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5일 월요일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생각

근 2주 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일본이었다. 아베의 참의원 선거 승리와 버냉키의 방일을 헬리콥터 머니의 전조로 받아들인 일본 금융시장의 반응은 상당했다. 15,000선을 위협받던 닛케이는 10%에 가까운 상승폭을 시현했고, 일시적으로 100엔을 하회했던 엔화도 brexit 충격 직전의 레벨을 회복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risk-on은 사상 최저점을 향해 달리던 미국채 금리까지도 멈춰 세웠다. 일본의 헬리콥터 머니 논의가 글로벌 재정지출 확대 기대감으로 연결된 것이다. 일본이 brexit의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되던 것이 불과 몇 일 전인데, 시장은 그런 조롱들을 가볍게 뒤집어 버렸다.

일본의 헬리콥터 머니, 혹은 공격적인 재정확장 정책에 대한 전망이 지난 주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눈치 빠른 분석가들은 연초 일본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며 통화정책적 한계를 보였을 때 일찍이 재정으로의 정책 선회 가능성을 제시했고, 3월 크루그먼의 일본 방문 녹취록 공개 이후에도 일본의 재정 확장을 전망하는 몇몇 보고서들이 발간되었다. 김대표님이 블로그에 재정 스토리가 기대된다는 코멘트를 쓰신 것도, 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재밌는 아이디어로 보인다며 일본의 헬리콥터 머니와 perpetual bond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던 것도 이 때 쯤이다. 당시엔 정말 재밌는 아이디어 정도로 생각했는데, 중국 문제로 시작해 brexit까지 상반기 내내 글로벌 이슈가 엔화 강세를 야기해 아베노믹스를 괴롭히자 그 아이디어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행 중인 정책들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하자 시장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다음 스토리로 옮겨간 것이다. 일본이니깐 가능한 전개였다.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의 극단에서 탄생했듯이, 이번엔 통화정책의 극단에서 재정정책이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재정정책, 혹은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기대와 의구심이 뒤섞이고 있는데 지인들과의 대화나 리폿에서 언급됐던 내용에 내 생각을 섞어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1. 헬리콥터 머니가 무엇인가?

도이치 리서치에 의하면 헬리콥터 머니의 형태는 대략 네 가지로 분류 가능하다.

1) 지금처럼 QE를 시행하는 동시에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법. 중앙은행의 QE가 금리를 낮춰 정부의 조달 비용을 경감시켜 주지만, 정부의 debt/GDP ratio는 증가하게 된다.

2) 중앙은행이 직접 정부에게 돈을 쥐어주는 방법. 정부의 perpetual bond를 중앙은행이 사면 이 형태가 된다. 정부는 debt/GDP ratio의 증가 없이 재정지출을 할 수 있고, 중앙은행은 새로 유입되는 reserve에 지불하는 이자만큼의 손실을 부담한다.

3) 중앙은행이 기존에 보유 중인 국채를 haircut하는 방법. 네거티브 금리의 국채를 QE로 매입하는 것도 일종의 haircut에 해당되나, 그것보다 훨신 더 큰 폭으로 정부부채를 중앙은행이 탕감해 주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debt/GDP ratio가 줄어 재정 여력을 확보하게 되고, 중앙은행은 탕감 분 만큼 equity에서 손실을 계상.

4)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직접 가계에 전달하는 방법. 추가되는 reserve만큼을 역시 negative equity로 계상.

분류는 넷이지만 1은 사실 지금 화제가 되는 헬리콥터 머니가 아닌 통화+재정의 policy mix에 가깝고, 실제로 헬리콥터 머니로 지칭되고 있는 방안들은 2~4라고 볼 수 있다. 정확하게 위의 사례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재무부 특별계정 설치, 또는 QE로 매입한 국채를 영구 보유하겠다고 선언하는 방안 등도 시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


2. 헬리콥터 머니가 시행된 적이 있는가?

헬리콥터 머니는 과거에 일본에서 시행된 적이 있다. 아베노믹스의 롤모델로 여겨지는 다카하시 고레키요의 정책이 그것인데, 다카하시는 쇼와 공황, 대공황, 관동 대지진 등으로 인한 불황에서 일본을 탈출시키기 위해 1930년대 초반 엔의 절하, 금리 인하, BOJ의 국채 직매입을 통한 재정지출(헬리콥터 머니)이라는 정책 패키지를 내 놓는다. 이러한 다카하시의 전격적인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1933년 일본의 실질GNP 상승률은 10%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타 G5 국가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로 불황에서 벗어난다.

일본 외에 캐나다의 사례도 존재한다. 캐나다 역시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1935년부터 정부채 직매입과 chartered bank을 통한 정부 대출 지원 등 직간접적인 헬리콥터 머니를 시행한다. 이에 그 전 5년간 무려 70%의 GNP하락을 경험한 캐나다 경제는 1935년부터 5년간 77%의 GNP 반등을 시현.



3. 헬리콥터 머니는 위험한가?

