 인간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죄악이다' 라는 트위터 멘션에 바로 회사가 떠오르는 것은 안타까운 경험이었다. 1년 내내 바꿔 보려는 온갖 시도를 지속했지만, 올해에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에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조직과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기로 했다.

이쯤에서 2014년 말에 썼던 2015년 계획들을 되짚어 보면,

1. 블로그는 계속 쓰고, 한 달에 하나는 영어로 포스팅을 한다.
-> 블로깅은 2015년에 더 많이 했다. 영어는 포스팅을 하는 대신 뉴욕에 있는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었는데, 다시 포스팅을 시작할 생각.

2. 점심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을 만난다.
-> 점심시간은 나름 잘 활용했다.

3. 좋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간다.
-> 노력은 했는데 여전히 잘 하지는 못한다.

4. 책을 읽을 때 메모와 정리를 적극적으로 한다.
-> 메모는 많이 했는데 블로그에 정리는 잘 못했다.

5. 운동은 지금 하는 헬스와 검도로 족하다.
-> 검도는 치아교정을 시작하며 그만두었다. 헬스는 어언 6년차.

6. 무리 없이 아웃소싱이 가능한 것들은 최대한 아웃소싱하여 내 일에 집중한다. 매크로 분석력과 리서치 업그레이드를 위한 기본적인 공부에 시간을 더 할애할 것.
->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효율적인 시간 쓰기는 아직도 젬병.

7. 평일 수면 시간을 더 줄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주말 수면 시간은 줄일 수 있을 듯 하다.
-> 평일 수면 시간이 줄고 주말이 늘었다. 잠을 참다가 몰아자는 습성은 학생 때부터 있었는데, 과연 이걸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8. 여행 횟수를 줄인다.
-> 자의반 타의반으로 줄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느낌도 든다. 이제, 2016년 계획을 나열해 보면,

1. 블로그는 시장 관련 포스팅에 집중하고, 영어 포스팅도 재개한다. 이메일 주소도 다시 적어두기로 했다.

2.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넓게 만나 보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좋고 훌륭한 사람을 자주 만나는게 더 낫다.

3. 책읽기는 일에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여가적인 속성이 더 강하다. 독서 보다는 공부에 더 집중하자.

4. 헬스는 스쿼트랑 복근운동 비중을 확대. 등이나 어깨 운동은 목~토요일에만 한다. 특히 등운동을 주초 평일에 하면 회사에서 앉아있기 너무 힘들다.

5. 평일에는 늦어도 11시 반에는 잔다.

6. 교정 때문에 입술이 자유롭지 못해 발음과 발성이 많이 망가졌는데, 하반기에 교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신경써서 고칠 것.

7. Understanding yield curve 공부를 완전하게 끝내고, 미국 지표 뜯어보고 정리하기는 상반기까지 마무리한다. 이사님이 말씀하셨던 과거 골삭 리폿으로 공부하기에도 도전.

8. 집 앞의 바는 한 달에 한 번만 간다.


2016년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