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4일 목요일

1998년 소로스의 홍콩 공격을 막아낸 것은 홍콩통화청이 아니다

연초부터 금융시장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키워드는 단연 중국이다. 상해지수는 이제 하락하는 것이 당연한 지수가 되어버려서 2~3% 수준의 하락은 장 중에 이슈가 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위안화의 흐름은 여전히 위태롭기만하다. 오늘도 점심 먹고 돌아오니 다른 아시아 통화와 유로, 엔 등은 잠잠한데 달러원 환율만 급등하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아 찾아봤더니 역시나 CNH의 약세가 원인이었다. 그만큼 KRW를 CNH의 proxy로 삼아 short하는게 유행이란 뜻이다.

이러한 중국발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소로스를 위시한 유명 헤지펀드들의 위안화 short 포지션이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이슈로 다루는 기사들의 90%이상, 그리고 국내 증권사 보고서들의 100%는 헤지펀드들의 위안화 short 포지션 성공 가능성을 일축한다. 중국의 외환 보유고가 막대하므로 충분히 통화가치를 방어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논거다. 특히나 소로스의 1998년 홍콩 공격 실패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위안화가 제 2의 파운드화가 될리는 없다는 식의 주장이 지배적이다.

1998년 소로스의 홍콩 공격 실패 일화는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에도 등장한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당시 홍콩에서는 홍콩 주식을 공매도하고 받은 홍콩달러를 다시 미국 달러로 바꾸는 헤지펀드들의 거래가 유행했었다. 홍콩달러가 절하되면 홍콩달러 short에서 돈을 벌고, 만약 홍콩 통화당국이 금리를 올려 통화를 방어하면 주가가 망가질테니 홍콩 주식 short에서 돈을 버는 구조. 그러나 홍콩 당국은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규모의 달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자금으로 홍콩 주식을 사들여서 공매도 세력에 맞서 싸워 이겼다. 홍콩 주식 공매도 포지션에서 손실이 커지기 시작한 헤지펀드들은 결국 포지션을 언와인딩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불황의 경제학, 161p~. 폴 크루그먼)

얼핏 보면 '소로스는 이번에도 중국 당국의 자금력에 패할 것이다' 는 주장에 설득이 될만한 사례이고, 악랄한 투기자본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정의로워 보이기까지 하니 인기도 제법 있을만한 설명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도 버튼을 삭제하고 자금을 투입하는 중국당국의 조치에도 급락을 이어가는 상해지수를 보면서, 그리고 98년의 경제정황과 통화정책을 떠올리면서 강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정말로 홍콩통화청의 엄청난 자금력이 1998년 소로스의 홍콩 공격을 막아냈던 것일까?


먼저, 당시의 홍콩 1Y IRS, 홍콩달러 1Y forward rate, 항셍지수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source : bloomberg)

첨부된 그림을 보면 아시아 외환 위기로 인해 이미 97년부터 홍콩 IRS와  HKD forward rate, 항셍지수 모두 망가져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IRS는 10%를 넘나들었으며 HKD 1Y forward rate은 스팟픽싱인 7.75에서 에서 한참 벗어난 8위에서 거래되고 있었고 항셍지수도도 고점대비 거의 반토막이 나 있었다.

헤지펀드의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은 대략 98년 여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음영 부분). 공격 초기에 헤지펀드들의 주식 short, HKD short 포지션은 매우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98년 8월 첫 2주 동안 항셍지수는 7936.2에서 최저 6660.42까지 -16%의 하락률을 기록했고, HKD 1Y forward rate은 8.1에서 8.4근처까지 절하되었다.

그러나 98년 8월에 저점을 찍고 횡보하던 항셍지수는 10월들어 본격적 반등을 시작하고, 결국 10월의 최종 거래일에는 1만 포인트를 회복해서 마감한다. 8월 저점 대비로는 대략 25%의 상승폭. 이로인해 헤지펀드들의 포지션은 언와인딩되고 HK IRS와 HKD forward rate도 급격하게 안정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당시 항셍지수를 25% 상승시킨 것이 정말로 홍콩통화청의 자금력이 맞냐는 부분인데, 98년 9월이라는 시기의 글로벌 주식시장 환경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홍콩통화청의 능력이었다는 주장에는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당시가 바로 IT버블에 따른 글로벌 주가 급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98년 8~10월의 글로벌 주가의 상승률을 나열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나스닥은 8월 저점인 1500포인트에서 10월말 1770까지 약 18%, S&P500은 8월 저점인 960에서 10월말 1100까지 약 15% 상승했다. 호주는 2500에서 2650까지 6%, 필리핀은 1100에서 1770까지 60%, 태국은 200에서 330까지 65%. 한국은? 300에서 400까지 약 30% 상승. 그 외 지역을 봐도 글로벌리 주가가 강세를 보이지 않았던 곳은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글로벌 증시 상승 국면에서 홍콩 증시의 상승만 홍콩통화청의 매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source : bloomberg)