헬리콥터 머니 회의론자들은 다카하시가 암살당해 정책이 exit에 실패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반대의 근거로 삼는다. 실제로 다카하시는 군비 지출을 축소시키려는 과정에서 1936년 암살당하고, 길을 잃은 정책은 일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남긴다. 게다가 다카하시의 재정 확대가 군부의 영향력을 키워 40년대 중반까지 발발한 전쟁들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이 헬리콥터 머니 회의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카하시의 사례를 헬리콥터 머니의 반대 근거로 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다카하시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헬리콥터 머니를 사용함에 있어서 신중함과 뚜렷한 exit plan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헬리콥터 머니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헬리콥터 머니가 다카하시를 암살시켰다기 보다는, 다카하시 시절 강력한 군부가 존재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캐나다의 경우는 헬리콥터 머니를 시행하고 exit하기까지 일본과 같은 과격한 군부의 출현은 없었고, 헬리콥터 머니 때문에 은행 시스템이 파국을 맞은 적도 없었다. 7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글로벌 인플레 상승 사이클 대응을 위해 캐나다 중앙은행은 정부채 보유를 축소시키면서 동시에 금리 인상까지 수행해 낸다. 헬리콥터 머니가 필연적으로 하이퍼인플레와 전쟁을 낳는다는 주장을 깨뜨리는 사례인 셈이다.



그 외에 BIS를 위시한 일부 기관들이 지적하는 technical한 한계(헬리콥터 머니를 한 번 사용하면 영원히 제로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등)들은, 양적완화 시행 초기에 지적되던 exit 불가능론과 비슷한 맥락인데 실제로는 별 유효성이 없는 내용들이다. 쉽게 말해 나중에 경기가 회복되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초과지준 금리도 올려야 하니 중앙은행이 지불하는 비용이 폭증하고, 보유 중인 국채에서도 평가손실이 발생하여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가 망가지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비용을 증가 시키는 tax financing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주장. 하지만 1) 역레포처럼 초과지준 금리 외에도 자산을 매각하지 않으면서 유동성을 조절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고 (연준은 둘 다 활용한다), 2) 백 번 양보해 헬리콥터 머니가 tax financing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금리를 올려야 할 정도로 경기가 회복되면 정부 세입이 증가해 그 정도의 비용은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헬리콥터 머니는 정치적 불안과 맞물릴 때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헬리콥터 머니 자체가 필연적으로 경제적 파멸을 불러 일으키킨다는 주장에는 오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효과가 확실한 약이 남용으로 인해 부작용을 일으켰던 사례가 있다면 규제해야 할 것은 '남용'이지 '약'이 아니다.


4. 제도적으로 헬리콥터 머니 시행이 가능한가?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는데, 대략 '원칙적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예외적인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는 가능한' 상황.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역시 예외적인 경우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 BOJ의 국채 직매입이 가능하도록 재정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직매입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앞서 언급했던 다른 방법들을 통해 헬리콥터 머니를 시행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perpetual bond를 발행해 시장에서 매입하거나, 정부채를 haircut하거나, 매입 국채의 영구 보유를 선언하는 방법 등은 직매입에 비해 제도적으로 자유로운 편. 결국 강력한 리더쉽 하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조한다면 제도적인 장벽은 얼마든지 회피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 어떤 나라가 헬리콥터 머니를 쓰게 될까?

역시 일본이 쓰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미국은 최소 대선은 끝나야 하고, 유럽은 구조적으로 재정정책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국은 통화정책 없이 재정정책만 쏟아 내다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제는 통화정책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해서 위기를 심화시키는 중. 한국은 통화정책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위기가 발발하지 않는 이상 재정을 의미있는 규모로 쓸 수 있는 정서를 가진 나라도 아니다. 장악력이 높은 리더가 있고, 통화정책을 끝까지 몰아 붙여 이제는 재정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이 첫 타석에 오를 것.


6. 헬리콥터 머니가 아닌 일반적인 재정 확대는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재정확대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리카르도의 불변정리(정부채 확대를 통한 재정 지출은 미래 세금 인상을 우려한 민간의 긴축으로 연결된다는)를 즐겨 활용하지만, 재정 지출의 역사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고려하면 리카르도의 이론을 현실의 경기 분석과 전망에 접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과도한 재정 지출이 경기 과열과 하이퍼 인플레를 초래한 적은 있어도, 완화적 통화정책과 더불어 의미있는 규모의 재정을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개선이 관찰되지 않았던 적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물론 헬리콥터 머니를 활용하게 된다면 보다 큰 임팩트를 줄 수는 있는 것은 사실이나, 완화적 통화정책에 재정 확대를 조합하는 일반적인 policy mix만 시행하더라도 부양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헬리콥터 머니가 필연적으로 경제적 파국을 야기한다는 주장은 과장되었다. 다른 거시정책과 마찬가지로 잘 활용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2) 헬리콥터 머니의 제도적, 법적 장벽은 존재하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시행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3) 헬리콥터 머니의 형태가 아닌 일반적인 policy mix라도 경기 부양은 충분히 가능하다.

4) 헬리콥터 머니든, policy mix든 근시일 내 의미있는 규모의 재정확장이 가능한 나라는 일본 뿐.

아무래도 재정에 관련된 사안이다 보니 당장 이번 BOJ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본 쪽 스토리는 계속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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