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4일 월요일

히말라야, 플레이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기대에 못 미쳤다. 영화 같은 실화를 영화화 하는 것은 흥행 측면에서 꽤나 안전한 선택이다. 사람들은 영화 자체 보다는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감동한다. 거기에 연기파 배우까지 섭외하면 한국 시장 내에서의 성공 확률은 아주 높아진다. 아마도 1)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2) 한국이 아닌 외국 영화였다면 국내 시장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그코드에 공감하지 못하고, 감동 포인트에서도 무덤덤하게 팝콘을 집어 먹는 등 난 이 영화에 전혀 몰입을 하지 못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중 몰입도가 제일 높았던 영화는 작년에 봤던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 같은 실화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과 번민이 잘 묘사된 영화였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인간을 그리기 보다는 스토리를 그렸다. 스토리는 이미 실화가 그려 놓은 것이었고, 인간 그리기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어떻게든 떼워 보려는 듯 했다. 몰입하지 못했으니 재미있었을리가 없다.

히말라야 관람의 아쉬움은 신기주 기자님의 신간인 '플레이' 가 달래 주었다. '책을 펴자마자 술술 읽히는 문장에 단숨에 완독해 버렸다' 는 류의 후기들을 많이 접했었는데 나도 그랬다. 책이 정말 재밌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스토리라서 그렇다. 한국의 많은 기업서들은 어설픈 분석을 기반으로 제멋대로식 성공요인 뽑아내기에 급급한다. 그러다보니 혁신, 창조, 감성 등의 듣기 좋은 단어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작 기업에 대한 이야기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나 '플레이'를 포함한 신기주 기자님의 기업서, 혹은 기업 관련 칼럼들은 그렇지 않다. 취재라는 행위의 힘에 대해 놀라게 될 정도로 내용이 디테일하고, 각각의 디테일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맥락을 형성한다. '플레이' 의 디테일들이 형성한 맥락은 재미와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놀았더니 넥슨이 되었다. 넥슨의 성공 요인을 몇몇 단어로 추려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매 국면마다 난제를 타개하는 방정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할 때도 있었고, 적절한 분배 시스템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개발과 비개발 간 힘의 안분에서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플레이' 덕택에 게임업계의 대략적인 역사와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이라는 키워드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며 새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디즈니를 지향한다는 김정주 대표의 책 말미 인터뷰에서는 묘한 울림까지도 받았다. 내게는 히말라야 보다 플레이가 오백배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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