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재정확장과 통화긴축의 조합

내년 미국 금리의 향방을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꽤 복잡해진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라는 두 거시정책의 방향성이 엇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기대대로라면 내년부터 트럼프발 재정확장이 시작되고, 재정이 이끄는 인플레와 성장률의 반등을 확인하며 연준은 기준금리를 올리게 된다. 스토리를 조금 더 풀어 써 보면, 연준은 2013년 12월에 시작된 tapering을 시작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긴축쪽으로 선회했고, 작년 2015년 12월 기준금리 인상에까지 성공했지만 성장률과 인플레의 정체, 중국 리스크 확대와 브렉시트 발발 등으로 추가 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에 따른 재정확장 기대감이 기대인플레의 반등과 커브 스팁을 이끌어 내면서 연준은 추가 인상을 고려하기에 편안한 상황이 되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확장적 재정, 통화 정책을 쓴 후 경기 회복기에서 정책들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교과서적인 전개지만, 지금 미국은 어렵사리 진행 중인 통화정책의 normalization을 확장적 재정정책이 거들어 주는 다소 특이한 모양새가 된 셈.

기준금리도 올리고 재정도 쓴다니 금리가 전반적인 상승 압력을 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조합 하에서는 장기물 금리의 방향성과 커브의 형태를 가늠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데에 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니 단기물은 상승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장기물 영역에서는 '재정확장이라는 금리 상승 요인'과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cool down 효과라는 금리 하락 요인'이 뒤섞인다. 즉, 일반적인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서는 장기물 금리가 정체되거나 오히려 하락하면서 커브가 플랫되는 반면, 기준금리 인상에 재정확대가 조합되면 장기물의 방향과 커브의 형태 예상이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채 흐름을 예상하려면 두 요인을 잘 고려해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과거에도 미국에서 재정과 통화정책의 디커플링이 존재했었는지 궁금해 간단한 데이터들을 찾아봤다.



그래프에서 음영처리 된 부분이 재정확장 국면인데, GDP대비 fiscal deficit의 폭이 다소 미미하더라도 일단 방향이 아래이면 대략 다 칠했다. 그래프에서 확인되듯이 대부분의 재정확장에는 통화완화가 병행되었었다. 그 중에서 재정이 확장 기조일 때 기준금리를 인상한 적이 있는 시기는 50년대 초반, 50년대 말, 60년대 후반, 그리고 80년대 초중반 정도. 데이터가 있는 55년부터 미국채 3년과 10년을 그리면 아래와 같다. 


58년 6월에서 59년 9월까지 금리(뉴욕연준 할인율)가 220bp 인상되는 동안, 미국채 3년은 2.08%에 4.97%로 289bp 상승하고 10년물은 2.97%에서 4.68%까지 171bp 상승해 3y-10y 스프레드는 89bp에서 -29bp로 축소된다. 67년 6월에서 69년 3월까지의 200bp 기준금리 인상에서는, 미국채 3년은 4.61%에서 6.38%로 177bp, 10년은 4.85%에서 6.30%로 145bp 상승해 스프레드는 24bp에서 -8bp로 축소. 마지막으로 최근 자주 비교되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이던 82년 12월부터 84년 9월까지는 기준금리가 325bp 인상되는 동안 3년은 9.98%에서 12.34%로, 10년은 10.55%에서 12.52%로 상승하며, 스프레드는 57bp에서 18bp로 축소된다.

나열한 시기들의 경제 여건과 금리 레벨은 저마다 다른데, 특히 해당 시기와 현재의 매크로 상황은 꽤 차이가 난다. 최근 많은 보고서에서 즐겨 인용하는 80년대 초반조차, 당시의 중앙은행은 오일 쇼크에 따른 인플레이션 파이팅에 주력했다는 점에서부터 지금과는 큰 차이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1) 거대한 리세션 이후 통화정책을 끝까지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2) 큰 규모의 재정 확장이 기대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지금은 대공황의 후유증이 이어지던 1940년대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통화 긴축을 조금 더 빨리 시작했고, 전쟁 대신 트럼프라는 인물이 재정확대를 유도한다는 것이 그 때와의 차이점.

내가 얻은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경험적으로, 통화긴축과 재정확장이 조합되는 시기에 미국채 10년 금리는 상승했다. 즉, 2000년대 중반과 같은 conundrum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장기물 금리가 하락하는) 현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긴축적 통화정책이 경기 확장을 제한해 장기물 금리를 끌어 내리는 힘 보다 재정이 금리를 밀어올리는 힘이 더 강했다.

2) 하지만 단기물 금리가 장기물 금리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커브는 플랫되었다. 다만, 80년대 초반의 케이스에서는 금리가 인상되는 구간에서도 60bp 수준의 3y-10y 스프레드는 유지되었다. 결국 커브는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에 따라 플랫 될 수도 스팁 될 수도 있다. 재정지출이 견인하는 성장률과 물가 반등의 속도에 비해 기준금리가 느리게 인상되면 장단기 스프레드는 확대되거나 기존 레벨을 유지할 것이고, 연준이 재정지출을 인식해 공격적인 인상을 시작하면 커브는 플랫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준 스탠스는 후자 보다는 전자에 가깝다.

3) 종합해보면, 재정확장과 통화긴축이 조합되면 대체로 금리는 단기물과 장기물이 같이 상승하면서 커브는 플랫되는 쪽으로 흘러간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커브전략으로 대응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결국 미국채로 돈을 벌려면 숏으로 먹을 궁리를 해야 한다.

4) 트럼프의 대규모 재정정책이 현실화되고 연준은 완만한 인상 속도를 유지하면서 상황이 1940년과 더욱 비슷해진다면, 소위 말하는 great rotation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골드만삭스가 채권 베어마켓을 여러 구간으로 구분해 해당 기간의 자산군별 수익률을 계산한 테이블을 이번 Top of mind에 실었는데, 1941년 4월 ~ 1959년 9월이라는 긴 채권 베어마켓에서 S&P500이 기록한 실질 총 수익률은 무려 681%.



나의 다음 고민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의 한국 채권시장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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