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정치적 용도로 즐겨 활용되는 문장이다. '금리인하는 전세값 상승으로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킨다' 라고 연결하면 더욱 그럴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많은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
먼저, 주거비라는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주거비란 무엇인가? 집을 보유 중인 사람의 연간 주거비는 간략하게 '연간 세금지출+{(금리*연초 집값)-연간 집 가치의 상승폭}'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식이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넘어가자. 물론,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했다면 이자비용도 주거비에 포함시켜야 한다. 월세로 사는 사람의 주거비는? 아주 쉽게 월세지출 그 자체가 곧바로 주거비가 된다.
문제는 전세다. 전세의 주거비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예를 들어보자. 전세보증금 1억에 금리가 4%라면 기회비용 관점에서 그 전세의 주거비는 연 400만원이 된다. 만약 전세보증금이 2억이고 금리가 2%라면? 마찬가지로 그 전세의 주거비는 연 400만원이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전세의 주거비는 '전세보증금'을 뜻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이 두 배로 뛰어봤자, 금리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면 주거비용은 조금도 상승하지 않는다. 내가 전세로 살던 집의 전세값이 두 배로 올랐다 하더라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금리로 그 만큼을 대출 받아 보증금을 내면 주거비용은 그대로다. 단순히 전세보증금이 상승했다고 주거비 부담이 폭증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번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된 작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세보증금은 얼마나 상승했고 대출금리는 얼마나 하락했을까? KB전세가격지수는 107.1에서 113.5로 약 6% 상승했고, 신규대출 기준 kofix금리는 2.48%에서 1.54%로 약 38% 하락했다. KB전세가격지수를 믿기 힘들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금리의 하락률이 38%에 달했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이 60%상승했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해도 주거비는 여전히 flat하게 된다.
저금리가 월세시대를 앞당기고, 전세보증금을 높이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전세보증금 지불을 위해 받은 대출을 원리금균등상환으로 갚아 나가면, 원금을 갚는 금액 만큼 강제로 저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소비가 소폭 줄어들 수는 있겠다. 그러나 높아진 전세보증금이 곧바로 주거비의 폭증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거비'와 '전세보증금'을 혼동하지 말자. 두 개념을 혼동하면 자칫 전세보증금의 상승을 기준금리 인하 저해 요인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결국 통화정책을 이해하거나 예상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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