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를 인하해서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자본이 유출된다는 논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먼저 '미국 채권 금리가 2.5%인데 한국 채권 금리가 2.0%면 한국 채권을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문장의 오류부터 짚어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외채권투자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채권투자의 수익률은 '이자수익+자본이득'으로 나눌 수 있다. 2.5%에 거래되는 채권을 매입하게되면 일단 연 2.5%의 이자수익은 확보되는 셈이고, 매입 시점 이후 금리가 하락하게 되면 자본이득도 얻게 된다.
만약 해외채권투자도 위와 같은 단순한 논리만을 따른다면, 세상에 해외채권투자보다 쉬운 투자도 없을 것이다. 무조건 국내 채권 대비 수익률이 높은 타 국가의 채권을 찾은 뒤, 매입해서 들고있기만 하면 된다. 한국의 1년만기 통안채 수익률이 1.5%인데, A라는 국가의 1년만기 정부채 수익률이 2.0%라면, 1년 내에 망하지만 않을 나라라면 그냥 사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외채권투자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환율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A국가의 정부채를 매입했는데 그 국가의 통화가 한국 대비 크게 절하되어버리면, 이자수익을 훌쩍 넘어서는 환손실을 입게 된다. 가끔 증권사에서 판매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신흥국 채권 상품들이 이러한 경우다. 이자수익은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환율 절하 폭이 더 어마어마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렇다면 환 헷지를 걸면 어떻게 될까? 해외 채권을 매입하며 환 헷지를 걸면 이자수익이 정확히 본인 국가의 채권 수익률로 수렴한다. 다시 위의 A국가의 예에서, A국가의 정부채 수익률이 2.0%로 한국의 1.5%보다 높지만, FX hedge cost가 두 국가의 이자율 차인 0.5%이므로, 결과적으로 A국가의 정부채 수익을 사고 환 헷지를 걸었을때의 이자수익은 1.5%가 된다. 금리가 더 높은 어떤 나라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해외채권투자는 다음 두 가지 형태로 나눠 볼 수 있다.
1) 해외채권을 사고, 환헷지를 걸지 않는 투자. 경우에 따라 국내 채권을 샀을 때보다 높은 이자수익을 누릴 수도 있지만, 해당 국가에 대한 통화 강세 뷰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2) 해외채권을 사고, 환헷지를 거는 투자. 이 경우 국내 채권을 매입하는 것 대비 이자수익의 메리트는 제로다. 즉, 이러한 투자는 해당 국가 금리의 하락으로 자본이득이 기대될 때 행하게 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미국 채권 금리가 2.5%인데 한국 채권 금리가 2.0%면 한국 채권을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논리는 1번의 해외채권투자 형태에만 해당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다. 1번과 같은 성격의 해외 자금은 한국 채권을 팔고 떠나겠지만, 2번의 투자형태와 각국 중앙은행으로부터의 한국 채권 매입은 꾸준히 유지될 것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한국 채권 금리가 미국보다 낮으면 외국인이 한국 채권을 몽땅 팔고 나갈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 주식의 배당 수익률이 미국보다 낮으면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몽땅 팔고 나갈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다.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 유입이 단순히 배당수익률로만 결정되지 않듯이, 외국인의 채권 매수세 유입도 단순히 이자수익의 차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채권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매수세를 감안하면, 미국과의 기준금리 혹은 시장금리 역전 시 일정 부분의 자금 유출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몽땅 유출되어 위기가 올 것이라는 논리는 허망하기만 하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채권을 일부 매도하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본유출이 아니다. 진짜 자본유출은 잘못된 통화정책 대응이나 정책의 실패로 해당 국가의 잠재적 경쟁력이 훼손되어 국가의 신뢰도가 낮아질 때 발생한다. 역시나 내 필력의 부족으로 한-미 기준금리와 자본유출간의 관계 이해가 어렵다면, SK증권 이은택 위원님이 8월 6일에 발간하신 '미국 금리인상이 자본유출을 부른다?'를 참조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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