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에 의하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분석이나 예측에 관한 것이 아닌 용기에 관한 것이다. 분석이나 예측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정보를 이용해 방아쇠를 당기고 위험 속에 돈을 거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고 그는 주장한다. 방아쇠를 당길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탁월한 분석과 예측이 필요하지만, 그런 분석과 예측을 하는 모두가 행동하는 용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미국을 금융위기에서 구한 버냉키는 지적 능력과 행동하는 용기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한두달에 한 번 내려지는 통화정책 의사결정을 찰나의 순간에 큰 돈이 걸린 기회가 생기고 또 사라지는 트레이딩에 비유한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버냉키가 고민하고 행동했던 치열한 순간들을 보면 그러한 단순 시간 비교가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 살았던 시간의 밀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았으며, 정례 통화정책회의 말고도 그가 행동해야만 하는 사안들은 널려 있었다. 실제로도 한은의 경우 통화정책을 '운용'한다고 표현하는데, 그건 한은보다는 연준과 버냉키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버냉키는 통화정책을, 미국의 경제를 운용했다. 그 어떤 트레이딩보다도 큰 사이즈의 트레이딩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올바른 행동에 반대하는 부류를 완곡하게 설득해 나가야만 했다. 래리 서머스처럼 본인의 반대 부류를 약올려서는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수 없었다. 정치적 입지 없이는 공격적이고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없다. 그래서 서머스처럼 타인의 주장의 약점을 간파하고 공격하는 대신에 버냉키는 본인의 주장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한결같이 밝혔다. 극심한 불황에서 왜 신속한 통화완화가 필요한 것인지, 통화완화의 부작용이라고 지적되는 부분들이 오히려 통화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심화되었을지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역설한다. 그것은 이미 본인이 과거에 학술적인 논증을 통해 결론을 내린 내용들이었다. 올바른 결론을 널리 이해시키는 것 까지도 연준의 책임이라고 그는 믿었다.
지적 수준과 명성이 높은 재정정책 중시론자들의 지적에도 버냉키는 굴하지 않았다. 재정정책 없이 통화정책만으로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에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통화정책만으로 경제 회복이 어렵다는 문장은 재정확장을 촉구하는 목소리의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통화완화를 멈춰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버냉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의회의 재정확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연준까지 경기부양을 멈춘다면 경제는 더 암담해졌을 것이다. 버냉키는 연준이라도 연준이 해야할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 미국 경제를 위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냉키는 구제금융부터 3차 양적완화까지 그의 신념을 밀고 나갔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미국경제가 2008년에 비해 상당히 회복된 상황에서 통화정책 결정 권한을 옐런에게 넘겨줬다.
정책을 개선해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쓰이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문해왔다고 버냉키는 말한다. 그리고 비록 연준이 행동하더라도 고맙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연준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으로 존재하는 이유라고도 그는 썼다. 지적인 단단함과 그것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행동한 버냉키는 멋졌고, 특히 그런 버냉키를 적기에 연준 의장으로 선택할 줄 아는 미국이 부러웠다.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구한 것이 버냉키라는 존재인지 아니면 버냉키라는 인물을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미국의 시스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가이트너의 송별 저녁식사에 참석해 교류하는 로버트 루빈, 행크 폴슨, 래리 서머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도널드 콘 그리고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폴 크루그먼과 같은 석학들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어벤져스를 볼 때처럼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꽤 답답했다. 연준이 금융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 이상 축적된 연준의 지식과 경험 덕이었다고 버냉키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은도 그 정도의 시간은 지나야 제대로된 통화정책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 지금 시스템대로 80년이 지난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은의 실수를 반면교사할 능력을 갖출 수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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