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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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약속이 시내에서 있어 여의도에서 택시를 탔다. 11시에 대우증권 앞에서 탔는데 차가 마포대교가 아닌 원효대교로 향한다. 네이버 길찾기의 추천경로가 마포대교길래 조금 불안했는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로 숙대입구부터 시청까지 엄청난 정체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박원순 시장에게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는 버려진 철길에 조성된 것이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철길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박원순 시장이 나에게 '나 때문에 약속에 늦게 되어 죄송하다' 라고 사과하면 묵묵히 콜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며 사과를 받지 말고 지나쳐야지, 라는 상상을 하며 분을 삭혔다. 11시 38분에 도착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공원이 조성되면 가지 말아야 하지만, 나를 포함해 고가도로 공원 건설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원이 막상 완성되면 가서 구경하고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재밌게 놀 것이다. 박원순 시장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공원 만들기를 밀어붙였다. 좋은 정치인이 등장해서 민도를 끌어올릴 가능성 보다는, 민도가 먼저 높아진 것의 결과로 좋은 정치인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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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뵙게 된 김상무님과의 점심에서 배우고 생각한 내용들.

- 직장 선택의 기준에는 금전적 보상, 배울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여부가 있을텐데 아무래도 주니어 시절엔 후자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

- 뷰가 틀렸는데 버는 트레이더가 정말 잘하는 트레이더. 생각해 보면 난 틀렸을 때 손실을 최소화하며 나오는 것만 집중했는데, 틀리면 뒤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좋은 진입은 보통 틀려도 잃을만한 폭이 크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행하게 된다. 틀렸을 때 뒤집어서 번다는 것은, 틀린 방향으로 시세가 꽤 분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애초에 진입의 컨셉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 즉, 단순한 가격의 스윙이 로스컷을 건드렸을 때 거꾸로 잡는 것이 아니라, 진입의 컨셉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거꾸로 잡아야 하는 것. 뷰가 뒤엎어지는 경우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이 가격이 오면 뒤집겠다는 것을 사전에 생각해 두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일 듯하다.

- 가장 가깝게 지내는 다섯의 평균을 넘기 힘들다. 그만큼 좋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중요. '글로벌 머니매니저들의 아침회의(Inside the house of money)'에서 봤던 내용이라 하셨는데 집에와서 보니 내 북마크에는 없다. 이 책을 읽은 것이 2008년이었는데, 버냉키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오래간만에 다시 읽어보기로.

- 평상적인 시장에서가 아니라, 큰 기회가 있는 순간에 큰 포지션으로 벌어야 한다. 그런 기회가 있는 순간들을 제외한 시간을 무포로 기다리는게 제일 어렵다. 무포는 (심리적으로)올라도 내려도 깨지는 포지션.

- 이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는데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잘 맞는지는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말씀드렸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다.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리서치하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재밌다. 그런데 트레이딩이 나에게 잘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투자나 트레이딩을 시작한지는 어언 10년이지만, 기관에 속해 각잡고 트레이더로 일해 본 적은 없으니, '잘 맞는다'라는 생각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 나는 투자가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보다는, 투자 말고는 내 인생을 바꿀만한 수단이 없어 보인다는 필요에 의해 투자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선천적으로 투자가 잘 맞는 인간이었다면 10년 동안 수익이 쌓여 애초에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투자를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만에 주식만으로 한 번 계좌의 바닥을 봤고, 파생 거래에서는 2년간 잘 벌어 놓은 수익의 대부분을 전역 직후 6개월간 토해냈다. 그 뒤로 지금까지의 투자와 트레이딩을 통해 과거의 수업료를 복구하고도 남는 수익을 누적시키긴 했지만, 언제든 정신줄을 놓으면 망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늘 두렵다. 앙드레코스톨라니가 진짜 투자자가 되려면 세 번의 파산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두 번 해봤으니 세 번째는 하지 않고 진짜 투자자가 되겠다는 것이 목표다. 써 놓고 보니 역시나 나는 선천적으로 투자가 잘 맞는 유형의 사람은 아닌 듯. 잘 해 보려고 애쓰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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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의 임직원은 내년 1월부터 사전승인 여부와 무관하게 파생상품 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때문에 8년을 동고동락한 개인 파샐 계좌를 지난주에 닫아야만 했다. 기분이 묘하다. 결국 그 계좌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댓글 1개:

  1. 여기저기 떠돌다 우연히 들렀습니다.
    어떤 분께서
    (저에겐 분에 넘치는)큰 돈을 맡기셔서,
    주식으로 굴린지 3년이 거의 다 되가네요.

    손해를 본 적은 없지만,
    성장하지 않는 다는 느낌도 들고
    또 올해들어 처음으로 손해도 봤는데,

    주인장 님 글 보고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보렵니다.

    생각날 때 가끔씩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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