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뮤지컬 베르테르

매우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결코 낮지 않다.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보다 훨씬 비싸고, 대략적인 가격대가 거의 오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제일 안 좋은 좌석 기준으로는 오페라보다 뮤지컬이 두 배는 비싸다. 생목소리를 듣는 오페라는 무대랑 멀어질 수록 소리의 편차가 큰 반면, 음향장비를 활용하는 뮤지컬은 상대적으로 편차가 작아서가 아닐까 싶다. 학생 때는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뮤지컬을 늘 3층에서만 관람했었다. 물론 좋아하는 공연을 배우를 바꿔가며 여러번 관람하기 위해 싼 좌석을 애용한 부분도 있다. 이번에는 1층에서 봤다. 열 번째 열에서 봤는데, 역시 맨 앞열이 아니라면 꼭 1층에서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의 얼굴이 너무 작아서 1층에서도 세세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뮤지컬 배우의 표현력은 노래와 제스쳐만으로 대부분 결정된다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

나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지 않고 이 뮤지컬 '베르테르'를 봤다. 관람 내내 왜 여주인공 로테가 알베르트와 베르테르 사이에서 갈등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극 초반에는 알베르트가 성격이 모나고 로테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한심한 인물로 그려지나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알베르트는 매우 자상하고, 출장 중 꽃씨들을 로테에게 보내는 로맨티스트고, 베르테르와 로테의 '썸'을 이해해 줄 정도로 너그러우며, 직업은 법관이다. 반면 베르테르는 소설에서는 변호사라지만 뮤지컬에서는 공원에서 그림 그리고 펍에서 술에 취하는 낭인에 가까웠고, 로테의 집에서 권총을 들고 난동을 부릴 정도로 무례하다. 베르테르는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것 같지만 그건 알베르트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더 잘생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샤로테가 남편 알베르트를 두고 베르테르와의 썸을 유지하는 이유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아마도 괴테는 이처럼 표면적이고 통념적이고 세속적인 합리성이 없음에도 가능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런 사랑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모순을 이 작품에 투영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알베르트에게 조금이라도 부족하고 모난 점이 있었더라면 로테의 갈등에는 일종의 당위성이 부여된다. 알베르트가 일만 하고 낭만을 모르는 인물이었다면, 로테는 '내가 이러니깐 베르테르에게 끌리지' 라고 말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뻔하디 뻔한 불륜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완벽한 알베르트를 두고도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끌린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역시 크리스틴은 완벽한 라울을 두고도 팬텀에게 끌린다. 로테와 크리스틴은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로테와 크리스틴이 베르테르와 라울에게 끌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두 케릭터 모두 다수의 여성 관람객들로부터 '양다리 걸치는 나쁜 여자'라는 빈축을 산다. 만약 현실에서 로테 또는 크리스틴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베르테르나 팬텀에게 애초부터 매혹되지 않았을 관람객들이다.

꽤 몰입해서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후에 딱히 기억나는 넘버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흐름이 강조된 뮤지컬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드라마틱함을 입힌 넘버가 하나쯤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지. 무려 괴테의 작품을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긴 하다. 엄기준은 티비로 볼 땐 준수하고 수수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미소년 이미지에 키도 엄청 크다. 노래만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캐시 역의 송나영이었고, 로테 역을 맡은 이지혜의 음색은 지킬앤 하이드의 엠마를 해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이미 연기했던 바가 있다. 뮤지컬쪽 주연급 배우 풀도 참 좁은 듯.

댓글 1개:

  1. 학교 과제로 이미지를 사용해도 될까요? 상업적으로 사용하는거 절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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