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아마도 크루그먼과 서머스의 구조적 장기침체론(secular stagnation)을 오독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독한 자들은 장기침체론을 교묘하게 꼬아서 통화정책 방관론에 도달시킨다. 이들은 지금의 저성장은 노령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지, 경기가 나빠서 저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화정책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5%대 의 성장률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2%대의 성장률이 일상이 되었으니, 성장률이 2%로 발표되더라도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경기 부양책을 펼치지 말고 구조개혁을 하자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실제로 크루그먼이나 서머스가 주장하는 맥락은 위와 다르다. 일단, 고령화와 소득불평등 심화로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부분 까지는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통화정책을 중립 혹은 긴축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통화완화만 해서는 소용이 없으니 재정정책도 쓰자'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통화정책은 쓸모가 없으니 재정정책만 쓰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의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 나라의 중립금리가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잠재성장률이 4%인 나라의 중립금리가 2.5%라고 해 보자. 그런데 이 나라의 성장률이 3%로 떨어졌다. 이것이 마이너스 GDP 갭이라면 금리를 인하해서 경기를 부양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구조적인 변화로 그 나라의 잠재성장률이 3%가 된 것이라면 어떨까? 수정된 잠재성장률만큼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으니 통화정책 대응을 하지 말아야 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잠재성장률이 3%라면 그 나라의 중립금리도 낮아져 1.5%가 된다(예를 든 것이니 수치 자체에는 의미를 두지 않길 바란다). 만약 잠재성장률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2.5%의 금리를 유지하면 그 나라의 통화정책은 자동으로 긴축적인 것이 되어 경기를 망가뜨린다. 결국 중앙은행은 낮아진 잠재성장률 수준에 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쉽게말해,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면 금리도 구조적으로 낮아지게 되는 것일 뿐이다. 지금 미국의 명목중립금리는 대략 0%근처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0%까지 내려도 통화정책은 중립적인 것이 되는데, 기준금리를 0% 이하의 마이너스로 대폭 내릴 수는 없으니 재정정책을 펼쳐 불황 타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구조적 장기침체론의 요지다. 크루그먼과 서머스의 논리는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만, 대략적인 맥락은 위와 같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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