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8일 일요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누군가의 깨달음을 글이나 말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긴다. 대부분의 투자 관련 서적이 손절의 중요성을, 면밀한 리서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직접 무너져 본 경험 없이 책만 읽고 손절이나 리서치를 잘 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가르칠 수는 있되 전할 수는 없다는 바둑 격언은 바둑에만 국한되는 문장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철학적이고 경험적인 글들은 이미 그런 철학과 경험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만 재밌게 읽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누군가가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쓰면, 이미 체력을 잘 관리하고 있거나 최소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글이 와닿지만, 오히려 체력 관리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글' 정도로 치부한다. 즉, 정작 글을 제일 필요로 하는 부류가 글에서 받는 임팩트는 작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부류에겐 글이 자기강화의 재료가 된다.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나를 바꿔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엄청난 회의감이 들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위와 같은 역설을 깨고 대다수의 부류에게 전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글이 등장한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을 헬스클럽에 등록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새벽부터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 글들은 다양한 색채를 지닌다. 어떤 글은 까칠하고, 어떤 글은 따뜻하며, 심지어는 독자를 꽤나 불편하게 만드는 글들도 더러 있다. 다만 색채는 다양할지라도 그런 글들은 모두 '매력적'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묘하게 글에 끌리게 된다.

하루키는 책의 도입부에 언급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자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얘기하진 않는다. 소위 말하는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팁도 많지 않다. 단지 직업으로서 소설가를 하고 있는 하루키 본인의 스토리를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그럼에도 글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거리는 상당하고,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해야 할 것만 같은 자극도 받게 된다. 원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하루키 글의 팬인 적도 없지만 하루키가 인기 있는 이유는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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