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까지 미국에서 은행업이란 아주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었다. 고객의 갚을 능력을 평가한 뒤 경쟁 은행들보다 조금 나은 조건의 금리로 대출을 하는 것이 은행 업무의 전부였다. 그러나 1978년 마켓국립은행의 대법원 판결을 시작으로 고리대금 규제가 제거되고, 이것이 경쟁적인 규제 완화 물결로 이어지면서 은행의 업태가 바뀐다. 은행들은 빛을 갚을 능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대출자가 연체를 하면 돈을 더 빌리라고 권한다. 물론 이런식으로 대출을 하면 파산자가 속출하지만, 파산하지 않고 버티는 소수의 대출자들이 내는 높은 수수료와 금리가 파산자들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을 커버하고도 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은행은 큰 이익을 거둔다. 이제 은행업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 은행들은 파산법을 까다롭게 개정해서 개인의 파산을 어렵게 만들면 이 비즈니스에서의 수익을 한층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인간적인 생각을 한다. 로비스트들을 통해 그 생각을 현실로 옮기려는 은행들의 앞에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파산법을 가르치는 한 교수가 나타난다. 엘리자베스 워런이었다.
그 전까지 휴스턴과 텍사스를 전전하던 워런은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에 정착해 일과 가정 모두에서 간신히 안정을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버드에서 꾸준한 제의가 들어왔지만 어렵게 정착시킨 지금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고 워런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 파산법을 개정하려는 은행들에게 워런은 뼛속깊은 분노를 느꼈다. 워런의 남편 브루스는 분노하는 워런을 보며 '그래서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 뭘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마침내 브루스는 워런에게 말한다. '하버드로 가'. 브루스는 사람들의 워런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려면 보다 높은 산에서 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워런은 남편의 그 말을 듣고 싸울 기회를 찾아 하버드로 가고 파산법 검토위원회 멤버가 된다. 어쩌면 워런은 남편의 그 한 마디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워런의 첫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워런의 첫 싸움은 패배로 끝난다. 평소 혐오하던 정치계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그 유명한 '맞벌이의 함정'을 집필하는 등 다양한 전술을 펼치지만 결국 워런의 성과는 파산법 개정을 몇 년 미루는 것에 그친다. '흥청망청 소비하는 자들을 성실한 납세자들이 지원하고 있다' 는 은행측의 언론 플레이와 전방위적인 로비를 워런은 이길 수 없었다. 서민들의 싸울 기회를 찾아주기 위해 싸웠던 워런은 상심한다. 그러나 그녀는 전투에서 졌을 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싸움을 계속한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워런은 의회 감독위원회 멤버의 신분으로 두 번째 싸울 기회를 잡는다.
그렇지만 의회 감독위원회는 금융위기의 중심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다. 조직명은 의회 감독위원회지만 의회는 감독받을 의향이 전혀 없었다. 의회 감독위원회는 구제금융의 규모나 사용처를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가이트너의 재무부에게 스트레스 테스트의 세부 내용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끝난 뒤에도 그 내용을 받아볼 수 없었다. 버냉키, 가이트너, 서머스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폭과 스피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고, 시간이 부족했던 그들에게 워런의 목소리는 그저 한 청산주의자의 외침 정도로만 들렸다. 무분별한 대출을 일삼던 은행은 구제를 받고, 평범한 가정들은 무너지는 모순을 보며 워런은 절규하지만 핵심 인사이더들의 신념과 행동을 저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워런은 금융소비자보호국 발족이라는 그녀만의 다른 전술을 택한다.
폭발 가능성이 있는 토스터를 팔면 토스터를 만든 사람이 책임을 지지만, 잘못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가입자가 책임을 진다. 토스터를 사면서 토스터의 배선도를 소비자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무리인 것처럼, 복잡한 금융상품 역시 가입자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때문에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가 존재하듯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정부기구가 필요했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를 워런은 강력하게 밀고 나가고, 오바마의 비호 속에 결국 발족에 성공한다. 바니 프랭크가 주재한 금융소비자보호국 발족 합의 회의에 참여한 워런은 입법의 자리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선한 싸움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목소리만 내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작 워런은 본인이 발족한 금융소비자보호국의 국장이 되지는 못한다. 용맹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든 탓이었다. 서머스도 자주 겪었던 문제다. 워런은 슬펐지만 금융소비자보호국이 출범했으니 그래도 두 번째 싸움은 이긴 축에 속했다. 그리고 워런은 지금 정계에 진입해 그녀의 세 번째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워런은 어떤 것이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면 가끔은 아주 강력한 적을 상대로 싸우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본인의 이야기에 있다고 자술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가치의 유무와 관계없이 싸울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링 위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용기와 집념이 그녀의 이야기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싸움은 대부분 불공평하고, 삶의 다른 부분을 희생시키며, 싸우는 사람을 때때로 추잡하게 만들지만 싸우지 않는 삶은 결코 싸우는 삶보다 감동적일 수 없다. 때문에 링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링에 오르면 싸워서 이기는 것에 집중해야 하며, 지면 다음에 싸울 기회를 노려야한다. 링 밖에서 아무리 싸워봐야 상대는 샌드백일 뿐이고, 링에 올라본 적 없는 사람이 링 위의 사람을 아무리 지적해봐야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서는 나를 증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많이 싸웠을 수록 마침내 이겼을 때 감격적인 승리를 거둔다. 버냉키와 가이트너의 책보다 워런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