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일 화요일

매트릭 스튜디오

휴가기간 중 읽을 책으로 문병로의 매트릭 스튜디오를 골랐다. 휴가 중에 꼭 그런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겠지만, 나는 투자나 트레이딩 관련 서적을 읽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그 편안함의 근거는 공감에 있는 듯 하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묘한 안도감과 함께 글에 대한 집중력이 상승한다. 그리고 그 뒤로 읽히는 글들은 어떤 무협지나 만화책보다 실감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1)기술적 지표의 조합을 이용하는 트레이딩, 2)수리적 추정 모형을 활용 하는 트레이딩(사실 1, 2번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음), 3)펀더멘탈 factor를 활용하는 트레이딩, 4)HFT & market making 정도로 분류하여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대략 1~3번을 적절히 혼용하는 투자자인 듯 하다. 스타일의 폭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포지션 사이징 전략도 겸비한 노련한 시스테머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라는 분야와, 저자의 직업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학부시절 증권 수업 과제로 코스피의 10년 수익률을 기하평균 관점에서 분석해 제출하자, 담당 교수님이 '수치가 잘못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체크해 보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기하평균은 투자자들의 인식과 다른 값을 산출해 낸다. 가격은 률(%)의 논리로 움직이기에 기하평균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고 체계가 단순평균에 익숙해 있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차트 분석의 핵심도 결국은 기하평균의 관점에서 출발하는데, 관련 도서로 가볍게 '주식수학'을 읽어 보면 좋다.

기하평균 외 세부 내용 중 눈길이 간 부분은 볼린져밴드의 검증이었다. '밴드의 돌파보다 밴드 상단 근접이 더 의미있는 시그널이다'는 문장은 나도 예전에 고민해 보던 것이었는데, 나는 밴드의 시그마 값을 조정해 밴드 돌파로 시그널을 통일시킨 반면, 저자는 근접 자체를 시그널로 남겨두었다. 로직을 다루는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당시 나는 '밴드의 근접'을 규정할 수 없어 로직을 단순화 했었다. 결과적인 시그널 생성 시점은 대동소이하겠지만, 로직의 정밀도 측면에서는 필자의 방식이 압도적이다. 필자는 나보다 몇 단계는 더 고차원적인 개념들을 트레이딩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하평균, 볼린져밴드 등의 컨텐츠보다도 나를크게 사로잡은 것은 저자의 검증력 그 자체다. 저자는 데이터 기반, 컴퓨터 능력, 연구실의 학생들을 통해 궁금한 로직을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검증해 낼 수 있다. 내가 '과거 20년간 이머징국가들의 경상수지 증가율과 3y-10y 스프레드', '볼린져밴드 확장 초기 국면에서의 rsi의 유용성' 등을 살펴보려면 데이터를 구해 정리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검증해 볼 수 있는 능력. 알고리즘 혹은 시스템의 강점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모델링을 통한 자동매매를 구현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은 직관력을 강화시켜주는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역시 영어 다음으로 배워야 할 언어는 컴퓨터 언어가 맞는 듯.

90년대 후반 코스닥 열풍과, 무료로 제공되는 화려한 기능의 HTS는 엄청난 숫자의 마바라 차티스트들을 잉태시켰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한국에서는 기술적 분석이 경시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현재 시스템 트레이딩이 주류로 취급받지 못하는 풍조 역시 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 기술적 지표를 조합한 신호매매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 그러나 나는 장기적으로 시스테밍 역량의 상향 펑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기본적 엑셀 능력이 필요하듯 향후에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기본 소양이 되지 않을지. 투자 스타일을 막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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