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러운 회사일로 주초 사흘간 마켓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 이후 이 정도로 마켓을 체크하지 못했던 날이 있었는지 돌이켜봤는데, 내 기억으론 없다. 해외로 휴가를 가거나 몸이 아프더라도 마켓 체킹은 매일 했었다. 최근들어 꾸준히 포스팅하던 금통위 의사록 요약과 광공업생산 예상도 짧게 비공개 글로만 저장. 여러 루틴들을 깰만큼 겪은 사건의 임팩트가 컸다. 이 정도 깊이의 멘탈 훼손은 아주 오랜만이다.
나는 회사라는 조직의 이윤추구적 속성이 회사로 하여금 직원에게 가혹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능력이 압도적인 헤드가 보호해주지 않는 이상 회사의 그런 결정을 막기 어렵다는 점도 안다(물론 능력이 압도적인 헤드가 있으면 회사에게 가혹한 결정을 당할 일 자체가 애초에 잘 없다). 이윤추구적 논리의 극단에 있는 금융계라면 특히 그렇다. 사정이 아무리 딱하더라도 돈이 되지 않으면 개인이나 팀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대한 당위성이 비인간적인 처사까지 지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음식 맛이 없다는 컴플레인을 레스토랑에 하기로 결정했더라도 접시를 집어던져서는 안되고, 부하 직원의 리폿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언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눈앞에서 종이를 찢어버릴 필요는 없다. 음식이 너무 맛없고 리폿이 엉망이었다며 당위를 붙인다한들 그런 행동들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약자에게 행해지는 강자의 무례와 폭력에 의사결정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또다른 무례와 폭력일 뿐이다.
팀에게 그 어떤 언질도 없이 회사는 월요일 오전에 나와 같이 일하던 두 직원에게 해고와 다름없는 발령을 통보하더니 오후에 발령공지를 내버렸다. 발령일은 바로 다음 주. 소식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이리저리 싸워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고, 이미 회사에 대한 둘의 의가 깎일대로 깎여 결정이 번복된다한들 의미없는 상황이 됐다.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인원 조정이라는데, 난 이곳보다 인력의 회전율이 높은 그 어떤 팀에서조차 멀쩡히 일하는 주니어급 인력을 하루아침에 자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수요일까지 하루 평균 3시간을 채 자지 못하게 만든 감정은 분노 보다는 자책이었던 것 같다. 아랫직원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은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사건의 원인이 무례하고 폭력적인 매니지먼트 측에 있다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나의 능력이 이들을 전부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지 않다는 점을 자책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쓸 데 없는 오지랖이 아닌, 상사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책임의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아랫사람이 겪고, 하는 일들의 책임은 윗사람에게 있다. 높은 권한과 보상 모두 책임이 크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회사로 인해 훼손된 나의 멘탈이 그나마 회복된 것은 목요일쯤부터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분들이 시간을 내서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실제로 도움이 되었던 조언들도 많았고, 일단 이런 상황일 때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거나 만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존재들이 주변에 있다는 점이 참 기뻤다.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아예 후임을 데리고 나간 적도 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후임에게도 도움이 되긴 했던 듯 싶다.
50년 같은 5일이었지만 일단 심기일전하고 둘을 돕기로 했다. 회사 뿐 아니라 라이프 전반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던 한 주였고, 나에겐 이 일이 아주 큰 계기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근 3년간 꼭 4분기에는 힘든 일이 한 가지씩 터졌던 것 같다. 하지만 분노와 실망과 실패와 좌절을 발전의 에너지로 치환하는 일에 이제는 조금 익숙하다. 두 사람의, 아니 네 사람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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