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완화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문장이 가진 논리 흐름은 다음과 같다. 1)통화완화 정책은 실물경기에 효과는 없이 자산가격만 상승시키고, 2)따라서 자산을 들고 있는 부유층의 부만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
먼저 통화완화정책이 실물경기에 효과가 없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면, 첫 번째 글인 '왜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하는가'를 다시 읽어 보는 것이 좋다. 통화완화를 하면 가계나 기업은 돈을 빌려 소비나 투자에 나서게 되고, 소비나 투자를 한다는 것은 곧 실물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듯이 금융위기와 같은 극심한 불황 후에는 위의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 때는 통화완화를 해도 경제주체들이 좀처럼 돈을 빌리지 않으며, 풀려나간 돈들은 금융시장 안에 머물며 자산가격을 상승시킨다. 이 부분을 지적하며 '그것봐라 자산가격만 부양시키지 않나?' 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일차원적인 의문에 불과하다. '통화완화를 해도 경제주체들이 돈을 빌리지 않고, 자산가격이 부양되는 경우'의 불황이란 바로 경제주체들의 밸런스시트가 훼손되는 불황을 뜻한다. 밸런스시트 불황은 자산가격이 폭락하여 발생하는 불황을 의미하는데, 이 때는 통화완화를 해서 자산가격을 부양시키는 것 만으로도 불황의 심화가 저지된다. 바꿔말해, 통화완화가 자산가격 붕괴를 저지해주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은 부채비율의 추가 악화를 피할 수 있으며, 밸런스시트를 복구해 나가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통화정책의 효과에 대해 끝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화정책을 예상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그러한 의문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통화정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 어떤 나라의 통화정책회의 멤버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의 투자전략회의에서 '열심히 해봤자 베타를 이길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듯이,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내리거나 올려봤자 경기가 바뀔까'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통화완화정책이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양극화가 초래된다'는 문장은 어떨까? 일견 타당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이 역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가계부채가 폭증한다'와 더불어 정치적 목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일 뿐이다.
만약에 중앙은행이 경기침체를 방조하며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다고 해 보자. 경기침체에 따른 기억이익 악화로 임금이 줄어 중산층 이하의 가계소득은 감소하겠지만, 자본소득이 많은 부유층들은 임금 하락에서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 만약 자산가격, 이를테면 주택 시장의 붕괴를 중앙은행이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중산층은 붕괴되고, 전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해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가장 먼저 망하게 되는 전세민들이 주택 가격 폭락을 염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오히려 부유층들만이 염가에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향후 가격이 회복하면 막대한 수익을 누릴 것이다.
애초에 양극화 문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양극화는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통화완화를 하면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정치권의 책임회피적 목소리에 호도되어서는 통화정책을 전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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