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4일 월요일

한국은행의 생각은 무엇일까 - (1) 진심으로, 금리를 내리기 싫다

지난 금요일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의사록과 한국 경제지표를 보며 최소 1~2명의 소수의견을 예상했던 나는 틀렸다. 소수의견은 커녕 이주열 총재의 기자회견은 매파적이기까지 했다. 재밌는 점은 그토록 매파적이었던 금통위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는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다행히도 금통위 전망은 틀렸지만 시장 전략은 틀리지 않은 셈이 되었다. 이 날 배운 점은 세 가지.

1) 가격은 너무나도 영리하다. 매파적 금통위조차 이미 거의 다 pricing되어 있었고, 향후의 추가적인 지표 부진도 아마도 이미 pricing 중.

2) 앞으로 의사록을 크게 공들여 읽을 필요는 없겠다. 역시나 한국은행은 도저히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만 내린다.

3) 이주열 총재는 금리를 내리는 것이 진심으로 싫다. 그리고 그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신빈성 높은 시그널링을 한다. 표정이 비교적 밝고 목소리가 당당하면 동결, 썩은 표정에 맥아리 없는 목소리면 인하일 가능성이 꽤 높다. 일부러 하는 시그널링은 당연히 아닐 것이고, 금리인하가 세상에서 제일 싫고 끔찍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이 반응하는 듯.


이번 기자회견에서 나의 헛웃음을 이끌어 낸 이주열 총재의 대표적 발언은,

1) 7월 전망했던 성장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고 있지 않다.

2) (현재의 금리 상황이 경제 성장을 충분히 지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실물에 영향을 주는 것은 기준금리가 아니라 시장금리다. 우리나라의 장기시장금리와 대출금리 등은 제로 금리 수준인 미 연준보다 같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10년만기 채권 금리, 우리나라 모기지 대출금리는 미국의 금리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에 있다.

1번 발언은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고, 이 포스팅에서는 2번 발언의 모순만 언급하겠다.

먼저, 한국의 10년만기 금리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지난 금요일 종가 기준으로 한국 10년물은 2.24%, 미국 10년물은 2.19%쯤 된다. 그리고 고정 기준 30년만기 한국의 모기지 금리는 3%대 중후반,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4%대 초반. 즉, 팩트만 놓고 보면 이주열 총재의 발언 자체에 틀린 점은 없어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 시장금리는 무려 제로금리인 미국보다도 낮거나 같다', '지금의 통화정책은 충분히 완화적이다' 라는 문장들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금요일 기준 한국과 미국의 일드커브를 비교해보자. 일드커브니깐 당연히 이주열 총재가 한껏 강조한 '시장금리' 이다.



한국의 시장금리가 미국보다 낮거나 같은 것은 10년 이상의 만기에서만 국한되는 현상이라는 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시장금리를 미국과 비교해 보라는 이주열 총재의 주장에 입각해 보면, 한국은 10년 이상에서는 완화적이고 그 이하에서는 모조리 긴축적이다.

그렇다면 10년 이상에서 완화적인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한국 회사채의 만기별 발행잔액을 보자.

(source : Infomax)

만기가 10년 이상인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남짓. 그나마도 여기서 은행채와 공사채를 빼고 나면 실제로는 5%도 될까말까한다. 채권발행을 통한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은 대부분 단기(10년 이하)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간접금융 역시 채권보다 장기일리는 없다. 즉, 이주열 총재의 '시장금리론'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높은 시장금리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가계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가계대출 잔액 현황을 보자.

(source :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주담대의 규모가 15'년 2분기 기준 470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총 가계대출의 규모가 1,070조쯤 되니깐, 이 주택담보대출 전부가 10년 이상의 만기를 가졌다고 가정하더라도 가계 대출에서 만기 10년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수준. 주담대가 아닌 가계대출이 10년 이상의 만기를 가질리는 없으니 나머지 절반은 10년 이하라고 볼 수 있다. 역시나 한은 총재의 '시장금리론'에 따르면, 한국 가계대출의 약 50%는 높은 시장금리를 적용받는 중.

물론 이것은 총재의 논리가 엉터리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기술일 뿐, 애초에 미국과의 시장금리 비교를 통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평가할 수는 없다. 보통은 실질중립금리를 추정 후 실질정책금리와 비교해 보거나, 주요무역국과의 통화완화 정도를 비교하는 등의 정상적인 방법들이 활용된다. 아래는 지난주 화제가 되었던 노무라 권영선 이코노미스트님의 레폿 중 관련 자료들. 실질중립금리나 무역가중평균정책금리 측면에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완화적이지 못하다.



꼭 이런 접근이 아니더라도, 10년물 시장금리를 운운하며 통화정책이 완화적임을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오류 투성이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변경은 기본적으로 모든 만기 시장금리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장기로 갈수록 그 영향력은 급감한다. 때문에 '내가 기준금리를 이만큼이나 내려줘서 10년물 시장금리가 미국보다도 낮다'는 말은 정말 뜬금없는 것이다. 한국 경기가 부진하기 때문에 한국 10년물 시장금리가 낮은 것일 뿐.

이쯤에서 우리는 이주열 총재가 왜 이런 아마추어틱한 발언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1) 진짜로 장기시장금리가 낮으면 통화정책이 완화적인 줄 알아서, 2) 그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지만 내리지 않은 핑계를 나열하다가 실언. 그래도 나름 중앙은행의 총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확률이 높은건 후자라고 본다. 

즉, 이주열 총재는 공개적인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코멘트를 할 정도로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 싫다. 결국 '도저히 인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으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 '상황' 이란 것은 무엇이며, 시기는 언제일까? 다음 포스팅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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