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무지하다. 오래전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를 읽었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나의 '듣는' 행위가 워낙 대중가요적 보컬에 편중되어 있었기에 클래식에 시간 할애를 많이 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 복면가왕에서 아이돌이나 배우가 아니라면 첫소절을 듣고 거의 가수를 맞힐 수 있고,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들 대부분을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는 나지만 클래식 곡을 듣고 작곡가를 떠올리는 일은 잘 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에 즐길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 성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가끔 의도적인 환기를 한다. 6년전에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도 그래서 샀다. 그리고 올 해에는 '음악의 기쁨'을 샀다.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다시 공부해 보려고. 그렇다면 이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는? 그냥 손열음이 좋아서 샀다. 보다 정확히는 손열음의 글이 좋아서.
대부분의 창작가는 본인이 창작하고 싶은 것과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이 쓰고 싶은 것과 읽는 사람이 읽고 싶은 것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좋은 글에는 그 간극이 없다. 필자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데 독자도 그 글이 읽고 싶고 재밌다. 손열음의 글이 그렇다. 내가 잘 모르는 클래식이 글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롭다. 재밌으면서도 진지하고, 솔직하다.
애초에 어느 한 인간이 진지함과 솔직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행위는 글쓰기 외에는 잘 없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진지하고 솔직했다가는 외로워진다. 심지어는 금융권 종사자 중에서도 진지하고 솔직하게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다수는 그런 대화보다는 그냥 농담으로 도배된 대화를 좋아한다. 혹자는 현재를 경박단소의 키치의 시대로 규정하고, 진지함과 솔직함이 배척되는 배경을 이 시대의 특성에서 찾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역사상 진지하고 솔직한 사람이 인기있던 시절이 있었던가. 늘 사람은 진지함과 솔직함 보다는 재미를 좇아왔다. 결국 평소에는 재밌는 사람으로 살면서 진지함과 솔직함은 같은 진지하고 솔직한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것이 진지하고 솔직한 사람들의 최선이 된다.
그런데 좋은 글은 그 최선을 뛰어넘는다. 즉, 진지하고 솔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재밌기까지 한 것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손열음이 부럽다. 보러 갈 예정인 8월의 연주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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