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일 화요일

Questions that I have been asked (6) - 통화정책을 하지 말고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부 칼럼니스트들의 글에서 종종 발견되는 논리다. 금리를 사상 최저까지 낮췄으니 이만하면 됐고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을 하자는 것인데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히 허술한 주장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은행 총재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상호 보완 및 상충 효과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금리를 낮춰 민간수요를 간접적으로 자극해도 좀처럼 수요가 창출되지 않을 때, 재정지출을 확대시켜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정책은 보완적이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중립적으로 운용하며 재정 확장에만 집중하면 국채 발행량 증가로 금리는 상승하고 민간 투자는 구축된다는 점에서는 상충적이기도 하다. 때문에 통화완화가 없는 재정정책이란 사실상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한국의 통화정책은 완화적일까? 통화정책이 완화적인지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1) 주변국과의 실질기준금리를 비교하는 방법, 2) 중립명목금리를 추산해 명목기준금리와 비교하는 방법, 2) 그냥 단순하게 민간신용의 증가세를 확인하는 방법, 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주변국과의 실질기준금리 측면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은 완화적이지 않다. 일전에 포스팅에서도 인용했던 노무라의 차트를 보면, 한국의 통화정책은 여타 무역대상국과 비교했을 때 긴축적인 편에 속한다.


중립금리 면에서도 한국의 통화정책은 중립적이거나 혹은 긴축적이다. 역시나 노무라의 추정치를 인용. 중립금리 산출에는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지만, 한국의 명목중립금리는 지금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봤자 명목기준금리 근처의 값이 산출된다.



마지막으로 민간신용의 증가세를 살펴보자. 가계 신용에서 주담대를 제외한 신용의 전년비 증가율과 제조업 대출의 전년비 증가율을 비교해 그려보았다.

(출처 : 한국은행)

위 차트의 주담대 외 가계대출의 증가세 추이를 보면, 네 번의 금리 인하로 소비가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한국은행의 입장이 일정 부분 이해는 간다. 14'년 1분기 이후 꺾일뻔 했던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금번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된 2분기부터 다시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조업의 신용 증가세다. 한국의 제조업 경기 둔화가 시작된 2012년부터 지금까지 기업의 신용은 수 차례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별로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1) 기업이 신용을 확대시킬만큼 충분히 금리가 낮지 않거나, 2)기업이 이미 부채 부담이 커서 더 이상 신용을 확대시킬 여력이 없다는 뜻인데, 두 경우 모두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를 필요로 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 즉, 기업입장에서는 현재의 통화정책이 완화적이지 않다. 이렇게 방치한 기업경기 침체가 가계의 소득 감소로 연결되면 가계 신용 증가세도 조만간 꺾여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현재 한국의 통화정책은 백번 양보해봤자 중립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는 동결하고 재정확대에 나서봤자 민간투자는 구축되고 재정 여력만 갉아먹게 된다(물론 한국의 재정정책이란 것이 그렇게 화끈하지도 않겠지만). 심지어 전세값 상승이 우려되니 금리는 올리고 재정정책만 사용하자는 칼럼도 있었는데 그것은 지구에 존재할 수 없는 정책 조합이다. 재정정책 중시론자인 래리 서머스조차 통화를 긴축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끝으로 통화정책 없이 구조개혁을 하자는 논리는 별로 길게 설명할만한 가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경제의 구조개혁이란 상당한 시간과 성장통을 수반하며, 그것은 절대 경기 부진 국면에서 이뤄낼 수 없다. 지난 3월에 쓴 글이 이와 관련된 글이었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구조개혁을 하자는 말은, 의사가 메르스에 걸린 환자를 놓고 '이 환자는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 개선으로 면역력을 증강시켜야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구조개혁은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 후에야 다룰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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