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장기 보수 시대 & 정의란 무엇인가? & 중국어

1.
신기주 기자님의 신간이 나왔다. 전작인 '사라진 실패'처럼 매력적인 문장들로 가득 차 있어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인들에게 '사라진 실패'를 빌려줬을 때 반응이 좋았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다만 눈에 띄는 표지 색상과 제목 때문에 지하철에서 읽을 때 조금 눈치 보이기는 했다. 분명 누군가는 나를 보며 내 백팩 안에 촛불이 있고, 이어폰에서는 나꼼수가 흘러나올 것이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백팩엔 노트북과 운동 후 갈아입을 속옷이 있고, 이어폰에서는 비긴어게인 OST들이 재생된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 가지 컨셉을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Top-down적인 접근이다. 미국 경기가 좋으니깐 주식을 사자고 첫 챕터에 주장하고, 두번째 챕터부터는 섹터별로 왜 좋은지 나열한다. 첫 챕터의 로직만 이해하면 그 다음은 읽지 않아도 무방한 책들이다. 한편 '장기 보수 시대' 같은 책들은 현상의 파편들을 통찰로 꿰어내 결론에 도달한다. Bottom-up적인 접근이다. 현재의 주택 재고 수준과 Single family home sales의 증가세로 미루어 볼 때 미국 부동산이 좋을 수 있다, 는 등의 디테일들을 수 없이 조합해 결국 미국 경기는 좋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책에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현실에서는 두 접근 모두 의미가 있지만 책으로서의 가치는 후자가 압도적이다.

단점은 읽고 난 후 개인적으로 정리해두기 어렵다는 것. 내 언어로 정리를 하고 나면 책보다 긴 분량이 될 게 뻔하다. 그냥 다시 읽는게 낫다.


2.
유경PSG운용의 강대권 CIO님은 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블로깅을 하셨다. '어쩔 수 없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마지막 문단의 글귀는 울림이 크다.

물론 유경PSG가 소송에서 삼성공조를 이겨도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삼성공조가 백기를 들며 배당을 확대하고, 위기감을 느낀 타 회사들까지 주주들에게 돈을 푸는 아름다운 모습이 목격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도 유경PSG는 바뀔 수 있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유경PSG는 궁극적으로 더 좋은 회사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바뀌는 것은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이다.


3.
중국어 회화를 1:1로 과외 받는 비용이 한 달에 20만원이라는 사실을 오늘 점심시간에 처음 알았다. 최소 40만원은 드는 영어회화 과외에 비해 대단히 싼 가격인데, 역시 나는 당분간 중국어를 배우지 않을 듯 하다. 배움에 지불하는 가격은 그것의 가치와 일치하는 경향이 대단히 뚜렷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영어가 fluent하지 않은데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대체로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참고로 앙드레 코스톨라니에 따르면, 투자를 배우기 위해서는 세 번의 파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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