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그의 자유란 일탈에 가까웠지만 미국에서는 그의 삶 전체가 자유를 향해 이탈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올리버 색스는 마음껏 사랑하고, 근육이 파열될 지경까지 운동하며, 심신은 마약에 중독되면서, 모터사이클로는 끝 모를 사막을 질주한다. 그는 서부 생활이 강렬한 떨림과 설렘을 줬으며, 서부에서 스스로를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고 썼다. 그러나 자유로움의 극한을 서부에 남겨둔 채 그는 뉴욕으로 향한다. 고생스럽더라도 일에 스스로를 바칠 수 있고, 진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부의 자유를 즐기기는 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너저분한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말초적 자유의 끝에는 공허함만 있다는 것을 올리버 색스는 서부 생활을 통해 온몸으로 확인했다.
뉴욕에서 그는 마약 대신 임상에 빠질 수 있었다. 만족스럽고 창조적이면서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는 한 마약에서 만족을 구하게 될 것으로 그는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환자를 보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환자를 돌보는 일과 그의 글쓰기 능력이 조합되어 첫 작품인 '편두통' 이 탄생한다. 책 출간에 반대하는 편두통 클리닉 원장 프리드먼이 해고하겠다며 협박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직장보다 책을 택한다. 서부 생활에서 발산해 흩어지던 자유본능을 응축시켜 쏟아낸 것이 그 책이었다. 포기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편두통'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성공한다. 올리버 색스는 그 뒤로 평생 다양한 환자를 돌보고 연구하며 쉴새 없이 글쓰는 삶을 산다. 모터사이클과 마약으로는 성취하지 못했던 자유와 만족을 일과 글쓰기가 가져다 준 것이다.
1950년대의 영국에 비하면 지금은 자유로운 세상이지만, 의식과 사상의 자유가 일상의 갑갑함을 해소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탈과 이탈에서 자유를 찾는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자유고 회사를 쉬는 것이 자유다. 일상을 잠시 내려놓기 시작하는 금요일은 그래서 불금이 된다. 언젠가 공부나 일에서 완전히 이탈하기 위해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적 자유만 확보한 뒤 일상에서 완전히 떠나 올리버 색스의 서부 생활과 비슷한 맥락의 삶을 살 것을 꿈꾸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의 함수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일탈과 이탈을 통해서는 행복할 수 없으리라 단정하는 것은 넌센스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에서 인생의 낙을 찾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헬조선을 탈출해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자연을 벗삼는 삶이 곧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일상과 일탈을 반복하는 삶, 또는 일상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삶을 통해 완벽한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온전한 자유는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허물고 분산된 삶의 방향성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추구 가능하다. 때문에 더 자유로운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면 자유본능을 무한하게 펼칠 수 있는 일을 찾아 몰입해야 행복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처럼 엄청난 열정과 활력을 쏟아 일탈하고 이탈했던 사람조차, 일탈과 이탈로 자유에 대한 허기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좋은 날씨를 핑계로 책을 잡았다가 일과 삶 전반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하나로 꿰어 맞춰졌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올리버 색스와 비슷한 지향점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너무 멀리 가지는 않되, 멀리 갈 수 있는 길이 전부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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