게다가 당시의 홍콩의 외환보유고 감소액을 보면 과연 홍콩이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부었던 것이 사실인지 자체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98년 8월 홍콩의 외환보유고 감소는 44억불, 9월은  37억불로 합쳐봐야 80억불 수준이다. 당시 홍콩의 총 외환보유액이 900억불이라는 점에서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당시 헤지펀드들의 포지션만 약 300억불이라는 보도 등에 미루어 볼 때 주가를 25% 상승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IMF에 의하면 98년 홍콩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25억 불. 연간 경상수지 흑자 금액 전량을 8~9월에 추가로 투입했다고 가정해도 총 부양금액은 여전히 낮다. 결론적으로 98년 소로스의 포지션을 궁지로 몰아 넣었던 홍콩 증시의 상승은 홍콩통화청의 개입이 아닌 IT버블에 따른 글로벌 주식시장 상승세에 기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IT버블 외에 98년 여름 이후 홍콩의 금리와 통화를 안정시켰던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98년 10월에 단행된 연준의 금리 인하다.

(source : bloomberg)

미국 역시 98년 당시 경기 상황이 부정적였고, LTCM사태에 따른 영향력도 상당했었다. 이에 연준은 98년 9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5.5%에서 5.25%로 인하하고, 긴급 조치를 위해 정례 FOMC가 아니더라도 기준금리를 25bp 추가로 인하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린스펀 의장에게 부여하는데, 그린스펀은 그 권한을 10월 15일에 바로 사용하여 기준금리를 25bp 추가 인하한다. 그리고 연준은 11월 FOMC에서도 추가 인하를 단행하여 기준금리는 4.75%를 기록하게 된다.

이러한 연준의 인하에 100포인트에 육박하던 달러인덱스는 90초반으로 주저앉는다. 미국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홍콩입장에서는 홍콩달러 약세 압력이 완화되고, 이에 당국의 자금시장 개입 필요성이 줄어들어 단기금리도 안정을 찾게 된다. 결국 홍콩이 페그제 유지와 경기부양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해 있을 때,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인해 홍콩 역시 자동으로 통화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

정리해보면, 98년의 홍콩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홍콩통화청의 98년 위기 대응능력은 과장되었다. 항셍지수는 IT버블에 편승해 급반등 했을 뿐이고, 홍콩의 외환시장과 이자율시장을 구출해 낸 것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였다. 소로스는 홍콩 당국에게 패했다기 보다는 연준에게 패했다.

2) 현재 중국 당국의 위안화 약세 대응 능력 역시 과장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지금의 중국은 소로스가 98년 홍콩을 공격했던 스킴에 정확히 부합한다. 중국은 선택해야 한다.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든지, 위안화 약세를 방어하려 위안화 유동성을 긴축키고 금리 상승을 야기해 경기를 더 망가뜨리든지.

3) 이번에도 소로스의 위안화 short 포지션의 가장 큰 리스크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될 것이다. 다만, 연준이 동결 기조를 이어갈 수는 있어도 재인하 결단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듯. 게다가 98년의 기준금리는 5%대였던 반면 지금은 다시 내릴 여력이 25bp밖에 없다. 여기서 완화로 가려면 마이너스 금리를 택하거나 QE를 재개해야 한다. 연준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닐 것.


결국 연준이 재인하로 돌아서는 것과 중국이 더 크게 망가지는 것 중 무엇이 빠를지가 문제. 그러나 중국 붕괴의 여파로 미국 경기가 추가로 훼손되지 않는 이상 연준이 재인하로 돌아설 유인을 먼저 갖게 될 수 있을까? 중국이 먼저 망가지게 되고 그 여파로 미국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면, 연준의 기준금리를 재인하하면서 양국의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그림이 아직까지는 가장 유력해 보인다. 어떤 시나리오로 가든 위안화 short, 그리고 위안화 short을 배경으로 하는 원화 short의 청산 포인트는 연준의 정책 선회 시점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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