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했듯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돈을 빌리는 부담이 줄어들어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내 소비나 투자를 하게 된다. 즉,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당연히 가계부채는 확대된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확대된다는 것 자체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애초에 돈을 싸게 빌려서 쓰라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 가계부채가 확대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통화정책이 아주 잘 작동한다는 뜻일 뿐이다. 오히려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인하했는데도 가계나 기업의 신용이 확대되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통한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 때 중앙은행은 QE나 마이너스 금리 등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펼치게 된다.
바꿔말해, 한국은 기준금리를 통한 통화정책이 아직까지 매우 잘 작동 중인 나라다. 문제는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가계부채의 확대를 부작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부채를 거의 죄악시하는 한국의 통념이 배경이 되어 이러한 집단적 몰이해를 낳는 것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 생각이 꼬이면 매크로 정책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첫 글에서도 썼지만, 민간 신용의 증대를 유도하는 것이 통화정책이고 정부 신용을 증대시키는 것이 재정정책이다. 인류가 가진 거시정책적 경기 조절 수단은 이 두 가지 밖에 없다.
물론, 현재 한국의 가계신용이 꽤 높은 수준이므로 가계신용의 총 규모를 낮추는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디레버리징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경기가 부진하면 통화정책은 완화적인 쪽을 택하게 된다. 예를들어 지금 약 1,000조를 기록 중인 가계부채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정책적 목표라고 해 보자. 부채를 줄이는 방법은 1)헤어컷을 하거나 2)빚을 갚게 만드는 방법 말고는 없다. 헤어컷이 극단적 부실 상황에서만 고육지책으로 행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가계부채를 줄이는 방법은 돈을 벌어 빚을 갚게 만드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정책은 금리를 인하해 가계의 이자부담과 실질부채 부담을 줄여주면서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가계의 무리한 추가 레버리징을 가능한 억제하는 것이 것이 된다. 금리인하로 부진했던 경기가 부양되면 가계는 돈을 벌어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다. 차악의 정책은 기준금리를 동결해 가계의 추가 신용 확대만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가 부진한 국면에서 금리를 동결하면,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둔화시킬 수 있어도 경기 부양 및 명목 소득 증대를 통한 부채 상환은 요원해지게 된다. 최악의 정책은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1,000조원의 가계부채와 경기 부진 조건 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가계의 이자부담과 실질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로 명목 소득 증대는 불가능해지며, 자산가치 하락으로 아예 가계의 밸런스시트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다행히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겠다며 경기 부진 국면에서 금리를 인상했던 중앙은행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기준금리를 인하해서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비판은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문장일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부채를 증가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기준금리 인하다. 경기 부진 국면에서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역시 기준금리 인하를 필요로 한다. 즉, 한국은 여전히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