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좋은 보고서

새 부서로 옮긴 뒤  보고서 읽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증권사 보고서의 질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내 생각엔 잘 쓰여진 보고서들은 절대 외사에 뒤쳐지지 않는다. 좋은 보고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읽는 방향이 잘못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나는 보고서의 결론 자체는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결론이 불분명한 보고서는 잘 읽지 않는다. 판단이 틀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판단이 맞고 틀리고를 평가하는 기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포지션 없이 주장만 해야하는 애널리스트라는 업의 특성상 언제나 맞출 수는 없다. 실제 투자를 하는 입장에선 진입 후 아니다 싶을 때 빼면 그만이다. 지난 판단이 틀리지 않았냐며 비아냥대는 것은 비겁하고, '잘 맞춘다'며 추종하는 부류의 미래 계좌 잔고는 안봐도 뻔하다.

하지만 논점없이 막연한 주장만 하는 보고서들의 비율도 작지는 않다. 이러한 보고서들은 대개 특정지표, 원자재 가격, 거시경제 상황을 근거로 삼는데 '~가 오르고(개선되고) 있으니 ~를 사자'는 식이다. 예를들어 BDI 추이 그래프에 우상향 화살표를 그린 후, BDI가 상승 중이니 해운주를 사자고 한다. '상승 중'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모르는 탓에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상승 중'이라는 개념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면 그냥 상승 중인 주식을 사면 된다.

즉, 막연한 보고서의 대부분은 '펀더멘탈 지표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한다. 펀더멘탈리스트를 표방하는 분석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말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는 가격분석과 매매를 위한 기술적 분석의 유용성을 지지하지만, PMI나 GDP성장률 차트에 같은 논리를 적용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래도 좋은 보고서는 여전히 많다. 선호도를 나열하자면 1)시장을 보는 관점에 대한 영감을 주는 보고서, 2)주요 factor와 역사적 추이를 깔끔히 정리해 주는 보고서, 3)간과하기 쉽지만 중요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리마인드시켜주는 보고서 정도인 듯 하다. 문제는 나도 아직 좋은 보고서를 쓰지 못한다는 것. 눈만 높고 실력이 안되는 것만큼 피곤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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