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지난 10월 발간된 모건스탠리의 리폿을 추천해주며 몇 가지 질문을 카톡으로 보내왔다(사실 말이 질문이지 이미 본인이 생각하는 답이 질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1월에 약 2주간 한국에 온다니 주변 지인들을 많이 소개해 줄 생각.
'Why Korea may be next in line for QE' 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한국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추고, 2018년에는 QE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담고 있다. 장 중에 이런 내용의 보고서가 발간되었다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지나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주말에 읽어보니 예상보다 공을 엄청 들여 만든 보고서였다. 한국은 1) 민간부채 레벨이 높고, 2) 노동 인구감소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3) 중국의 과잉설비 문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데다가, 4) 비효율적 자원 배분으로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섹터가 약화되었으며, 5) 즉각적이지 못한 거시정책이 문제를 더 키워왔다고 모건스탠리는 지적한다. 이런 상황이 중립금리를 0% 근처로 이끌고 있고, 이에 결국 한은도 비전통적 통화정책에까지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모건스탠리의 생각. 써 놓고 보니 너무 간단하게 요약한 느낌이다.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고서에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에 괜찮은 그래프나 글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매크로 관점에서 시장을 분석하는 분들에게는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을 듯 하고, 정책담당자들이나 한 번 읽어봐줬으면 하는 바람.
아래에서부터는 친구의 질문과 내 생각.
1. 한국 매크로 상황이 일본과 비슷하니 QE도 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
개인적으로 한국이 일본 따라 간다는 주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몇몇 포인트들이 과거 일본의 상황과 겹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듯. 보고서에도 잘 나와 있는데 부문 별로 간략히 정리해보면, 1) GDP 대비 정부부채와 기업부채의 비율은 당시의 일본보다 낮지만 가계부채 비율은 높고, 2) 글로벌 수요가 부진하다는 매크로적인 상황은 비슷하며, 3) 인구구조는 오히려 일본 보다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4) 소극적인 통화정책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은 당시의 일본과 유사. 쉽게 말해 정부부채가 낮아 재정 여력이 확보되어 있고, 대내적인 자산 버블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빼면 다른 면에서는 20년 전의 일본보다 나은 점은 없어 보인다. 때문에 한국의 상황이 20년 전의 일본과 비슷하다는 주장에는 부분적으로 동의. 그러나 지금 한은의 스탠스를 고려하면 2018년 QE를 전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 즉, 일본과 비슷한 상황임을 깨닫고 한은이 2018년에 QE를 할 가능성 보다는, 소극적인 통화정책 대응을 하다가 언젠가는 QE를 포함한 강력한 통화정책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것까지도 일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2. current account surplus와 savings, capex의 관계와 뷰에 대해
알다시피 GDP equation에서 current account는 saving - investment. 일전에 supply driven oil spike가 오면 일부 지역의 trade balance가 깨지지 않겠냐는 내 이야기가 생각나서 물어본 것 같은데, 그건 꽤나 단기적인 의견이고 (게다가 별로 oil이 튀지도 않았고) 구조적으로는 saving이 높아지고 investment가 부진한 지금의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 한국의 설비투자는 올해 내내 악화일로였으며, 가계가 소비를 확대할 조짐도 포착되지는 않고 있다. 즉, 높은 저축률과 부진한 투자가 야기하는 current account surplus는 지속될 공산이 크다.
3. 한은이 QE를 정말 할 것 같은가? real rate을 낮추기 위해 뭔가 하긴 해야할텐데. 재정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재정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치만 앞서 이야기했듯 그래서 한은이 움직일 것이라는 의견에는 회의적이다. 그 정도로 똑똑한 중앙은행이었으면 진작에 움직였다. 근 3년 동안 한은은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내려왔다. 올해 6월의 인하 역시 정부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모양새를 내기 위한 뒤늦은 인하였다. 게다가 2년전 금번 인하 사이클이 시작된 첫 인하에서 당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영향이 적잖았다는 것이 중론인데, 최경환이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 인사라는 점 때문에 '금리 인하' 자체가 마치 박근혜의 정책인 것처럼 치부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한 달 동안 '금리 인하도 최순실이 시킨 것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업계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고, 내가 다니는 치과에 계신 의사선생님도 '최순실이 강남에 땅을 사 놓고 금리를 인하하라고 시킨 것' 이라는 주장을 확신에 찬 어조로 하신다. 이런 여론까지 조성되면 한은은 QE는 커녕 추가 인하조차 망설이게 된다. 잠재 성장률 추산치를 낮추거나, headline CPI 반등을 지적하거나, 한-미 금리차를 언급하거나, 가계부채를 우려하거나, 정치적 리스크로 인한 성장 둔화는 일시적이므로 통화정책 대응은 부적절하다거나, 등등 한은이 동결하며 댈 수 있는 핑계는 산재해 있다. 결국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간신히 추가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 지금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나의 전망이다. QE는 꽤 먼 이야기.
결국 지금까지 그랬듯이 내년에도 '인하를 해야만 하는 경기 상황 + 그러나 인하에 궁색한 중앙은행' 이라는 큰 스킴은 유지될 것 같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커브가 스팁될 리스크를 고려해 2y2y KRW NDIRS 리시브를 추천하던데, 나는 되려 한국 커브가 다시 플랫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트럼프발 미국 금리 상승에 연동되어 한국 커브도 스팁되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미국과 유리된 흐름을 보이며 플랫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내년도 커브 전망의 핵심.
4. KRW가 JPY처럼 risk off 통화가 아니니깐, policy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경기를 망쳐도 KRW가 강세를 보이진 않을 듯 한데.
큰 관점에서 맞는 말이긴 하다. 통화 약세는 1)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완화정책을 펼치거나, 2) 경기가 망가져 나라가 맛이 가 버리면 유발되니깐. 즉, 너의 말은 지금은 1)을 하지 않으면 어차피 2)가 올테니 KRW short은 편하지 않냐는 이야기.
그러나 트레이딩 관점에서 보면 위의 로직을 근거로 KRW short을 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일단 가장 확실하게 통화를 약세로 보내는 것은 1)이지만, 상술했듯이 그런 상황을 기대하긴 어려우니 결국 저 논리로 포지션을 가는 것은 2)를 기대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2)로 가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비적극적인 통화정책은 경기를 갉아먹으며 디플레이션 위험을 높이긴 하지만, 단번에 위기 상황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년처럼 중국 문제가 터져주지 않는 이상 2)에 기댄 포지션은 호흡이 너무 길어진다(너희가 아주 롱텀한 전략을 짜는 것은 알지만). 나도 KRW short을 염두에 두고는 있으나, 거의 모든 하우스에서 KRW short 리폿을 내니깐 따라가기엔 괜히 불편해졌다. 그래서 나는 아직 좀 더 명료한 트레이딩 포인트를 찾으려고 노력 중.
보고서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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