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7일 일요일

스트레스 테스트

거시경제적 위기와 침체 국면에서 인간의 본능, 특히 정치적 본능은 '인기 없는 게임을 피하고 시장원리에 따라 그 원흉을 징계 받도록' 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며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것은 마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만 같고, 문제의 원흉을 엄벌에 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에 이끌린 부류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와 이론을 본능에 덧입혀 목소리를 낸다. 금리를 내리면 하이퍼인플레가 오고, 빌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금리를 내려도 소용이 없으며, 구제금융은 도덕적 해이를 낳고, 재정완화는 국가부채 부담을 폭증시킨다는 등의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때로는 그냥 단순히 무식하기 때문에 본인들의 주장을 '구약성경적' 논리로 귀결시킨다.

금융위기와 그 후 이어진 여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무장관의 위치에서 그러한 부류와 맞서 싸운 것이 가이트너였다. 그의 싸움 방식은 버냉키와는 다르다. 버냉키는 조용하고 완고하게 그의 주장을 관철해 나가는 스타일이지만 가이트너는 훨씬 감정적이고 직선적이다. 버냉키, 그리고 가이트너의 공직 선배인 서머스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학문적 내공과 지성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가이트너는 지적 수준의 깊이가 아닌 지적인 솔직함을 무기로 삼는다. 지적으로 솔직하면 지적으로 깊지 않더라도 문제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경제학 박사를 수료하지 않았음에도 왜 전폭적인 통화완화와 재정완화가 필요한지 진심으로 깨닫고 있었고, 위기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에서도 남들보다 나은 정책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토록 솔직한 가이트너라는 인간 그 자체를 정책에 투영시킨 것이 바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은행을 유례없는 정밀조사와 투명성에 노출시킨다.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은행의 민낯을 공개해야 한다고 가이트너는 생각했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은행 부실이 예상보다 심각하면 시장의 패닉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라면 테스트 결과를 근거로 삼아 자본을 확충해버리면 될 뿐이었다. 서머스조차도 스트레스 테스트를 반대했었다. 서머스는 가이트너의 정책을 은행의 자본 공백을 방치하는 일본식 대응으로 간주했고,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부실 대응 방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은행의 사정을 전부 밝혀 불확실성을 먼저 해소하려는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일본식 간과'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다행히도 수천억 달러의 선제적 추가 재원을 필요로 하는 서머스식 해결법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점을 서머스가 인정하면서 그 역시 가이트너의 정책을 지지하게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실제로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 솔직한 가이트너가 그다운 발상으로 금융위기에서 은행 시스템을 구해내는 순간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해 결론을 내리고, 문제를 발견하면 다시 결론을 수정해 나가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가이트너는 그의 공직 생활 내내 일관적으로 수행해냈다. 틀릴지도 모르는 나의 결론을 타인에게 공개하고, 실제로 틀렸을 때 생각과 결론을 수정하는 행위 모두 지적인 솔직함을 필요로 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의 모든 결정은 점점 올바른 방향으로 수렴했다. 어쩌면 가이트너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야말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것은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버냉키와 서머스보다는 가이트너에게 훨씬 큰 매력을 느꼈다. 지적으로 깊지 않다면 지적으로 솔직하면 된다. 아마도, 솔직하다 보면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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