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휴가를 내고 사흘동안 오사카에 다녀왔다. 긴 휴가를 내기가 애매해지다보니 가까운 일본을 자주 찾게 된다. 일상을 쿨다운시킬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갑자기 쓴 휴가였는데 마침 시간이 맞는 친구가 있어 동행. 공교롭게도 부엉이님이 비슷한 기간에 오사카로 휴가를 오셨지만 서로 일정이 엇갈려 합류하지는 못했다. 스터디 멤버로 일본을 가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상상은 했다. 체감되는 물가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나 같은 값을 주고 누릴 수 있는 퀄리티가 두 배는 되는 것 같다는 점을 이번에도 절감. 짧은 휴가였지만 오픈되어 있는 포지션이나 콜이 없다보니 체력과 멘탈을 많이 refresh 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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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김대표님이 주최하신 영주닐슨 교수님 강연을 듣고 왔다. 예상보다 실무적이고 자세한 내용이 많아 흥미도가 아주 높았던 자리. 가격의 스윙을 견디기 위해서는 죽인 말을 또 패는 정도의 리서치가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참 인상깊었다. 리서치는 과도하고 압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었는데(난 아직 그렇게까진 못 하지만), 그보다는 죽인 말을 또 팬다는 표현이 훨씬 와닿는 듯.
예전에 퀀트를 담당하시는 분이 회사에 처음 조인하셨을 때 점심을 하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보유 중이신 모델은 크게 둘로 분류 가능하고, 대개 하나의 모델이 언더퍼폼할 때 나머지 하나가 아웃퍼폼해 완충 역할을 한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그렇다면 어떤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 국면인지 판단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양 모델을 오가며 계속 아웃퍼폼할 수 있지 않냐고 여쭤봤더니, 모델의 선택은 액티브 매니져의 몫이라는 답변을 해 주셨었다. 어제 강연을 듣고 내가 이해한 퀀트 트레이딩 스킴은, 죽인 말을 또 패는 처절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뚜렷한 컨셉을 지닌 모델을 만들고, 그런 모델을 여러개 개발해 같이 가동시키면 국면마다 각 모델의 퍼포먼스가 차이는 나지만 결과적으로 총 포트폴리오는 알파를 얻게 된다는 것. 일하는 입장에서 들었던 생각들을 나열해보면,
1) 하나의 컨셉, 혹은 스타일만을 고수하는 투자자 혹은 트레이더는 기계에게 대체되기 딱 좋다.
2) 기계를 이기려면 시장 국면 파악에 능하면서, 그 국면에서 유리한 전략적 아이디어를 계속 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럴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일단 기계는 다룰 줄 아는 것이 좋다.
3) 역시 액티브 매니저나 재량적 트레이더가 멸종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치만 생존하기에 더 팍팍한 환경이 된 것은 맞다. 예전엔 BM을 언더퍼폼하는 매니저가 퇴출의 대상이었다면, 이젠 BM을 안정적으로 아웃퍼폼하는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매니저가 퇴출의 대상이 될 듯. 허들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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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연에서 한 가지 더 인상깊었던 부분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면서의 장점은 하우스 내에서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배울 기회가 많았고, 일을 배우는 시스템도 체계적이었으며, 아이디어의 공유가 활발해 주변에서 훌륭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던 대목이었다. 마침 최근들어 뭔가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는 하소연을 이곳저곳에서 듣고 있던 상황이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배울 사람이 많고 시스템이 체계적인 곳에서 일을 시작하기란 실제로 매우 어렵다. 애초에 그런 하우스나 팀의 수 자체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정도로 좋은 조직이라면 또 아무나 조인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일을 제대로 배우기도 힘들고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못한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무리 실망스러운 조직이라도 개인이 선택하는 네트워킹까지 강제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 배우고 따라할 사람이 주변에 정말로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런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 된다. 그리고 체크해야 할 것들이 매일처럼 쏟아지는 금융시장의 특성상,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이 없더라도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모르는 것을 줄여 나가면 공부가 된다. 일전에도 포스팅했었지만 그렇게 역량을 쌓아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것 외에는 더 나은 환경이나 조건에 다가가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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