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으로 추석연휴 직전에 휴가를 썼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의가 타의보다 컸다. 미국이나 일본 주식 long view를 강하게 가져가기 위해 근 6개월 이상 칼을 갈며 기다리던 시점이 9월이었는데, 경제정황과 가격이 뜻 밖의 길로 엇나가 버렸다. 지난 7월 23일 포스팅에서 '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금리 인상을 내년 초 정도로 재연기하면서 경기판단을 애매하게 만드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썼는데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스스로 염두에 두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재미는 못봤어도 다치지는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이 새고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드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다'와 같은 문장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년에 홍콩과 뉴욕 등을 둘러본 것도 그 도시들의 분위기가 궁금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지 견문을 넓히기 위함은 아니었다. 여행자 신분으로 접하는 여행지의 모습들은 너무도 단편적이어서 견문을 넓혀줄 수가 없다. 여행은 그냥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며 즐기면 된다. 그래서 이번 휴가의 여행지인 일본에서는 그런 것들에 충실했다. 먹고, 걷고, 생각하고, 읽었다. 하나 추가하자면 사슴들이랑 놀았다.
일본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것을 익히 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식당들에서 충격을 받았다. 음식 가격이 한국보다 10%~20%정도 비싸긴 하지만 퀄리티는 3배 정도 높다. 초밥, 튀김음식, 유제품 쪽이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도톤보리 근처에서 대충 찾아간 바의 바텐더는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 하이볼을 첫 잔으로 마시는 나를 보더니, 두 번째로 주문한 러스티 네일을 탈리스커로 만들어 주었다. 식도락 여행을 즐기는 나에겐 일본이 최적화된 여행지 중 하나일 듯.
글은 내가 즐겨 구독하는 블로그들의 글들과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을 읽었다. 바둑은 많은 부분에서 투자와 맞닿아 있다. 바둑과 투자 모두 인간으로 하여금 상반된 속성을 한꺼번에 가지길 강요한다. 침착해야 하지만 때론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해야 한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 거취에 대한 생각, 시장에 대한 생각도 대략 정리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생각을 더 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도 어느 정도 충전되었다. 아마도 4분기에는 9월에 가졌던 수준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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