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6일 일요일

법정 경험

작년 가을 어느날, 회사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산책하던 중 길 건너편 두 남자의 몸싸움을 목격한 적이 있다. 말려보려는 생각 보다는 호기심이 앞서 구경을 하려는 찰나, 몸싸움 중이던 남자 중 한 명이 상대를 가드레일 넘어 차도로 밀어내려 하길래 이건 아니다 싶어 동료들과 만류에 나섰다.

다가가 보니 한 명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 가해 중인 남자는 한 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차저차 하여 경찰에 신고해 상황을 종료시켰고, 경찰은 최초신고자 정보가 필요하다며 나와 동료들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그런데 6개월 뒤인 지난주 법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 중이니 증인으로 참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해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맞고 있던 남자로부터 감사하다는 전화 한 통 없어 괘씸해하던 터라 출석요구에 응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형사재판 증인 불출석시에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나도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나름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태료 문구를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결국 약간 이른 시간에 퇴근하여 법원으로 향했다. 법정에 처음 가보며 놀란게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생각보다 증인 보호가 철저하지 않다는 점. 법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당시 가해자를 맞딱뜨렸을 뿐만 아니라(다행히도 그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했다), 증인은 가해자가 있는 앞에서 실명을 외치며 선서까지 해야한다.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폭행 사건이었고, 가해자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시스템 하에서 증인이 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놀란 점은 법조인들의 언어 구사력.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법정의 무게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판검사, 변호사들의 언어는 힘이 있으면서도 깔끔하여 금융계 달변가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법정에 있는 시간 내내 그들의 언어 스킬을 배워보려 애썼다.

나는 당시 상황을 짧게 증언한 뒤 약 20분동안 질의응답을 받았다. 나름 심각한 분위기에서 질의응답을 받다 보니, 며칠전 Yellen신임 의장의 증언이 자꾸 떠올랐다. 물론 나는 Tapering이 아닌 가격 신체 부위를 질문 받았고, Yellen처럼 또렷하고 온화하게 답하지도 않았다.

답변을 마치면 증인은 먼저 법정을 나와 귀가하도록 되어있다. 여비로 약 5만원을 받았다. 지하철로 귀가하며 내 증언이 어땠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긴장을 조금 했지만, 법정이라는 장소의 분위기 덕에 차분히 할 말은 다 했다. 만약 다음에 또 증언할 기회가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Yellen도 첫 증언 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음주 있을 그녀의 두 번째 증언과 첫 증언을 반드시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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