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미국 대선 후기

트럼프가 이겼다. FBI의 무혐의 발표로 시장의 기대는 힐러리 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이벤트는 많은 분들의 코멘트처럼 브렉시트 때의 콕스 위원의 죽음과 같은 역할을 했다. 초반에는 FL의 개표 결과에 따라 시장이 출렁거렸는데, FL에서의 패색이 짙어지고 NC등에서 열세가 관찰되면서 risk-off쪽 베팅이 우위를 점했다. 점심시간에 WI, MI 가 꺾이면서 분위기는 한층 더 강화.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이 거의 확실해진 오후 2시쯤부터는 오히려 빠르고 깊은 unwinding 흐름이 전개되었다. 글을 쓰는 6시 20분 현재 -5%를 찍었던 S&P선물은 -1.8%까지 낙폭을 축소하고 있고, 대략 10bp까지 하락했던 미국 금리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중.

트럼프의 당선을 정치, 문화적으로 통찰할만한 내공은 아직 나에게 없다. 다만 사람들이 바보는 싫어해도 악당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김대표님의 코멘트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오늘 wclee형이 리트윗한 'White women are more afraid of losing their White privilege than their right to being a woman.' 라는 문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포지션 때문이 아니라 저런 막말을 하는 인간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에 황망함을 느껴 한탄하는 분들이 많았던 하루. 일단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오늘의 생각들을 정리.

1) FBI 무혐의 발표가 힐러리 기대감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가 콕스 위원의 죽음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전에 risk-off 포지션을 제안하진 않았다. 바꿔말해 만약 힐러리가 당선되다면 시장이 risk-on으로 갈 여력이 충분히 더 있다고 생각했다.

2) 나는 지난주에 트럼프 우려에 기댄 포지션을 대선 직전까지만 캐리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봤지만 월요일 오전 FBI의 무혐의 발표로 뷰를 철회했고, chlee와 주말에 이야기했던 미국채 스팁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단기금리가 12월 인상을 꽤 반영하고 있기에 만약 힐러리가 된다면 장기물 금리가 더 상승할 것이고, 트럼프가 되면 12월 인상 가능성이 옅어지며 단기물 금리의 하락폭이 최소 장기물만큼은 될 것 같아서. 월요일 현물 시초가 기준으로 미국채 2-10년 spread는 98bp였고 지금은 104bp. 하지만 한국 3-10년 spread는 연동되지 못하고 도리어 소폭 플랫.

3) 금요일에 트럼프 우려가 과하다며 미리 risk-on을 추천했다가, 어제 절반 청산 의견을 냈던 wclee형의 전략이 가장 잘 맞아 떨어졌다.

4) 이제 세상이 무너졌으니 안전자산으로 도망가자는 생각과, 어찌됐건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되었으니 다시 리플레이션 컨셉을 보자는 생각 중 어느 것이 더 강할까. 난 후자가 더 강하다고 생각. 게다가 트럼프 당선이라는 이벤트는 오히려 후자를 강화시킬 수 있는 요인.

5) 위 4)에 동의한다면, 미국채 스티프너는 미리 청산할 필요가 없을 듯. 그치만 연준 멤버 중 누군가가 '트럼프가 되었지만 우리는 12월 인상이 적합하다고 본다' 고 발언할 리스크는 있어서, 목요일(불라드)와 금요일(피셔) 발언 전에는 청산하거나 발언에 따른 시장 반응을 잘 관찰해야 할 듯.

6) 1시 반쯤에 개인 주식을 더 샀다.

7) 트럼프는 당선을 위해 말을 이리저리 바꿔왔고 그것이 대선토론회에서 걸림돌이 되었었다. 아마 국정운영을 함에 있어서도 말을 주워담느라 꽤 고생을 해야하지 않을까. 정책은 내 것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므로 비판을 받았을 때 토론회에서처럼 네거티브 대응을 하긴 어렵다. 이상한 말이라도 인기를 끌기 위해 일단 내뱉은 다음, 승리한 뒤에 말을 바꾸는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내용의 크루그만 칼럼을 예전에 읽었던 듯한데 다시 찾아봐야겠다.

8) 한국은 클리어한 커브전략이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대외 요인으로는 스팁인데 국내 상황만 봐서는 언제 다시 플랫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 일단은 대외 요인 따라 스팁을 지속하다가 일정 레벨에서 플랫 전환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내년도 커브 전망에 가까운 아주 롱텀한 이야기.

9) 장 중에 미국 주식을 매수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미 절반 이상 회복해서 애매한 레벨이 되었다.

10) 한은이 트럼프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인하할만한 중앙은행이었다면 진작에 인하했을 것. 한은은 신중한 스탠스를 유지할텐데, 그래도 '혹시 인하하는거 아닌가' 싶은 심리가 조금이라도 되살아난 것은 의미가 있다.

11) 돈 벌 찬스가 한 번 줄어들더라도 이런 일은 다시 안 일어났으면 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각종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 싸우는 불특정다수에게 '세상은 원래 이렇다'는 말과 같은 무기력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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